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단] [연구동정] 한국콜마비엔에이치 인문학 펠로우 윤준섭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한국콜마비엔에이치 인문학 펠로우 윤준섭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저는 두 부류의 공간에서 공부를 합니다. 하나는 모니터를 마주한 연구실이고 다른 하나는 오방색이 펼쳐진 굿판입니다. 이런 저에게 가끔씩 누군가는 “굿판에 다니면 무섭지 않아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재미있고 때로는 귀여운 면도 있어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무서운 무당이 등장하여 굿을 하며 악귀를 물리치는 것은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았던 굿의 형상입니다. 그러나 굿은 드라마나 영화가 없던 시절 우리 민중이 즐겼던 대중 예술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굿판에 가서 떡을 먹고 굿을 보며 울고 또 웃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신을 만나 자신들의 소망을 기원했습니다. 저는 이 굿판에서 우리 인간의 삶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굿판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굿판에서 우리네 조상들이 만났던 신은 범박하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신과 삶을 관장하는 신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망자천도굿에 자주 등장하며 후자는 재복을 기원하는 재수굿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논문으로 함경도의 망자천도굿인 ‘망묵굿’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를 연구했습니다. 함경도에서 전승되는 굿의 특징은 굿을 연행할 때 2~3일 동안 여러 편의 서사무가, 즉 무속신화가 구연된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서사무가가 <도랑선 비・청정각시>, <바리데기>, <짐가제>, <감천>, <붉은선비・영산각시>, <궁산이・명월각시>입니다. 저는 망묵굿 서사무가가 단순히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의례라는 맥락 아래 특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저는 망묵굿 서사무가를 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고찰했습니다. 그 결과 망묵굿에는 생자가 망자와 재회하고픈 소망과 동시에 망자의 죽음을 수용하고, 인간과 자연이 호혜적 관계에 있음을 말하는 서사무가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의 박사논문은 함경도 망묵굿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망묵굿의 제의적 성격 및 망묵굿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의 문학적 성격을 밝혔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북한지역 무속을 염두에 두면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함경도 망묵굿에 초점을 두었기에 굿이야기[서사무가]가 중심인 함경도와 굿놀이[희곡무가]가 중심인 황해도로 대별되는 북한지역 무속의례 전반을 해명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북한지역 무속의례에 균형 잡힌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황해도 굿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저는 황해도 굿에 관심을 갖고 연구의 폭을 확장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문대학 펠로우 사업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펠로우 사업으로 말미암아 연구의 폭을 함경도 망묵굿에서 황해도 굿놀이로, 즉 북한지역 전반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사 후 신진연구자로서 콜마BNH 펠로우에 선정된 저는 좀 더 안정적인 여건에서 황해도 굿놀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구체적인 연구 대상은 황해도 만수대탁굿에서 연행되는 굿놀이로 한정했습니다. 만수대탁굿은 복을 기원하는 재수굿인데, 닷새간 굿을 하는 과정에서 <도산말명 방아찜굿>, <사냥굿>, <사또놀이>, <마당굿> 등 여러 편의 굿놀이가 연행됩니다. 이들 굿놀이는 사람이 아닌 신을 대상으로 연행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굿놀이의 문학적 분석을 통해 무당이 신을 향해 펼치는 굿놀이의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신 앞에 펼쳐진 풍요의 굿놀이, <도산말명 방아찜굿> 연구」(『한국언어문화』 71집, 2020), 「신 앞에 펼쳐진 인간과 자연의 오래된 놀이, 황해도 <사냥굿> 연구」(『구비문학연구』 57집, 2021)와 같이 황해도 굿놀이에 관한 연구를 학계에 제출했습니다.
인문학 펠로우 기간 동안 수행한 연구 성과에 힘입어 최근 저는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원으로 임용되었습 니다. 여전히 북한지역 무속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남아 저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새로 마주한 연구실에서 오방색이 펼쳐진 굿판을 왕래하며 북한지역 무속의 수수께끼를 푸는 즐거움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