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단] [부임소회] 황기은 노어노문학 교수
[부임소회] 황기은 노어노문학 교수
안녕하세요. 2024년 2학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노어노문학과에 부임한 황기은입니다.
에어컨없이는견디기힘들었던무더운여름날임명장을받은지한달이훌쩍지나,이제는차가운바람이옷깃을스치는계절이 되었습니다. 노어노문학과를 비롯한 여러 학과의 교수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문관 3동 4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학회와 특강으로 몇 차례 방문한 적은 있지만, 서울대학교와 이렇게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기에 가끔가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따뜻하게 맞아주신 교수님들과 학교 공동체 모든 분들의 환대와 지원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제 이곳은 제 일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연구실에 앉아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주제의 특강과 학회 소식을 읽고 있으면, 아침마다 출근할 곳이 있다는 안정감과 어벤져스 같은 학술 공동체에 소속되었다는 자부심과 기대감, 그리고 내 자신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교차합니다.
삶의 새로운 장을 맞이하니, 지난 여정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학계와 업계, 연구와 실무, 인문계와 이공계를 아우르는 융합형, 다학제적연구를하시는분들에비할바는아니지만,제학문적 여정또한예측하지못한우연의연속이었습니다.어설프게알때가 가장 용감하다고 하는데, 그 무지에서 나온 용기가 새로운 학문적 도전을 이끌었습니다. 완벽히 알지 못해도,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연구를지속해온것이저를여기까지이끌어준가장큰힘이아니었나생각합니다.
어설픈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을 품었던, 마르크스를 읽던 고등학생은 초급 러시아어를 접했고 러시아어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되었습니다. 막연히 통번역을 하고 싶었던 학생은 노어노문학과에 입학한 후, 몇 편의 소설과 시에 넘어가 시인들이 노래하는 지평선 너머 먼 이상에 대한 열망과, 이어 끊임없이 현실로 추락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매료되었습니다. 상징주의 시인 블록에 빠져들어 예술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외치며 내 길로 삼나 했는데, 제 호기심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피츠버그에 도착해 스탈린주의 미학에 대한 첫 수업을 듣자마자, 완전히 다른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물론 그로이스가 말했듯, 아방가르드나 스탈린주의 모두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도 있긴 합니다.) 스탈린 건축이라는 실현되지 못한 유토피아의 이미지에 매혹되었고, 시간이 흘러 제 박사논문은 21세기 상트페테르- 부르크의 도시의 역동성을 논하며, 도시가 지닌 역사적 층위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문화적 변동을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연구대상이된텍스트의장르와형식,분야,국적이변하기는했지만결국예술과인간의삶의관계에대한질문을던지고싶었던 셈이니 인문학이 제 천직은 맞는 듯합니다.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활기찬 분위기의 강의실과 야외 공원, 연구실이라는 조용한 안식처가 공존하는 이곳은 학문이 벽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넘나들며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특히 학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이 품고 있는 호기심과 열정에 과거의 제 모습을 떠올리고, 또한 제 역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됩니다. 학생들의 학문적 여정에 동행하며,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서울대학교이기에 더욱 값진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곳에서 제 연구와 가르침이 제 전공을 넘어 인접 학문, 그리고더나아가사회에도의미있는역할을할수있기를소망합니다.그저강의하는자가아니라,학문적여정에함께할동료이자 선배, 스승으로서, 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