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단] 2021년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육상(교육부문) 불어불문학과 신은영 교수 인터뷰
1. 신은영 선생님, 2021학년도 서울대학교 교육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과 함께 학술교육상 특별강연의 내용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서도 인문대에 교육에 헌신하는 선생님들이 정말 많이 계시기 때문에 민망하고 송구스러웠어요. 저는 프로의식을 중시하는데, 교육상 수상은 제가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왔다고 인정받은 것 같아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강연 제목은 “함께하는 교육”이었는데요. 지금까지의 교육 활동을 돌아보니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공동 강의도 많이 했고 2007년부터 불어불문학과 연극 동아리 학생 지도를 맡고 있고, 또 연극 협동과정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점들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특히 제가 강조했던 점은 교육이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 선생님께서 담당하고 계시는 교양 과목인 〈프랑스 문학으로 읽는 사랑>에서는 어떤 텍스트를 다루시는지, 특히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수업을 진행하시는지요?
이 수업은 불문과 유호식 선생님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저는 중세 시대부터 18세기까지 문학 텍스트를 다루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시작하고, 17세기 몰리에르(Molière)의 『아내들의 학교』와 라신(Racine)의 『페드르』를 읽어요. 그리고 최초의 고전주의 소설로 꼽히는 라파예트 부인(Madame de Lafayette)의 『클레브 공작부인』이라는 작품을 읽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18세기 대표작인 『위험한 관계』를 보고 있어요. 학생들은 매 시간마다 열 줄 정도의 감상평 혹은 질문을 게시 판에 올려야 하고, 매 시간 발표 한 번과 대표 질의 한 번을 돌아가면서 해요.
제가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마음 편하게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종종 학생들이 기발하고 흥미로운 의견을 말해줄 때 참 즐겁고 기뻐요. 저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에서 틀린 건 없다고 계속 강조해요. 고등학교까지 우리는 정답을 찾아내는 교육만 받잖아요. 서울대에 온 학생들은 ‘내가 틀린 말을 하면 어쩌나‘ 특히 더 걱정하고 두려워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라고 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왜곡된 의견을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것들도 틀렸다고 지적하기보다 강의를 듣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끔 수업을 이끌기 위해 노력해요. 스스로 책을 읽고, 찾아보고,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합니다.
3. 선생님 연구 분야가 17세기인 만큼 텍스트와 관련된 역사적/시대적 배경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생각보다 17세기를 가르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아요. 17세기 문학은 결국 루이 14세 시대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루이 14세는 1643년 다섯 살에 왕위에 올라서 여든에 가까운 1715년까지 통치하던 왕입니다. 그러니까 17세기는 루이 14세가 통치권을 어떻게 강화해 나가는지를 쫓아가면서 이해할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베르사유 궁전 같은 문화유산도 등장하고요. 학생들에게 시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있어서 이 점은 꽤 유리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다른 문화권에서는 보통 프랑스의 이 시기를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을 계승하고 다시 부활시킨다는 의미에서 ‘신고전주의’ ‘네오클래시시즘(Neoclassicism)’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신(新)’이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그냥 ‘고전주의’,‘클래시시즘(Classicism)’이라고 합니다. 클래식이라는 말 자체가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을 담지하잖아요? 이 시기의 문학 텍스트들이 시대적인 배경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굉장히 보편적인 갈등, 원형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시기의 텍스들을 고전으로 이해하고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어가 갖는 특수성이 있어요. 프랑스는 17세기 중반에 불문법을 정립하고 표준화하기 위해서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라는 전문기관을 만들었어요. 이즈음부터 거의 현대 불어에 가까운 언어가 자리 잡았어요. 16세기 부터 왕명으로 모든 공문서에 라틴어 대신 불어를 쓰게 했고 데카르트는 1630년대부터 프랑스어로 쓴 철학서를 발표했죠. 프랑스어는 현대화가 일찍 되었다고 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외국인인 우리도 이 시기의 텍스트를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도 되도록 원전을 읽게 합니다.
4. 문학사에서 사랑이라는 주제가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시대에 사랑의 문제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사랑이라는 건 결국 특정한 시대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유용한 주제라고 생각해요. 사랑을 경유해서 인간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사회적 가치, 지배적인 담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요. 대부분의 프랑스 문학의 사랑 이야기는 결혼에서 시작합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숙부의 약혼녀와 사랑에 빠지고, 『페드르』에서는 페드르가 의붓아들을 사랑하게 되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불문학의 사랑 이야기는 전부 ‘불륜’이야”라고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죠. 프랑스는 지배담론에 대한 비판적인 정신을 계속 견지해왔어요. 중세부터 문학 속에 나타나는 결혼은 정략결혼에 가깝습니다. 프랑스 문학에서 사랑이 소위 ‘불륜’의 모습을 한 이유는 결혼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를 유지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결혼을 생각해보면, 17세기 절대왕정체제와 가부장제도의 상동관계를 발견할 수 있어요. 장자가 상속을 독점하게 되면서 왕권이 강화되는 동시에 부르주아 가장의 권위도 강력해져요. ‘봉인장’을 요청해서 집안 여성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가장이 원하는 대로 결혼이 이루어졌어요. 몰리에르의 『수전노』에서처럼 아버지가 아들을 돈 많은 과부와 결혼시키고, 자기는 아들이 연모하는 젊은 여자와 결혼하려 해요. 당시 귀족들은 다 이런 식의 결혼을 했던 거지요. 젊은 여성들은 나이든 홀아비랑 결혼하는 식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은 배우자가 죽고 난 뒤에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요.
그러니까 프랑스 문학작품 속에서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제어하는 제도로 인식된 것이지요. 결혼 제도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보았고, 그것이 작품들에서 불륜을 다루는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대적인 비판이기도 하죠. 대중문화가 결혼을 로맨스의 완성으로 포장하는 한편, 우리는 결혼이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인식하기도 하잖아요. 사랑과 불륜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이 점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5.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대학 공연예술의 방향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공연예술을 통해서 배워나가길 바라는 점이 특별히 있으실까요?
협동과정의 경우 직업적으로 공연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이 와요. 이 학생들이 실기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 우리 학교에 오는 것은 이론 공부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텍스트를 어떻게 깊이 읽어낼 수 있는지, 텍스트가 가진 가능성을 어떻게 여러 방법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등을 가르칩니다.
외국어 연극제의 경우 학생들의 참여를 매우 독려합니다. 2007년 부임 당시에는 연극 활동이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입생 때부터 학생들에게 배우로든, 스텝으로든 연극에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학생들이 좌충우돌하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학생들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내는 일에 열정을 갖고 보람을 느끼는 게 점점 보이더라고요. 연극을 하다보면 말다툼도 많이 하고 서로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이를 통과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연극 활동을 장려합니다.
6.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이 선생님의 연구나 수업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비대면 수업은 벽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대학 강의는 특별한 상호작용이 필요하거든요. 제가 작년 10월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졌을 때 마지막 수업 세 번을 대면으로 전환했어요. 신기한 게 9시 반부터 2시까지 연강을 하는데 비대면으로 했을 때 보다 훨씬 안 피곤하더라고요. 오히려 더 힘이 나고 저도 신나게 강의를 했어요. 학생들도 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니까 더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이 말을 듣고 되게 기뻤죠. 온라인에서 전달이 되지 않던 에너지 같은 것이 대면 강의에서는 전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연극제의 경우 코로나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해쳐나가는 것을 보고 감동했어요. 2021년에 외국어 연극제가 재개되었는데, 준비를 마치고 연습에 돌입하려니까 확진자가 급증했어요. 한 번에 네 명 씩 모여서 연습을 하고 공연 열흘 전에 처음으로 모두 모여서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준비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기대를 안했는 데, 처음부터 모여서 했던 것처럼 너무 잘해서 놀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생들도 연극제를 무사히 마치고자 서로 의지를 북돋아가며 더 열심히 연습을 했더라고요. 관객 없는 스트리밍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전에 같은 작품을 했던 07학번 선배 학생들에게 꼭 봐달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선배들이 들어와서 댓글도 달아주고 열성적으로 반응해주니 학생들도 신나서 준비한 만큼 잘해낼 수 있었어요.
7. 연구자, 교수자로 첫 발을 내딛으실 때 그리셨던 그림이나,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던 원칙 같은 것이 있으셨는 지 궁금합니다. 만약 있으시다면, 어떤 이유로 그러한 결심을 하시게 되었을까요?
저는 언제나 프로가 되자는 생각을 하고요, 선생으로나 개인으로나 부끄러움 없이 사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이건 제 전공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불어를 처음 좋아하게 된 것은 들었을 때 아름답고 좋아서였지만, 배우다 보니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Ce qui n'est pas clair n'est pas français”, “명료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거든요. 이런 원칙을 기반으로 교육자로서, 연구로자로서 프로의식을 갖고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 명료하고자 노력합니다. 또 엄마, 자식, 선배, 제자라는 여러 가지 입장에서도 늘 이런 다짐을 지키고 싶습니다.
8.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향후 갖고 계시는 목표를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은퇴까지 6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요, 새로운 연구를 하기보다 지금까지 했던 연구들을 모아서 무언가 해보고 싶어요. 그 중 한 가지는 선생님들이 여러 학술지에 내신 좋은 논문들을 주제별로 묶어서 강연을 하는 ‘주제로 읽는 프랑스 문학 시리즈 강연’입니다. 쉬운 문체로 바꾸어서 대중적인 교양서로 엮어보려고 해요. 저를 시작으로 불문과 선생님들, 외부 선생님들까지 초빙해서 고백, 돈, 사랑, 악 등의 주제를 다루려고 생각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발표했던 개별논문들을 테마별로 묶어보려고요. 육체, 여성주체 등의 테마로 이전의 연구들을 종합해서 빈틈을 찾아보고 싶어요. 남은 기간은 그런 틈들을 채워서 보다 완성된 형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인터뷰 진행 고마리(종교학과 석사과정), 박혜린(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