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너스프로그램 수기] 철학과 서재호
후설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자였는가?
: 몸(Leib)과 영혼(Seele)의 관계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철학과 서재호
「후설은 데카르트적인 심신이원론자였는가?: 몸(Leib)과 영혼(Seele)의 관계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제가 인문 아너스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으며 한 학기 동안 작성한 논문의 제목입니다. 저는 이 논문이 저의 첫 학문적 성취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되생각해보니, 제가 인문 아너스에서 발표했던 논문은 단순히 첫 학문적 성취라는 점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 논문은 4년 동안 대학에서 철학과 씨름한 저의 삶을 담고 있는 하나의 극(極)입니다. 환언하면, 제 논문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기 위해서는 필경 제 대학생활을 함께 개괄할 수밖에 없습니다.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시절, 저는 현상학은 물론이거니와 후설이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일절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어떤 철학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습니다. 다만, 철학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데 궁극의 목표가 있으며, 대학에서 학술적으로 철학을 배움으로써 그 질문에 답하는 법을 연마해나가야 한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하였습니다. 좀 더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자면, 제 삶을 구성하는 여러 믿음들을 철저하게 반성함으로써 하나의 일관된 믿음체계를 형성해나가는 것, 즉 여러 난관 속에서도 삶을 우직하게 살아나가는 태도를 갖추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철학함’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법은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찾아온 ‘현상학’은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저는 22학년도 1학기에 이남인 교수님의 <현상학>을 수강하면서 현상학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혹자는 후설의 현상학이 지나치게 인식론적이고 독아론적이기 때문에 실천적 함의를 찾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 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후설의 방대한 유산, 즉 약 50,000쪽에 달하는 후설의 유고를 사상(捨象)해버리는 일입니다.
저는 후설의 미발간 후기 유고들에 담겨 있는 실천적인 내용들과 포스트휴머니즘적인 여러 발언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상호주관성의 현상학, 내적시간의식의 현상학, (동물, 식물 그리고 유기물까지 구성작용의 주체로 설명하는) 초월론적 모나드론(transzendentale Monadologie) 등은 후설이 후학들에게 남겨둔 미완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채로운 후기사유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매개항으로서 ‘몸의 현상학’이 존재합니다.
후설의 현상학에서 몸은 데카르트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연장적 실체, 즉 기계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외려 몸은 세계구성의 창이자 매개체로 이해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 몸은 세계구성을 선험적으로 조건 짓는 영점(Null-punkt)이자, 우리의 생활세계(Lebenswelt)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선험적 조건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몸을 매개로 타자(동식물과 유기물을 포함하는 타자 일반)와 관계 맺고,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며, 세계에 자신의 자취를 남기기도 합니다. 한계사건으로서의 생(生)과 사(死) 사이에서 우리는 몸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종국적으로 우리가 타자를 왜 그리고 어떻게 ‘타자’로서 파악하며, 이 타자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에까지 답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만남을 매개하는 ‘몸’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현상학 연구자들이 세계 구성에 있어서 ‘몸’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몸에 비해서 의식, 즉 영혼이 존재론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우를 범합니다. 그래서 저는 후설의 텍스트에 근거해서 몸과 영혼의 관계를 분리불가능한 수평적 관계로 재정의하고, ‘신체<몸<영혼<정신’ 순으로 이해되던 존재론적인 토대관계를 ‘신체<몸&영혼<정신’ 순으로 재구조화해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몸&영혼’의 복합체에서 타자구성, 성적 경험, 윤리적 행위 등과 같은 실천적인 함의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고민들이 제 논문에 녹아 들어있습니다.
지금까지 거칠게나마 저의 철학적 고뇌의 궤(軌)를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이로써 제가 왜 후설의 현상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방대한 사유 중에서도 왜 ‘몸’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를 탐구대상으로 삼았는지 조금이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몸에 대한 현상학적인 사유는 일차적으로 세계구성의 방식에 대한 탐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우리가 이 한 몸을 가지고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아너스 프로그램의 지원 하에서 작성한 저의 논문은 단순히 ‘몸의 현상학’에 대해서 고찰한 딱딱한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논문은 ‘삶’에 대한 제 철학적 고찰의 효시(嚆矢)입니다. 나아가 저는 이 논문을 초석(礎石)으로 삼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의 답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