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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곳
비록 5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늦은 나이에 부임하게 되었지만, 나와 서울대학교의 인연은 무려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학교 국어운동학생회에서 주최한 제6회 ‘고운 이름 뽑기’ 대회에서 우리 삼남매(하나-두나-세나)의 이름이 ‘한글 집안상’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6살 인생 처음으로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KBS 프로그램에 엄마와 같이 출연해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이후 1975년부터 신림동에 살기 시작해 초중고를 거기서 다 졸업하고 1993년 결혼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아버지가 사회학과 교수님(故고영복 교수)이시라 연구실에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이 학군제가 아닌 관계로(^^) 대학은 뜻하지 않게 멀리 신촌으로 가게 되었고, 이후 서울대학교는 내 관심밖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산하 연구원 HK교수 채용에 지원했다가 미끄러진 적이 있었고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2년 동안 선임연구원으로 적을 둔 적이 있었을 뿐 특강 한 번 한 것을 제외하면 한 학기 강의조차 해 본 적이 없었으니 서울대와의 인연은 그저 그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대학교 역사학부/국사학과 부교수로 임용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참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더니!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지금은 흔하디 흔한 ‘하나’라는 이름은 어린 시절 나에게 자존감의 원천이자 질곡이 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웃음거리였던 나의 이름은 나 스스로를 ‘미운 오리 새끼’와 동일시하며 내가 뭔가 특별한 존재라는 망상을 갖게 해주었다. 겉보기에는 모범생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나의 내면은 늘 세상에 다가가고 싶은 호기심과 세상에 반발하는 저항심이 신묘한 비율로 섞여 요동쳤다. 호기심과 저항심, 이것이야말로 나를 움직여 온 추동력이었다. 남들은 사춘기에나 어울릴 법한 단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만일 이 두 가지를 잃어버린다면 그 날이 내가 사회적 삶을 끝내는 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역사학, 그 중에서도 사회문화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고 예술과 역사를 공부하고자 했고, 사학과에 진학한 후에는 이왕이면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의 역사를 알고 싶다고 생각해서 한국사 전공을 선택했지만, 당시엔 문화사는커녕 사회사조차 너무나 낯선 영역이었다. 학부 때부터 나만의 커리큘럼과 독서 목록을 만들어 가방에 넣고 다니던 나는 문학 동아리에서 약간의 해답을 찾았으나 그것을 한국사와 어떻게 접목시켜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회경제사와 정치 사상사, 그리고 운동사가 주류였던 1990년대 초의 사학과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역사는 마치 상극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문화예술이란 어디까지나 이른바 ‘고급예술’을 의미했다. '대중예술'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대중문화'는 관심 밖이었다. 대중문화라면 밥 딜런이나 핑크 플로이드 정도는 되어야지 하며 한국의 대중문화를 은근히 비하하던 장본인이 바로 나였다. 그러던 내가 석사과정을 마치고 우연히 들어가게 된 방송 프로덕션을 시작으로 대중문화계에 종사하게 되면서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전환을 맞게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5년, 한국사회가 민주화의 바람 속에서 자유화, 개방화, 세계화를 기치로 대중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근대 이래 문화예술계를 옥죄고 있던 국가의 통제가 사라지고 자본과 인력이 몰리면서 김대중 정부의 그 유명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천만 영화가 나오고 한류가 본격화되는 바로 그 시기에 대중문화계에 종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무엇보다도 행운이었던 것은 현장에서의 경험이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장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공부 말고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고지식한 서생에 불과했던 나에게 매일매일의 사건 사고가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지는 문화 생산의 현장은 그 자체로 신기하고도 놀라운 것이었다. 가히 세상은 넓었고 가는 곳마다 고수는 많았다. 자기 분야에서 잔 뼈가 굵은 현장의 고수들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엘리트주의에 찌든 헛똑똑이인지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대한 나의 무지와 무능을 인식하게 되자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요즘 말로 현타가 온 것이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자 했던가? 그때까지 내가 주로 읽은 사료라는 게 결국 국가 기관이 생산한 정책 자료이거나, 관료와 지식인이 쓴 글들이 전부였는데, 그걸 다 본다고 해서 역사를 잘 이해한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한때 찾아 헤맸던 무오류성의 ‘민중’은 대중문화의 수용자이자 소비자, 때로는 생산자의 모습을 하고 수많은 오류와 모순을 내재한 ‘대중’과 결국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어쩌면 대중문화란 당대 대중의 마음과 정서와 감수성이 그대로, 혹은 왜곡된 형태로 녹아 있는 생생한 사료가 아닌가? 그렇다면 영상을 포함한 비문자 기록을 사료로 삼아 역사연구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할 무렵, 때마침(?) 영화계는 불황에 접어들었고 나는 자의반 타의반 사표를 내고 그 다음 날부터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출근해 박사논문을 준비했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은 새로운 사료의 노다지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중문화의 생산 현장에서 기획자로서 13년, 박사 논문을 쓰고 역사학자로서 10년이 지났을 때,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동료 역사연구자들과 함께 역사문화콘텐츠 기획과 개발, 그리고 공공역사 연구와 교육을 내용으로 하는 법인을 만든 것이다. 매년 평균 두 편의 논문을 꼬박꼬박 쓰면서 동시에 생계를 위한 강의 몇 개와, 깃발을 든 죄로 북치고 장구치는 법인 대표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기효능감을 느끼면서 호기심과 저항심 충만한 시절을 보냈다.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모르면서 길을 가야 한다는 것, 자가 발전 동력만으로 그 긴 여정을 지속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때로는 스스로의 정신 승리가 아닌 외부로부터의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다. 나에게 서울대학교 역사학부/국사학과 역사문화콘텐츠 전공 교수로서의 부임은 때맞춘 격려와 함께 주어진 일종의 책임감이다. “그래, 우리가 이제 멍석을 깔아주마, 어디 한 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하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하면 너무 심한 농담일까? 아주 다행스럽게도, 긴 여정에 목마르고 지칠 무렵 내 눈 앞에 갑자기 현실로 나타난 오아시스 같은 이곳에서 동무가 되어주고 스승이 되어줄 교수님들과 학생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요즘이다. 연구실마다 각 분야의 고수들이 신공을 날리고 있는 이곳에서 나도 어벤저스의 일원이 된 기분으로 레벨 업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 능력치를 어떻게 공동체를 위해 쓸 것인가가 더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1973년에 시작된 서울대학교와 나의 인연이 별 탈 없이 2033년까지 계속되기를, 부디 그때 충만한 마음으로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하며 퇴임 소회를 쓰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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