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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 [연구동정] 박완서 학술기금 인문학 펠로우 김영미

2021-11-02l 조회수 2619


연구제목: 여성작가의 계보와 저자성

박완서 학술기금 인문학 펠로우 김영미

한국현대소설을 공부하는 신진연구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성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입니다. 『박완서 문학의 ‘저자성’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하면서 ‘저자성’ 개념을 중심으로 박완서 문학의 문학적 용법과 정치적 전략을 동시에 주목함으로써 통합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박완서와 여성작가의 저자성이라는 주요 개념을 중심으로 최근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박사학위논문에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한국문학사 전반에 대한 검토로 확장시켜서 여성작가와 그들의 텍스트가 가진 가치를 새롭게 의미화함으로써 젠더 관점의 문학사 기술을 위한 토대로 삼고자 합니다. 

  ‘글을 쓰는 자’라는 중립적 표현과 달리 독창성과 창의성, 권위를 지닌 예술가를 의미하는 ‘저자(author)’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저자의 권위’의 해체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 논의가 페미니즘 문학론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라는 전통적 관념의 가부장성에 대한 비판과 관습적 저자 범주 극복의 필요성과 함께 저자 개념에 내포된 독창성과 창의성, 권위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여성작가의 모순적이고 경계적인 성격의 저자성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 역시 요청됩니다. 여성작가가 저자성을 획득하기 위해 벌이는 분투의 과정은 결코 남성 중심적 저자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문학사의 서술 역시 단순히 기존 문학사의 정전을 여성작가의 것으로 대체하는 작업으로 정리될 수 없습니다. 특정 작가 혹은 작품 위주의 연구 경향을 탈피하여 다양한 여성작가들의 글쓰기 양상을 살피고 그들이 저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서사적 전략을 취합할 때, 낡은 문학사 서술 방식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문학사 서술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젠더 관점의 문학사 서술을 위한 여성작가의 계보와 저자성에 대한 연구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 자체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1910년대 말부터 등장한 여성작가의 계보를 탐색하여 일제강점기, 전쟁기, 전후로 이어지는 문학사적 관점에서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대한 작업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준비한 박화성의 1930년대 장편소설에 주목한 「‘여성’으로서 ‘작가’가 된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8월 학회지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박화성은 흔히 ‘여류’로 불리기를 거부했던 여성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젠더화를 거부했던 박화성의 소설과 수필 등에서 오히려 ‘여성’이라는 젠더를 망각한 작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 대한 자각과 이에 대응하며 저자성을 획득하기 위한 전략적 글쓰기의 양상을 발견할 수 있음을 논문에서 밝혔습니다. 젠더화의 거부와 젠더적 규범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 박화성의 문학적 실천은 그가 여성이자 작가로서 느낀 예민한 감각의 방증이자 문단 내 여성문학의 게토화 시도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자성 개념을 다양한 여성작가의 계보를 검토함으로써 남성으로 상징되는 저자성뿐 아니라 포스트 모던적 선언과도 맞서면서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큰 흐름 속에서 박사학위논문의 대상이자 여성작가의 저자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했던 박완서 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또한 병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박완서 작가의 타계 10주기입니다. 타계 10주기를 맞아 가을에는 여러 연구자들이 모여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그 내용을 토대로 단행본을 출간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에게 인문학 연구는 늘 어려운 숙제 같으면서도 사람과 세상에 다가가는 설렘의 또 다른 이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건넬 수 있는 그런 인문학 연구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제53호 인문대 소식지 '교수논단'에 게재될 글을 위와 같이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