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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임소회] 영어영문학과 김혜주 교수

2022-06-23l 조회수 185


안녕하세요. 2022년 1학기부터 인문대학 공동체에 합류한 김혜주입니다. 저는 2004년에 서울대학교 수의예과에 입학하여 수의대에서 4년이라는 꽤 긴 시간을 보낸 후 영문과로 전과하였습니다. 영문과 학부 및 석사를 졸업한 후에는 미국 시라큐즈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해 19세기 영국문학과 의료 및 건강인문학 연구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논문은 의료자유 개념 및 대체의학에 대한 연구로, 의료 및 건강 담론에서 시민주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을 밝히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전과까지 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수의대에서 저는 그다지 공부에 흥미를 느끼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공중보건 과목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해썹(HACCP) 마크 발행 절차를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외우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인문대에서 영문과 수업을 들으며 공부에 흥미를 되찾았고,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면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과를 선택했습니다. 그때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수의대를 떠난다 생각했었고, 다시 수의학 혹은 의학 분야와 관련된 무언가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말해주듯 그 후 제 학문적 여정은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분야가 어떤 방식으로 매개 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박사논문 주제를 발전시키느라 끙끙대던 어느 날 밤, 이른바 공감 (sympathy) 개념이 도덕적 의무라기보다 비자발적인 신체반응으로서 이해되어온 역사를 공부하다가 이미 몇 년 전 생리학 시간에 배운 교감신경체계(sympathetic nervous system)라는 용어에 그와 같은 역사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 친구에게 전화를 건 기억이 있습니다. 이는 제가 전과 등 행정상의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힘겹게 넘나들었 던 두 세계가 실은 하나의 세계였음을 깨닫는 감동적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에는 해썹 제도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을 19세기 영국의 상한 우유 규제 관련 논의에도 관심이 갑니다. 두 세계가 하나의 세계였음을 깨닫고 나니, 해썹의 의미와 작동을 시민성, 국가정체성, 계급, 통치의 문제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시 서울대학교의 일원으로 돌아온 지금, 자연스럽게 학부 시절 저와 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문학 텍스트와 점점 멀어지는 요즘의 학생들에게 의료 및 건강인문학 분야가 새로이 보여주는 문학의 쓸모와 가치를 가르쳐주고, 특히 수의대 시절의 저와 같이 과학이나 의학 분야의 방법론에 회의를 느끼는 학생들이 굳이 전과라는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쌓아가는 전문성 안에서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