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뉴스

[인터뷰] [아너스 프로그램 수기] 철학과 안혜준

2024-12-12l 조회수 115


철학과 안혜준


지식의 안전성 조건의 대안으로서의 사태 조건: 
지식의 운-배제(Anti-luck) 직관 재검토 및 대안적 접근 제시

검색이 지나치게 쉽고 흔해진 우리 시대에, 지식은 잠재태로서 일종의 편재로 간주되는 듯합니다. 얼마 전 시청한 한 광고에서, 주인공은 동행인에게 자신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자 곧바로 검색하여 그 내용을 읽어줍니다. 이어지는 광고 문안은 "이제는, 누구나 천재모드 ON"입니다. '천재'가 추정컨대 다량의 지식의 보유자를 의미로 사용된 단어라면 우리는 전자기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 매력적인 광고였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 시대에 도대체 지식은 무엇인지 돌아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앎을 정의하는 문제는 예전만큼 뜨거운 주제가 아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논의가 지금처럼 중요했던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쏟아지는 우리 시대에 지식은 마치 도처에 깔린 돌처럼 취급되며, 그중 아무것이나 주워 안다고 주장하다 보면 거짓 정보에 휩싸이기 십상입니다. 이조차 대수롭지 않은 현상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그렇기에 지식을 정의하는 문제는 단지 잘 정립되어 있지만 언어로 정의되지 않은 어떤 개념을 언어로 우리 손에 쥐는 작업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로 쏟아지는 돌들 중 우리가 무엇을 정말 안다고 할 수 있을지, 처음으로 돌아가 따져 물어보는 작업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식의 지위가 발밑에서 우리의 눈높이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제 논문 «지식의 안전성 조건의 대안으로서의 사태 조건: 지식의 운-배제(Anti-luck) 직관 재검토 및 대안적 접근 제시»는 지식의 정의를 제시하는 과제에 도전합니다. 먼저 기존 시도들을 검토하며 그 기반에 있는 직관을 살펴보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지식을 정의하려는 선행 논의들의 방향은 인식적 운을 배제할 수 있는 조건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에 대한 반례가 계속해서 제기되어 온 바, 기저의 직관을 재검토함으로써 과업의 방향 재설정을 꾀했습니다. 운-배제 직관 자체를 의심할 만한 이유를 두 가지 사례의 비교를 통해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실시간 상영 비디오 등을 통해 어떤 사실을 믿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디오에 불과한 정보를 보고 있는데, 환각이나 착각에 의해 그것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고 믿는 경우에는 그로부터 얻는 정보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주체가 알고 있다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태 파악‘이라는 새로운 직관을 끌어내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직관의 정식화를 시도했습니다. 제 논문은 지식 정의 문제의 관점을 운에 관한 논의에서 ‘사태 파악’이라는 새로운 직관으로 옮겨오는 데 일의적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형별로 최대한 많은 사례를 다룸으로써 제가 제시하는 조건이 기존 이론들이 부딪히는 반례들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인식론이 생경한 그 이름과는 달리 우리 일상과 친밀한 주제를 다룬다고 생각합니다. 정의 자체가 다소 복잡하더라도 어떤 믿음의 지식 여부 판단에 있어서는 일상 직관에 잘 부합하는 정의를 내놓는 데 특히 공을 들인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식하고, 믿고, 알며, 이것들은 우리 삶의 모든 사고와 행위의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경로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면 한 인간이 어떻게 매 순간 더 잘 선택할 수 있을지 알 수 있겠다는 설렘이 있습니다. 내게 정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란, 과장을 보태자면 행복할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이죠. 행복해지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저는 철학이 그 끝에는 모든 사람을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제가 철학을 언제까지 공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철학을 공부하는 한, 저는 철학이 저를 행복하게 했던 만큼이나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몇 번이고 제 글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며 제가 풀 수 없는 문제에 헛된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정이 천착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조각들을 다시 주워 담아 붙이는 과정에 느꼈던 즐거움이 더없이 컸습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연구를 구성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신 인문대학 교육지원센터와 심사를 맡아주신 아너스 프로그램 지도 교수님들, 글을 쓰다 문제에 부딪혀 좌절하면 함께 고민하고 격려해 준, 그리고 논문에 이름을 흔쾌히 빌려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서투르고 성기던 아이디어를 한 편의 글로 써볼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시간을 들여 지도해주신 이우람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