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 이강재 교수 인터뷰
인터뷰 진행: 고동현(국어국문학 박사과정), 이원섭(종교학과 석사과정)
- 작년부터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으로 선임되셔서 업무를 담당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맡고 계신 일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를 뽑아서 지원하는 사업을 실시하면서 기존의 제도에서 변화를 주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관련 사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우리 사회에서 인문사회분야는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취업이 어렵다는 것은 매우 큰 문제입니다. 학문의 지속성의 차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울대는 한편으로 학문의 종자보관소여야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에 대학교수를 공급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취업할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은 우리 대학의 존립 이유와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극단적으로 서울대가 대학원을 다 없애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인문사회분야 교수의 충원을 잘 안 하며 더구나 학령인구가 감소하여 대학정원이 줄어들고 있는데, 이것이 장기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학문후속세대가 갈 길이 없어질 염려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 인문사회 학술생태계가 붕괴된다는 겁니다. 이는 지금 닥쳐있는 문제이기에 지금 바로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를 만든 건데, A유형과 B유형으로 나눠집니다. A유형은 매년 300명을 선발하며 4대 보험을 포함해서 4000만원을 5년간 지원해줍니다. B유형은 1년 동안 1400만원을 지원해주고 2020년의 경우 3000명을 선정했습니다. 장기적으로 B유형은 줄어들 것이며 A유형은 매년 300명씩 선정하면 5년 후에는 누적이 되어서 1500명이 됩니다. 이럴 경우 연구력이 있고 연구를 하고자 하는데 전임교수가 못된 연구자 중 상당수를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기업체에 취업하는 사람의 급여에 비하면 부족하고 경제적 풍요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연구자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공부를 해나갈 수 있는 비용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학문후속세대를 저는 ‘학문혁신세대’라고 부릅니다. 우리 뒤를 이어 학문을 한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지금 우리보다 더욱 학문을 발전시킬 연구자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학문동행세대’라고 부릅니다. 기존의 전임교수들과 같이 학문을 해나갈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학술연구교수제도가 학문후속세대의 문제를 완전한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미봉책으로나마 연구자들을 붙잡아두고 학문이 붕괴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 올해에 대상자들이 선발이 되어서 진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호응은 어떠한가요?
정말 호응이 좋습니다. 인문사회 연구자들 스스로도 그렇고 다른 분야의 학계나 정부 기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습니다. 경쟁률이 거의 6:1에 육박할 정도로 연구자의 기대가 컸습니다. 그래서 이보다 더 많은 수를 선정해야한다는 말도 합니다. 저도 장기적으로는 더 늘어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2-3배는 돼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예산 확보가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 인문사회분야에 연구지원 예산이 더 확보가 된다면 이쪽에 더 투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에 맞춰 연구자들이 부흥해야 할 텐데, 학문후속세대들에게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소양과 마음가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연구자로서 학문후속세대가 할 일은 무엇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겠지요. 거기에서 더해서 저는 열정, 성실, 과욕(寡慾)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문하는 사람이 외적인 욕심이 많으면 절대 공부를 못합니다. 물론 집안이 부유한 사람도 있으니까 100% 동일하지는 않지만, 공부한다는 것이 절대 겉으로 화려한 길은 아닙니다. 따라서 욕심을 줄이고 최소한의 조건 속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열정이 있어야 하고 그걸 이겨내려면 성실해야 합니다. 저는 처음 대학원 진학을 생각할 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끝까지 공부를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공부 외적인 외부적인 욕심을 줄이고 소박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록 학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외적인 욕심을 줄이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제 향후 목표와 계획은 무엇입니까?
한국연구재단에서 하는 주된 일은 연구비의 공정한 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재단의 시스템이 이미 잘 되어있기에 제가 더 특별히 더 나설만한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제가 그곳에 가서 일해 보려고 할 때 생각한 목표를 우선 생각합니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를 비롯한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안착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시작했지만 5년 후까지의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된 것이 아닙니다. 제도적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않은 것도 있으므로 이것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잘 정착이 되도록 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둘째는, 누구나 느끼는 일이겠지만, 인문사회 학술 지원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예산이 매년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연구기반 확보가 가능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연구재단에서 생각하는 해야 할 일이고 목표입니다.
그다음은 연구자로서 생각하는 목표입니다. 앞으로 500년 이상 남는 책을 써보겠다는 것이 평생 연구자로서 생각하는 제 숙제입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런저런 논문이나 책도 쓰고 번역을 하면서 제게 주어진 숙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고 있지만, 평생을 가져갈 숙제는 여전히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교수하기 전 혹은 교수 시작한 초기에 일차적으로 완성하고 이후 개정판을 내면서 좀 더 완벽하게 완성하고 싶었는데, 막상 교수가 된 다음부터는 오히려 속도를 내기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정년 전까지 제대로 완성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걸 완성하는 것이 어쨌든 학자로서의 최고의 목표입니다. 여전히 속도는 늦지만 한걸음씩 가고는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예비 학문후속세대, 학문혁신세대, 학문동행세대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사실 우리 후학들, 후배들, 대학원생들 보면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합니다. 저는 이미 대학에 전임교수로서 안정적인 연구자로서의 지위를 잡은 기성세대입니다. 교수로서 자리를 잡았고 편안하게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저들을 위해서 좀 더 일찍 안정적인 연구기반을 확보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미안하고 그 점에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인문학 전공 하겠다고 대학원 온 사람들 보면 고맙습니다.
또 앞에 말한 대로 열정, 성실함, 욕심을 적게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과, 인문학이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절대 없어져서는 안 될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결국 인류의 발전에 기여를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위기, 위기하는데 저는 역대로 인문학이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꽃을 피우는 게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 속에서 더 깊은 사유를 통해서 뭔가 세상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문학이라고 하는 ‘학’에 너무 치우치기보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인문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 속에서 인문학을 꽃피운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모두에게 어려운 과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 제51호 인문대 소식지 '교수논단'에 게재될 글을 위와 같이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