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우, 이 논쟁은 윌리엄 템플 경(Sir William Temple)과 윌리엄 우튼(William Wotton)을 통해 개진되었는 데, 이들의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맥락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주장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고대파’ 템플과 ‘근대파’ 우튼 사이의 대립이 상당 부분 중국과 관련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역사가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적 주장을 펼친 템플은 근대 유럽인들이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들보다 우월한 문명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듯, 근대 유럽인들이 다른 동시대 문명보다 진보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템플은 특히 중국 문명과 유럽 문명의 비교를 통해 서양인들의 문화적 자만심을 비판하였다. 반면 근대 자연철학이 고대 자연철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하였다고 믿었던 ‘근대파’ 우튼은 템플이 자연철학에 대해 무지하다고 보았고 템플의 非기독교 문명에 대한 옹호, 특히 중국 문명에 대한 옹호가 기독교 교리에 크게 어긋난다고 비판하였다.
템플과 우튼의 논쟁은 영국인들이 자신의 근대성을 고민했던 방식과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새뮤엘 존슨 (Samuel Johnson)의 ‘중국에서 페루까지’(from China to Peru)라는 유명한 문구에서 볼 수 있듯, 이미 17세기 후반~18세기 초에 영국인들은 유럽, 동아시아, 중동, 남미지역의 문명과의 비교를 통해 ‘세계 속의 영국’, ‘세계사 속의 영국’ 의 위치와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자기반성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은 18세기 영문학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글쓰기와 ‘새로움’에 대한 탐구가 이러한 ‘근대성’에 대한 자기반성 및 비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중국 문명에 대한 영국 작가들의 자의식이 18세기의 ‘문필 근대’(literary modernity)에 특히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주목하는 18세기 작가 다니엘 디포(Daniel Defoe),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 토마스 퍼시(Thomas Percy)는 템플과 우튼을 여러 경로로 소환하였으며 영국 문학의 근대성을 고민하는 과정에 활용 하였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에 대한 탐구와 근대적 문학 형식의 관계성을 밝히고, 소설(novel), 정기간행물(periodical paper), 신문(newspaper), 문학 선집(miscellany) 등을 선구적으로 발명한 이들 작가가 각자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탐구하였는지, 어떻게 문학적으로 풀어냈는지 분석했다.
연구방법으로 가장 중시한 것은 당대의 일차 문헌에 대한 철저한 독해와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영문학사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저자와 저작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이 시대 영문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자 노력했다. 영국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시기, 영국 작가들은 서양 고전주의라는 기원과 이상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문학적, 미학적 질서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태동한 소설, 정기간행물, 신문, 문학 선집 등은 이 시대 문학의 역동성을 입증한다. 이 시대 작가들은 고전주의와의 길항 속에서 근대적 세계를 재현하고 사유하고자 하였는데, 고전문학과 차별화되는 영문학을 옹호하고 정립해가는 과정의 중심에 중국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18세기 영문학을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