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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소식) 교수논단 - 개교 80주년, 김민기, 정체성

인문대학 2025-07-19l 조회수 159

교수논단 - 개교 80주년, 김민기, 정체성

- 정용욱 (역사학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80년사” 편찬이 진행 중이다. 그 첫 작업으로 『대학신문』 기사를 통해 법인화 이후 10여 년간 서울대가 걸어온 발자취를 연표로 작성했다. 대학신문은 연말결산 기사로 그 해의 주요 이슈를 다룬다. 상위에 오른 주제들은 학생사회(학생회) 10회, 직원 및 학내 노동자 8회, 인권 5회로 1~3위를 차지하고, 시흥캠퍼스, 대학원생(대학원총학생회), 코로나가 각각 4회, 법인화, 도서관(관정관), 문제교수들, 총장 선출, 공사 관련 기사 등이 각각 3회 올라 있다. 독자가 학생, 교수, 직원 등 교내 구성원이므로 위 숫자들은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의 순위를 나타낸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학생회’가 상위에 오른 것은 학생자치의 위기를 반영한다. 코로나기간과 겹치기도 하지만 조사기간 중 투표 참가자 부족으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인권’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것은 구성원들 사이에서 혐오 표현, 장애인 차별, 성소수자 차별, 인종 차별, 위계 폭력, 성희롱·성폭력 등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교수들’은 연구비 횡령, 성추행 등과 연루된 사건이고, 이것 또한 인권과 연결된다. 2020년 가을 “서울대 인권헌장”이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광범한 지지를 받으며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정되지 못한 것도 인권이 상위에 오르는 데 한몫 했다.  

김민기가 우리 세대에게 ‘추억’이라면 젊은 세대에게는 ‘70년대의 역사’다. 이제는 극작가, 연극 연출가, 뮤지컬 제작자이자 극단 ‘학전’을 만들어서 K-Culture의 밑거름을 놓은 인물로 더 익숙해져 있다. 그는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권력의 표적이 되어 수도 없이 연행을 당했는데, 그의 연행 행로의 출발점은 1971년 봄 서울대 문리대 진입생, 의·치대 신입생 환영회였다. 환영회에 초대되어 “우리 승리하리라”, “해방가”, 그리고 “꽃피우는 아이”를 부른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이튿날 새벽 동대문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경찰은 노랫말 중 한두 마디가 북한을 찬양하는 의미가 있다며 얼토당토않은 트집을 잡았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신입생 환영회와 같은 학내 행사도 사찰의 대상이 되고, 연행과 음반 압수라는 난폭한 제재가 뒤따르던 상황에서 인권을 들먹이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평생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묵묵히 당신이 해야 할 일 찾아서 하시던 ‘뒷것’이었다. 또 그가 작곡하거나 부른 노래들은 풍부한 서정과 서민들의 일상의 감성을 전달하여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 부르는 국민가요가 되었으나 오히려 그러한 대중성이 독재 권력에게는 더 위험해보였다.    

70년대 대학문화는 일종의 대항문화(counterculture)로 간주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청년문화를 이끌었고, 그 뒤에 김민기가 있다. 노래극, 창작 판소리 등 그의 실험정신이 서울대라는 공간을 통해 발휘되고, 그의 예술적 실천은 부당한 폭압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들이 구현한 시대적 상징성이 이제 국민들의 보편적 감성으로 탈바꿈하여 언제, 어디서나 재연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대학은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그 시대가 낳은 상처들을 보듬으며 자기 정체성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미등록이나 제명 등으로 졸업하지 못한 재일동포 유학생 5명에게 2021년 8월 제75회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한 바 있다.  

종합화 50주년, 개교 80주년을 맞이하지만 서울대가 한국현대사 속에서 이룩한 성취와 서울대인들이 그 과정에서 만들어온 나름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변변한 사적관이 교내에 아직 없다. 해내외 유수한 대학들이 본부 또는 그 대학을 상징하는 중심 공간에 사적관을 두어 그 대학의 전통과 정체성을 구성원이나 해당 사회와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부재가 한층 안타깝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