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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 [교수논단] 문서고, 인터넷, 빅데이터, 그리고 한국현대사 연구

2023-10-30l 조회수 4677
[교수논단] 문서고, 인터넷, 빅데이터, 그리고 한국현대사 연구




정용욱 역사학부(한국사학 전공) 석좌교수 

최근 2003년에 발표한 논문 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 미군정의 여론공작을 중심으로 ―」의 재론이라 할 만한 글을 집필했다. 20여 년 전에 발표한 글을 다시 끄집어낸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1945년 연말에 개최한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조선에 관한 결정(이하 삼상회의 결정’)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한 외신 기사를 한국 사회에 최초로 전한 동아일보의 보도 경위를 주한미군사령부가 남긴 각종 문서들을 통해 추적했다. 해방 직후의 정국 구도를 찬·반탁의 분열 구도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 보도에 대해서 당대부터 반소·반공 선전을 남한 사회에 확산하기 위한 정치적 책략, 또는 국제통신기관의 모략이라는 모략설이 떠돌았다. 논문은 보도의 경위와 국내 신문 보도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응을 추적했고, 자못 학계와 언론계의 주목을 받아서 필자의 주장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논문은 미군 정보보고서들이 동아일보가 보도했던 삼상회의 결정 기사를 합동통신이 배포했고, 그 기사가 태평양 지역에 주둔하던 미국 육군을 위해 발행하던 신문 성조기(Pacific Stars and Stripes)에서 비롯되었다고 서술한 것을 근거로 동아일보 기사의 출처가 미군정이거나 도쿄의 맥아더 사령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추론했다. 동아일보의 19451227일자 해당 기사는 소련은 信託統治 주장, 미국은 卽時獨立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分割占領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이제는 익히 알려졌지만 기사는 삼상회의 당시 미·소 양측의 입장과 주장을 정반대로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결정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이른바 가짜뉴스. 기사는 남한에서 반탁운동을 격화시키는 도화선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며칠 간 삼상회의와 그 결정 내용에 대한 국내 신문들의 보도 태도와 방향을 결정했다. 합동통신은 이 기사를 워싱턴 25일발 합동 지급보(至急報)’로 배포했는데 외신 취급관례를 무시하고 제휴사를 밝히지 않은 채 발신지와 발신일만 명기하여 기사를 보급했다. 당시 합동통신의 외신 제휴사는 AP통신이었다. 그런데 주한미군사령부 공보부가 발행한 정계동향(Political Trend)은 기사 출처가 성조기라고 썼다. 성조기의 해당 기사는 한국 관련 내용의 출처로 UP통신의 랄프 헤인젠(Ralph Heinzen) 기자를 지목했다.

위 내용은 1996년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에 수록되었는데, 그 연구의 출발점 내지 자료원은 워싱턴 DC 인근의 미국 국립문서관(National Archives)이었다. 1992년 한 해 동안 그곳에서 조사연구를 수행하며 해방 직후 미군정 등 미국 군부와 국무부가 작성한 각종 자료들을 수집, 정리했다. 학위논문을 집필하면서 미처 해명하지 못한 부분을 2000~2001년 하버드-옌칭연구소 객원교수로 머물면서 해소했다.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이 제공하는 온라인서비스를 통해 뉴욕타임즈 등 미국 유수의 전국지 신문을 검색해서 1945년 연말과 1946년 연초에 실은 한국 관련 기사를 열람했다. 그리고 당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 검색 기능을 활용해서 랄프 헤인젠이 상상력만으로 벽면 가득 기사를 메꿀 수 있는’ ‘악명 높은 날조전문가(notorious faker)’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로 알게 된 내용들을 앞에서 제시한 2003년 발표 논문에 반영했다.

마지막으로 소동의 출발점인 랄프 헤인젠이 썼다는 기사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남았는데 그 일을 한 언론인이 대신해 주었다. 2003년 가을 KBS <미디어포커스> 취재팀을 통해 UP통신의 후신인 UPI통신 문서고의 기사 원본 소장 여부를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취재팀의 원본 확인 요청에 응했던 UPI통신사 편집국장 토빈 벡(Tobin Beck) 씨는 취재팀이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원본 확인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취재에 흔쾌히 응했으나, 약속한 사흘 뒤에 취재팀이 재차 방문했을 때 자료실을 다시 만들기 위해 정리 중인데 원본을 찾지 못한 기사가 많다. 이 기사도 마찬가지다.”라는 발언으로 기사 원본을 찾지 못했음을 실토했다. 내가 겪은 미국인들의 화법을 감안하면 편집국장이 기사 원문이 없다는 것을 완곡하게 시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어느 시점에서 UPI 문서고 홈페이지에 기사 원본이라고 할 만한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 원본의 공개는 내 논지를 재점검할 필요성과 기회를 제공했다. 없던 기사가 새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중국 상하이에서 간행되던 신보(申報)19451228일 이 기사를 게재한 것으로 보아 원본이 뒤늦게 발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기사 원본과 동아일보, 성조기, 신보의 기사를 비교해보니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된다. 신보가 원본 기사를 비교적 충실하게 번역한 데 비해 동아일보와 성조기는 원본 기사를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원본과 다른 의미와 내용을 실어 날랐다. 성조기가 출처로 지목한 랄프 헤인젠도 나오지 않는다. 재론 원고를 집필하면서 동아일보 기사 발표 전후의 국내 신문은 물론 해외 신문의 삼상회의 결정 보도 경향을 전반적으로 다시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합동통신이 삼상회의 결정 기사뿐만 아니라 반소·반공 여론을 자극하는 미국 발 기사들을 여러 건 더 국내 신문에 조직적으로 유포한 사실을 발견했다. 합동통신이 1225일부터 27일 사이에 미국의 오덴스버그 저널(Ogdensburg Journal), 포트웨인 뉴스센티넬(Fort Wayne News-Sentinel)에 실렸던 한국 관련 기사를 보도했는데, 어느 것이나 미국 정부에 소련과의 대결 정책을 요구하고 미국 사회에 반소·반공 여론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진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이 기사들은 합동통신이 아직 외국 통신사와 제휴 계약을 맺지 않은 11월 중순경에 나왔고, 따라서 합동통신이 외국 통신사를 통해서 이 기사들을 확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합동통신은 도대체 이 기사들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확보했을까?

재론 원고는 이러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추적했다. 빅데이터 시대답게 국내 신문은 물론이고 외국 신문을 관련 Web DB를 통해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게 되어서 가능한 일이다. 해방 직후의 정국을 좌우 대립 구도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기사들의 국내 유입과 배포 과정이 의혹에 가득 차있고, 그 과정에 언론사들이 동원된 사실을 거듭 확인한 셈이다. 굳이 역사적 함의를 찾자면 한국 사회에서 기레기가짜뉴스의 역사가 꽤나 길고, 깊다고나 할까. 언론학 하시는 지인에게 원고에 대한 논평을 부탁했는데 당장 언론학회 언론사분과에서 발표해주기를 청했다. 며칠 전 전공자들과 토론회를 가졌는데 놀랍게도 세미나에 참석한 분들의 평균 연령이 60대 중반이다. 애초에 설정했던 문제의식을 전면적으로 해명하지는 못했지만 문서고에서 시작한 연구를 인터넷 시대와 빅데이터 시대를 거치며 그에 맞게 더 충실한 글로 만들었지만 정작 그 글을 읽어줄 독자들은 학계를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분들이다. 새로운 연구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려 노력했고, 그런대로 결실도 맺었지만 어쩐지 불안하다. 인문학이 걱정이다. 인문학이 위기라면 학문 또는 학문을 재생산하는 대학이 위기라는 소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