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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은빈(미학과) 학생 인터뷰

2018-03-05l 조회수 8899

  <턴투에이블 동아리 구성원들과>

 인터뷰 진행 : 최기섭(공연예술학 협동과정 박사 과정), 이정연(비교문학 협동과정 석사 수료)

 

Q.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미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원에 가는 하은빈이라고 합니다. 학부는 12학번이에요. 6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되는 거죠. 이번 겨울까지 계절학기 수업을 두 개 듣고, 마지막 학기도 학점을 꽉꽉 채워서 수업을 듣고 졸업하게 됩니다. 

 

Q. 휴학을 오랫동안 하셨던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 휴학을 2013년과 2015년에 한 번씩 했어요. 2013년에는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이하 짓)이라는 극단 활동을 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연합해서 연극을 하는 모임이죠. 2015년에는 학교를 다니다가 중도 휴학을 했어요. 진로 고민도 있었고 그냥 막연히 수업을 듣는 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학교에 갔다가 수업을 안 듣고 그냥 집에 돌아오는 일이 많았죠.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이럴 바에는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휴학하는 동안 수영을 배웠어요. 

 

Q. ‘짓’에서 어떤 작품 활동을 하셨나요?

- 2014년 초에 에밀 졸라의 소설 원작 <테레즈 라캥>이라는 공연과, 그 해 여름에 <프릭쇼>라는 공연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프릭쇼>는 서울변방연극제에 출품하기도 한 작품이에요. 연극을 만드는 건 무척 재미가 있었지만 극단의 재정적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첫 공연에서 몇 백만 원이 손해가 나기도 하고, 그래서 지원금을 여기저기서 모금하기도 했죠. 연습실 월세가 너무 비쌌던 것도 부담이 많이 되었고요. 장애인 극단이라 접근성이 보장됐어야 했어요. 역세권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보다 비쌌던 거죠.

 

Q. 연극제에 초청될 정도면 상당히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을 텐데요, 극단 활동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 저는 ‘짓’에 들어가기 전에는 장애인 지인이나 친구들이 없었어요. ‘짓’에 들어가기 직전에 했던 연극 동아리에서 장애를 가진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 친구랑 같이 ‘짓’에 들어가게 됐거든요. 저 역시 처음에는 주변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짓’에서 처음으로 많은 장애인 친구들과 언니오빠들을 알게 됐어요. 

 

Q. 연극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 연극을 만드는 단계에서 어떤 딜레마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무대에 올릴 만한 몸과 상태를 만들기 위해 현재의 몸을 재단하거나 제련하는 일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죠. 예를 들어 청각 장애인 배우가 말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연습 과정에서 배우에게 계속해서 더 크게 말하도록 요청한 일이 있었어요. 무대에 적합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라지만, 그 배우는 힘들어 했죠. 그런 부분들이 저로서는 고민이 됐어요. 뭐랄까, 다양한 몸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서 자신의 몸 자체를 보여주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규범을 깨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됐는지 모르겠어요.

 

Q. 현재 서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턴투에이블의 회장으로 활동 중이신데, ‘짓’의 연장선에서 시작하게 된 활동인가요? 

- 2014년 여름 공연 이후에 극단이 정리되면서 저는 학교 생활에 다시 집중을 하게 되었어요. 학교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던 와중에 학내 장애학생 다섯 명이 장애인권동아리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중에 제 남자친구도 있었고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하고 싶더라고요. 짓에서의 경험 덕분에 저의 주요 관심사가 장애나 장애 친구들, 학내 인권 문제와 같은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어요. 설명회에 가고 동아리를 만드는 단계에 저도 참여를 하게 됐어요. ‘턴투에이블(TurnToAble)’이라는 동아리 이름은 제가 지었어요.(웃음) ‘스누에이블’이라는 아이디어도 나왔는데 저는 ‘스누’가 들어간 이름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웃음)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지금의 이름을 제가 제안하게 되었고, 모두의 동의를 얻어 결국 채택이 되었습니다. 
 
 

Q. 턴투에이블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 모임인가요?

- 턴투에이블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같이 있는 동아리입니다. 우선 저희는 한 학기에 한 번씩 문집을 내요. 지금은 여섯 번째 문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무엇이 됐든 장애와 관련된 고민이 있는 글들을 모아 문집을 만들어 매 학기 초에 학내에 배포하고 있어요. 문집의 이름은 디스에이블(ThisAble)입니다. ‘Dis’가 아니라 ‘This’예요. 문집을 학내에 배포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중앙도서관 터널과 학생회관 앞에 주된 지점이 되고 있어요.
  이외에도 저희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특히 동아리 초기에 많은 사업을 진행했어요. 가령 모든 단과대 학생회가 새터(새내기배움터) 자료집에 장애 이해 교육자료를 넣을 수 있도록 했고, 새터 준비 위원회와 단과대 임원들이 장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어요.
  도서관 배리어프리(barrier-free: 장애인의 시설 이용에 장애가 되는 장벽을 없애기 위해 실시하는 시책 또는 운동)를 위해서도 노력을 했어요. 당시에는 관정도서관이 만들어지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도서관이 완공되고 나서 보니 배리어프리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도서관을 준공할 때부터 태스크포스를 꾸려서 도서관측과 이야기를 했는데도 8개월 동안이나 해결이 되지 않았어요. 관정도서관은 사회적 기여도 부문에서 건축상을 받았는데도 배리어프리 측면에서는 해결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죠. 장애 학생을 위한 경사로 하나를 만드는 데도 도서관측은 입주 상가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상가들은 도서관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대립했어요. 경사로 하나 만드는 게 그렇게 엄청난 일이 아닌데도 말이죠. 지금은 저희가 요청했던 것들 중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 외에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예요.
  장애 학생의 학내 이동권 관련해서도 많은 문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학내 저상버스 운행 문제예요. 학교로 들어오는 버스 중에 저상버스는 5516번 라인에서 단 한 대가 운행이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운행이 중단되었어요. 저상버스는 차체가 낮은데 교내 과속방지턱 때문에 고장이 자주 발생한다는 이유로 운수회사측이 학교에 운행 중단 통보를 했던 거예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를 수용해 버린거죠. 사실 학내에는 장애학생 셔틀버스가 한 대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스케줄을 미리 제출해서 정해진 시간에만 타야하는 버스예요. 자율적인 이동이 보장되지 않는 거죠. 그래서 턴투에이블은 5516번 저상버스를 되찾아오기 위한 운동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규정보다 높게 설치된 과속방지턱을 낮추는 공사를 하게 된거죠. 이를 위해 기자회견도 하고 서울시의원도 만나는 등 지난한 과정이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5516번 저상버스의 운행이 재개되었습니다. 단 한 대의 운행이기 때문에 타는 건 어렵지만 상징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운행이라고 생각해요. 

 

Q. 턴투에이블이 정말 중요한 많은 일들을 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애 학생들의 이동권에 관해서 궁금한 점이 있는데, 저상 버스가 단 한 대만 운행이 되고 있다면 휠체어를 탄 서울대 학생들은 학교 밖에서 안으로 어떻게 이동하나요?

- 학생 성향마다 다른 것 같아요. 버스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제 남자친구는 주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다녀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면 더 먼 거리도 쉽게 다닐 수 있는데, 원하는 시간에 타기 힘들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예요. 운이 좋으면 불렀을 때 바로 오기도 하지만, 세 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어요. 콜 대기자가 180명이나 될 때도 있고요. 한 마디로 턱없이 부족한 거죠. 특히 관악구에는 장애인이 많은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문제 때문에 자주 이용하지 않아요.  
 
 

Q. 학교 내부에서의 이동은 어떤가요? 예를 들어 수업을 듣기 위해 건물과 건물로 이동하거나 한 건물 내부에서 이동할 때 장애 학생들의 불편함은 없나요?

- 건물마다 달라요. 가령 음미대의 경우 건물 내부가 굉장히 미로 같이 되어 있어요. 복도 중간에 계단이 많이 있는 복층 구조라서 장애인이 이동하기가 불가능하죠. 학생회관도 마찬가지예요. 반면에 인문대나 사회대, 법대는 장애인 엘리베이터가 최소한 마련되어 있어서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해도 건물 내 배리어는 많이 개선되고 있어요. 그런데 건물 내부의 이동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이동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장애인 이동 보조 도우미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장애인은 자하연에서 경영대 사이의 길을 혼자서 갈 수가 없었어요. 인도의 경사가 심한 데다가 너무 울퉁불퉁하기 때문이에요. 또 수동 휠체어는 정말 작은 균열이나 요철에도 취약해서 우리 학교에서는 타고 다니는 게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캠퍼스가 평탄하고 가파르지 않으면 별 문제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 늘 문제가 돼요.  
 
 

Q. 장애인이 이동하기 위해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경우에는 길이 평탄해야하고 시각 장애인의 경우에는 점자보도블록이 있어야 하겠네요. 이런 물리적인 여건 외에도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있을까요? 

- 서울대의 지형 자체가 경사가 있기 때문에 길 정비가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최소한 이동 보조 도우미 지원이라도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턴투에이블에 시각 장애인 학생이 있어요. 이 학생의 경우 매 학기 초반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예요. 왜냐하면 이동 보조 도우미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매 학기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어떻게 보조해주면 좋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이동 보조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 없이 도우미가 투입되다보니 보조를 할 때 허리를 잡고 무작정 들어 올린다든지 등쪽을 무리하게 민다든지 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사실 에티켓을 익히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길을 다닐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사회였다면 장애인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내 주변에 장애인 친구가 생김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을 익히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테니까요. 장애인이 거리로, 학교로, 사회로 나올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개선되겠죠. 그래도 서울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주고 있다는 건 무척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Q.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실 수 있나요?

-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턴투에이블이 만들어지기 전인 2003년에 설립된 서울대학교 기관이에요. 당시에 장애학생들이 학내 장애 인권 운동을 많이 했었고, 그 결과 센터가 세워지게 되었다고 해요. 센터를 포함해 현재 장애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학내 시스템은 그분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죠. 센터는 장애학생을 위한 학습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학내 이동권 향상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어요. ‘다솜누리’라고 불리는 장애학생휴게실도 센터에서 운영해요. 아쉬운 점은 장애학생과 관련된 문제점을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센터에 상주하는 직원이 두 명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는 거죠. 물론 요청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해결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세요. 
 
 

Q. 문제점을 요청하고 개선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 뚜렷한 문제점들은 요청을 하고 개선해 나가면 되는데, 문제라고 규정을 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이 있어요. 가령 건물 출입문이 너무 무거워서 장애인이 열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는 막상 개선을 요청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모든 출입문의 설계 자체에 장애인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입문은 기본적으로 열고 닫기가 매우 무겁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건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할 때마다 저희가 구체적인 부분들을 요청하면 좋겠지만, 작은 동아리로서 주장을 강하게 할 만큼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이 무척 아쉬워요. 학교가 장애 학생을 많이 선발하지 않는 것도 문제의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연세대나 고려대에서 다양한 장애를 가진 많은 학생들을 수시 지원으로 선발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서울대는 중증 장애인에 한정해서 정시로만 소수를 선발해요. 선발되는 학생들은 보통 7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우수한 장애 학생들은 주로 연세대나 고려대로 진학을 하죠. 사실 경증이든 중증이든 장애의 정도와 학생의 우수함과는 큰 관계가 없는데 서울대는 중증 장애인만을 선발해요. 서울대는 아직 중증 장애인을 제대로 케어할 만한 환경이 되지 않는데다가 장애 학생의 인원까지 적다보니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서울대도 다양한 장애 정도를 가진 학생들을 많이 선발해서 장애 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학교도 더욱 장애친화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Q. 장애 학생들의 학내 이동권 개선을 위한 턴투에이블의 활동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방학인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 현재는 이동권 전수조사의 일환으로 학내 장애인 화장실 현황을 조사하고 있어요. 학내 건물 전체의 절반을 조사한 상태입니다. 총 일곱 팀이 조사를 했고 한 팀당 일곱에서 여덟 건물을 담당했어요.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없는 건물이나 단과대가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인문대나 사회대는 타과 학생들도 수업을 수강하러 많이 오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충분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사회대 도서관에 있는 장애인 전용 화장실을 제외하면 사회대 건물에는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아예 없어요. 인문대는 있기는 하지만 충분하게 확보되어 있지 않아요. 그리고 일반 화장실의 넓은 칸을 장애인 화장실로 마련한 경우도 있어요. 이 경우 실제로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충분한 폭과 넓이가 아니라서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아요. 장애인 화장실이라기보다는 청소 물품 등 적재품이 너무 많아서 사용을 할 수 없는 화장실도 있었어요. 어떤 장애인 화장실은 문이 커튼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마저도 열기가 너무 어렵고, 심지어 장애인용 변기 바로 옆에 남성용 소변기가 설치된 경우도 있었어요. 이 소변기는 분명히 장애인 화장실의 정식적인 시공 이후에 설치된 것이 분명한데 그 이유는 그 소변기가 변기 양쪽의 안전바 중에 한 쪽을 제거한 위치에 설치되었기 때문이에요.  
 
 

Q. 학내 장애인 화장실 현황이 많이 열악하군요. 그렇다면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그나마 제일 많이 확보되어 있는 건물은 어디인가요?

- 법대예요. 법대 도서관 한 건물에만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11개가 있어요. 새 건물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새 건물이라고 해서 모두 배리어프리 하지는 않아요. 물론 충분한 공간과 자본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장애인에 대한 의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Q.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 턴투에이블은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학부생들이 알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분명 기쁜 일이지만, 학생들이 그만큼 동아리에 들어오진 않아요. 학교에는 장애학생들이 꽤 있는 편인데, 저희 동아리는 장애학생이 적은 편이라 장애학생을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장애와 관련한 자문이 들어오거나 요청할 것이 있을 때 저희가 여력이 안 돼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사업들인데 할 수가 없는 거지요. 장애인 화장실을 조사 사업도 인권센터에서 예산을 지원해주지 않았으면 저희는 아마 전혀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인데 여력이 안돼서 못하는 일이 너무 많아 아쉽죠. 
 
 

Q.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동아리 활동 인원도 충분히 확보되기 힘든 것 같군요.  

- 이해는 돼요. 자기 삶이 바쁘니까…. 저희 동아리에 관심은 있는데 들어오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 이유를 들어보면, 장애인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줄까봐 두렵다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뭐랄까, 학교, 사회 모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그 개개인에게 어떤 죄책감을 부여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오히려 저희 쪽에서는 여론을 환기할 수 있게 조금씩 바꿔나가자 하는 생각을 하죠. 여력이 안 된다는 게 제일 힘든데,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고, 지금보다 인원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간 동아리 회장이 네 번 바뀌었는데, 다 처음 만들 때 있었던 사람들이 회장을 해왔어요. 물론 새로 들어온 사람도 있긴 하지만 회장 바톤을 넘겨줄 사람이 필요하죠. 제가 부회장을 일 년 하고 이제 회장을 하는 건데요, 회장으로 한 학기 했고, 이제 한 학기 더 남았어요. 이번 한 학기 동안 누구라도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웃음)

 

Q. 턴투에이블은 학부생 위주로 구성되어 있죠?

- 그렇긴 한데요. 들어오고 싶다면 누구라도 환영해요. 대학원생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Q. 한국 사회가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턴투에이블이 만들어지기 전인 2003년에 설립된 서울대학교 기관이에요. 당시에 장애학생들이 학내 장애 인권 운동을 많이 했었고, 그 결과 센터가 세워지게 되었다고 해요. 센터를 포함해 현재 장애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학내 시스템은 그분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죠. 센터는 장애학생을 위한 학습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학내 이동권 향상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어요. ‘다솜누리’라고 불리는 장애학생휴게실도 센터에서 운영해요. 아쉬운 점은 장애학생과 관련된 문제점을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센터에 상주하는 직원이 두 명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는 거죠. 물론 요청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해결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세요. 
 
 

Q. 문제점을 요청하고 개선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 학내에서는 턴투에이블이 생겨난 이후에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말씀하셨던 시외버스터미널 문제와 같은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냉담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속상할 때가 많아요. 또 2016년이 병신년이었잖아요. 병신년에 대한 수많은 언어유희가 쏟아져 나왔어요. 저희 동아리의 문집 주제도 병신육갑이에요. 병신에 대해 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어서 제목을 달았는데, 병신이라는 말을 철폐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병신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할 때 어쨌든 걸리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그것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도 그렇고, 다들 생각이 달라서 조금 논쟁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것이 논쟁이 되다 보면 이것을 편하게 쓰던 사람들이든,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든, 이것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이걸 쓰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거나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아주 많죠. 장애인이라는 말도 욕으로 많이 쓰이잖아요. 장애인 친구가 옆에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건 정말 장애인 같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문제는 그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는 거예요. (자기가 누구 앞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를) 모른다는 게 문제인 거죠.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는데,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Q. 턴투에이블을 응원하겠습니다. 이제 하은빈이라는 사람의 학교 생활을 조명해보고 싶은데요, 학부 4년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점들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 사실 학교 생활이 조금 아쉽긴 해요. 전공 공부도 어렵고 아는 사람도 많이 없다보니 학과 생활보다는 그 밖의 활동을 주로 했죠. 그런데 이번에 졸업 논문을 쓰고 뒤풀이 자리에 갔는데 생각보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재미가 있었고 사람들도 저에게 친절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니 그제서야 학과 생활이 아쉬워지더라구요.  
 
 

Q. 전공 공부도 소홀했고 학과 생활도 많이 참여하지 못했는데도 같은 전공으로 석사를 진학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 코어 사업이 대학원 진학의 큰 계기가 되었어요. 코어 사업의 다른 이름은 ‘대학인문역량 강화사업’인데, 이 사업은 인문학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인 학부생에게 매 달 80만원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저의 경우에는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 약간의 마음이 있던 차에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완전히 결심하게 되었어요. 학부 생활을 하면서 턴투에이블 활동이나 공연 등 원하는 일들은 마음껏 하긴 했지만 한 번도 치열하게 공부를 해보지 않은 채로 사회에 나간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어요. 이런 마음도 대학원 진학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동안 해왔던 활동들과 미학이라는 제 전공 사이의 관계성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는 데 큰 계기가 되었어요.
  턴투에이블 활동이나 공연 등 제가 해왔던 일들은 모두 아름다움이나 몸, 예술과 관계가 있어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런 개념들은 미학에서 다루는 개념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취직을 하게 되면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게 되는 반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 그런 활동들 뿐만 아니라 제가 참여했던 예술 작업에 대해서 공부도 할 수 있고, 다른 연구자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배울 수도 있겠죠. 이런 기대감 때문에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그동안 어떤 예술 작업에 참여하셨나요? 

- 작업이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해보이네요. 저는 연극이나 무용과 같은 공연 예술 창작 활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제가 공연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인권이나 당위나 지성에 따른 평등을 주장하기 보다는 한 인간의 삶의 서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적인 것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특히 저는 여성이나 장애인, 퀴어 등 소수성에 관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데 예술을 통해 이런 주제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예술의 정치적 무기로서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지 공부해보고 싶어요. ‘짓’ 역시도 이런 생각의 일환으로 참여했던 활동이었던 것 같아요. 연극을 통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동등하다!”라는 단순한 논리의 주장을 펼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장애인의 몸은 보통 한계를 가진 몸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저는 그 몸이 가진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표출하고 분출함으로써 사람들이 매혹되었으면 좋겠어요. 
 
 

Q. 미학과에 들어온 계기는 무엇인가요? 

- 학부로 들어올 때는 계열로 들어왔어요. 인문2 계열이어서 철학 관련 학과나 사학 관련 학과 중 하나를 전공으로 선택해야 했었죠. 사학은 처음부터 큰 관심이 없어서 미학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예술을 다루는 게 뭔가 멋있어 보였고 영화 같은 걸 많이 볼 것 같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기대로 미학을 선택한거죠. (웃음) 미학 공부를 잘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잘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외부 활동을 하다보니 당장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고시 공부나 로스쿨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나씩 소거시켜 나가다보니 결국 미학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관심있는 것은 예술 비평과 예술의 사회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였고, 이에 대해서라면 공부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Q. 인문대에서 운영하는 학부생 우수 졸업논문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졸업논문을 작성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졸업논문을 작성하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일부를 선발하여 우수한 논문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지도교수의 지도 아래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어학, 문학, 철학, 사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로 구성된 세미나에 여러 번 참석하게 되죠. 학기말에는 졸업논문 발표회를 개최해서 우수논문을 선정해서 포상을 합니다. 세미나 뿐 아니라 서지 정리 프로그램 등 논문 작성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유용한 강의도 있어요. 선발된 학생에게는 50만원의 연구비도 지원해줘요. 세미나에서 제 논문을 발표하는 경험도 도움이 되지만, 다른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토론을 하는 시간도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미학과의 경우에는 졸업논문 수업이 따로 있어서, 이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논문 초안을 작성해서 검토를 받고 사람들 앞에서 중간 발표를 하고 수정 단계를 거쳐 최종 논문을 작성하는 일련의 논문 작성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두 번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논문을 작성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미학과처럼 졸업논문 수업이 개설되어 있는 학과는 많이 없어서 대부분 개인적으로 논문을 쓸텐데, 그런 학생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Q. 졸업논문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너무 창피한데요? (웃음) 저는 프랑스 작가 소피 칼(Sophie Calle)의 <The Blind>라는 작품을 미셸 푸코의 관점에서 의미를 고찰하는 논문을 썼어요.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이 섭외한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에게 아름다움의 경험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작가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협업작품이에요. 즉 답변의 내용을 이미지로 재구성한 작품이죠. 가령 “아름다움에 대해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무엇입니까?”라는 작가의 질문에 장애인들은 아름다움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렇게 그들의 언어를 기록하고, 그 언어에 담긴 내용을 작가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을 하는 거죠.
  저는 논문에 그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어긋남에 주목했어요. 장애인들의 진술과 작가의 이미지는 사실 전혀 일치하지 않거든요. 말하자면 작가가 제시한 이미지를 보는 것이 오히려 장애인들 당사자의 경험을 재현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재현을 교란시킨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었어요. 예컨대 이 작품에서 어떤 시각 장애인은 바다에 대해서 묘사를 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다에 대해서 본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애인의 진술이 적힌 문장을 보면 많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런데 이 문장 바로 위에 작가의 바다 사진이 배치되어 있다보니 그 진술이 제안하는 이미지가 단 한 장의 바다 사진에 포섭되어 버리는 거죠. 사실 그 장애인이 말하려고 했던 바다는 그 사진과는 전혀 다른 바다거든요. 작가는 바로 이러한 불일치를 의도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불일치와 어긋남을 마그리트 작품에 대한 푸코의 견해를 빌려와서 해석하려고 했어요.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은 파이프 그림이 있고,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진술이 있는 유명한 작품이에요. 푸코는 이 작품의 언어와 이미지의 어긋난 관계에 대해서 고찰했어요.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 사이를 무의식적으로 동일화시키는데, 푸코의 관점에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이러한 견고한 무의식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소피 칼 역시 의도적으로 관객을 교란시킨다는 것이 저의 논지였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작가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해요. 

 

Q. 석사 입학을 앞두고 있는 시점인데 요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 문집 제작과 학내 장애인 화장실 조사 사업 등 동아리 일 때문에 너무 바빠요. 문집은 개강 전까지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저를 포함해서 동아리 사람들 모두 글을 써야하기 때문에 회장으로서 제가 독촉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에요. 문집에 실릴 글이 일단 모여야 교열팀을 꾸리고, 편집을 하고, 내지 디자인을 해서 인쇄를 맡기고, 지원금 정산 회의를 하는 등의 제작 과정을 전부 거쳐야 하는데 저에게 힘이 많이 부족합니다. (웃음) 그리고 화장실 조사 사업에 있어서는 현재 대략적인 조사는 마친 상황이에요.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이제 경과 발표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해요. 이를 위해서 화장실 조사 사업에서 나왔던 여러 가지 데이터들을 항목별로 분류하고 종합해야겠죠. 그나마 요즘 유일한 낙은 책모임이에요.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제가 원해서 벌인 일들이기는 해도 에너지가 많이 고갈되어 힘들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통해서 많은 활력을 얻고 있습니다. 물론 책보다는 모임 이후의 술자리가 즐겁기는 하지만요. (웃음)



<학내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 ‘곰인형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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