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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너스 프로그램 수기]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김광호

2022-11-08l 조회수 1275



[아너스 프로그램 수기]
질로테 반란(1342-1350)에 대한 정치사상적 이해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김광호 

돌이켜보면, 제가 인문학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는 ‘아는 척의 즐거움’이었습니다. 학창시절의 저에게 있어 역사나 언어에 대한 지식은 ‘남들이 쉽게 읽어내지 못하는’ 박물관이나 신문과 같은 일상의 텍스트를 ‘보란 듯이’ 읽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진심인지 아닐지 모를 남이 보내던 눈빛은 저의 ‘배워가는 즐거움’이 되었고, 저는 다분히 남을 의식하는, 즉 ‘겉멋이 든’ 역사와 언어지식을 탐닉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동로마제국의 역사는 이 겉멋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주제였습니다. 동로마제국은 로마제국의 연장선에 서서 거의 천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중해 동부에서 광범위하게 패권을 행사한 국가라는 화려한 칭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에 대한 국내 연구 진척은 미진했고, 또 그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 그리스어, 라틴어와 같이 쉽게 접하기 힘든 언어로 된 사료의 독해가 전제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동로마제국 역사를 호기롭게 서양사학과 졸업 논문 주제로 선택
했습니다. 하지만, 논문 세부 주제를 구하기 위해서 사료를 읽어가던 저에게 비친 동로마제국의 역사는 제 인식과 달리 화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1204년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의 동로마제국은 슬라브, 튀르크 등의 외부 세력은 물론, 내분에 시달려 패권을 발휘하기는커녕 국력의 쇠퇴기를 걷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다시 함락되기까지는 200년 넘는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점에 흥미를 느껴, 동로마제국의 수많은 내분 사례 중 7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테살로니키의 질로테 반란의 사례를 탐구하며 국체 유지의 비결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독창적인 분석을 요하는 논문의 특성이 가장 소화하기 난감했습니다. 그때까지의 저는 주어진 자료와 현상을 잘 이해하기만 하면 되었을 뿐,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대한 다양한 논서들을 읽으려고 노력했고, 논문 지도교수님이셨던 한정숙 교수님과 논문 작성 동기들의 피드백 과정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아너스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구의 취지와 목적을 다시 정리한 것과 아너스 지원금으로 여러 자료에 접근한 것도 이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오랜 분란과 제국 유지라는 상반된 상태의 공존에 대한 원인으로 제기한 것은 결국 당시 테살로니키 시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봉건-분리주의적 정체성과 헬라스적 정체성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특정한 역사적 상태에 대한 원인으로서 저는 인간의 성정을 제시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분석은 제가 그때까지 추구하던 껍데기와 같은 ‘앎’이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Humanitas)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대학원생으로서, 혹은 연구자로서 계속 인문학이라고 하는 분야의 공부를 해나갈 것입니다. 겉치레에 불과했던 지식 혹은 인식이 아닌 인간의 이해와 맞닿아 있는 독창적 분석이 마땅히 인문학도로서 추구해야 할 방향임을 제시해줬던 아너스 프로그램 및 졸업 논문 작성 경험은 아마 저러한 제 미래에도 크게 유효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에, 도움을 주셨던 한정숙 교수님, 2022-1학기 서양사연습을 수강한 학우님들, 그리고 아너스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신 분 모두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