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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 [교수논단] 바다에서 역사를 보다 - 역사학부 주경철 교수

2023-05-30l 조회수 507


[교수논단] 바다에서 역사를 보다 - 역사학부 주경철 교수 

땅과 바다 중에 어느 것이 더 클까? 오랫동안 유럽과 아랍의 지리학자들이 쉽게 답을 찾지 못한 어려운 문제지만, 오늘날 우리는 명확하게 알고 있다. 지구 표면의 71%가 바다이니, 바다와 육지의 비율이 대략 7:3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거대한 대륙이라고 하더라도 큰 스케일에서 보면 섬과 같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바탕이 땅이라 하더라도 결국 바다가 감싸고 있는 셈이다. 지난 날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육상에서 일어난 일에만 초점을 맞추기 십상이지만, 사실 바다가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 그랬던가? 사실 인류사의 초기부터 인간은 바다를 통해 확산했고, 바다를 이용하며 살았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간이 지구 전역으로 확산했는데, 이는 단지 육상 이동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인류의 확산 여정의 첫 단계는 오늘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바다를 넘어 이동한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들어가 살게 된 것도 요즘은 바닷길을 통한 이동을 강조하는 편이고, 태평양과 인도양 상의 많은 섬들마다 사람이 살게 된 것도 당연히 해상
이주 덕분이다.
  문명 단계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물질적 혹은 문화적 요소들을 서로 교환했다. 이때 육로상의 소통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해상운송이었다. 대개 두 문명권은 따로 발전한 것처럼 서술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두 문명권 사이에는 해상 운송이 매우 활발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다. 두 지역의 유물과 유적에는 해상 교류의 흔적이 아주 깊숙이 새겨져 있다. 바다는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소통을 막는 장벽이 되기 십상이다. 먼 바다를 건너는 것은 꽤나 숙련된 기술을 요한다. 땅에서 가까운 연안을 항해하며 어업을 하든지 지방 간 교역을 하는 것은 비교적 수월하게 한다 하더라도 대양을 건너는 일은 어지간한 문명 발전의 성과가 없으면 수행하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바다가 가진 역설은 그 반대의 가능성을 말해 준다. 우선 원거리 항해는 문명 단계의 성과가 아니라 그 이전 시기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문명이 원거리 항해를 낳은 게 아니라 원거리 항해가 문명 발전을 촉진시킨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대신 한번 ‘돌파’가 일어나면 그 후에는 바다야말로 가장 신속하고 또 가장 규모가 큰 교류와 교역을 가능케 한다. 인류는 일찍이 그런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용해 왔다. 인도양의 몬순 체제가 대표적이다. 철에 따라 한 방향으로 규칙적으로 강한 바람이 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인도양은 활력 넘치는 항해인들의 무대가 되었다. 말레이 지역에서 인도양을 가로질러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가는 여정을 생각해보자. 이 엄청난 거리를 어떻게 이동할 수 있는가? 바람만 잘 타면 충분히 가능하다. 지도상에서 이 섬을 보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매우 가깝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인들이 그 가까운 거리를 건너고 섬 내부로 확산하는 것보다는 말레이 제도의 사람들이 몬순을 이용해 이곳으로 오는 게 훨씬 빠르고 편하다. 그 결과 마다가스카르 섬은 말레이 계 사람들이 먼저 들어와서 말레이 문화권을 성립시켰다. 반투 계 문화는 나중에 그 위에 덧붙여졌을 따름이다.
  이슬람교가 성립되면서 조만간 광대한 이슬람권이 만들어졌고, 같은 시기에 중국에는 부유하고 세련된 문화를 자랑하는 당 제국이 건설되었다. 두 사건 모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바다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개의 거대 역사 단위가 해로를 통해 소통하면서 문명적 융합이 일어난 점이 더더욱 흥미롭다. 중국의 항해술 발전이 지속된 결과 명대 초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상 모험에 속하는 정화의 원정이 가능했다. 만일 중국이 세계의 바다를 먼저 지배했다면 그 후 인류사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을까? 그러나 실상은 그와 다르게 진전했다. 중국은 바다를 버렸고, 반대로 ‘프롤레타리아 유럽 문명’은 금과 향신료를 찾아, 혹은 종교적 동기로, 혹은 군사적 힘을 믿고(그 외 어떤 요소로 설명하든 간에) 바다로 나아갔고 세계를 연결했다. 이후 시기에 대해서도 바다를 통한 역사 여행을 계속 할 수 있다. 제국주의적 확산 또한 바닷길을 타고 이루어졌고, 세계대전의 중요한 국면이 바다에서 전개되었으며, 현대 세계 경제의 놀라운 발전은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아 진행되었다.
  소위 해양사는 이처럼 역사를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는 길을 열어준다. 내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연유로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되었는지는 명확한 기억이 없다. 아마 어떤 ‘답답함’ 같은 것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싶다. 학계마다 대개 많은 연구자들이 따르는 오랜 전통이 있게 마련이고, 또 그것이 가진 미덕이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미덕도 자칫 사람을 옥죌 수 있다. 결국은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많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만큼 위험하면서 동시에 짜릿한 게 없다. 사는 게 답답할 때 사람 없는 바닷가에서 푸른 바다를 보면 속 시원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시원하게 공부하는 것만큼 즐거운 게 없다. 다소간 그런 심정으로 바다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의 전기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폭군같은 아버지가 싫었던 소년은 딴 이유가 아니고 오직 집에서 멀리 떠나기 위해 로렌 지방의 고향집을 떠나 파리 대학에 진학한다. 집을 떠나기만 하면 오케이. 학과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우연히 고른 게 소르본 대학 역사학과이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해 보니 별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멋진 말로 이렇게 설명한다. “열정은 뒤늦게 찾아왔다.”
 
  당분간은 바닷가의 멋진 풍광을 즐기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