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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 [연구동정] 제1회 우덕펠로우십 연구 소개 - 영어영문학과 김정하 교수

2023-05-30l 조회수 831



 [연구동정] 제1회 우덕 펠로우십 연구 소개 - 영어영문학과 김정하 교수 

제 연구는 두 축으로 움직입니다. 

  한 축은 트라우마 연구가 문학과 만나는 방식을 현대미국소설을 일종의 사례연구로 삼아 이론화하는 것입니다. 저는 트라우마가 문학을 읽는 중요한 통로라고 생각하고, 트라우마 이론을 문학에 적용할 수 있는 만큼 문학이 그 나름의 트라우마 이론을 수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가지고 텍스트를 읽습니다. 우리는 보통 트라우마를 개인이나 집단의 몸과 마음에 들이닥친 사건이자 상흔으로 이해하지만, 트라우마 이론은 기본적으로 사건과 기억 사이의 간극을 다룹니다. 상흔이 이후 몸과 마음을 경유해 전혀 다른 언어로 표현되는 시차와 번역의 문제에 관심을 둡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라캉의 표현대로 “어긋난 조우”(missed encounter)이며사건이 시간을 거슬러 불쑥 다른 모습과 이야기로 우리를 건드리는 마찰과 파열입니다. 요컨대 트라우마는 기억과 서사, 반복 속의 차이라는 문제와 깊이 연루됩니다.
  또한 트라우마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른바 위기의 시대, 크고 작은 상처와 균열이 삶 안에 내장되어 있는 이 시대를 이해하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트라우마는 보이지 않게 서서히 스며드는(insidious trauma) 것이고, 트라우마 연구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삶에 침투해 있는 작고 미세한 폭력과 상처를 다루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기후변화, 최근의 코로나1팬데믹까지 장기적이고 느린 형태로 우리의 삶을 침투하는 것들이 그 예시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트라우마 는 전혀 다른 시공간적 개념을 요구합니다. 상처는 과거로부터 유래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 안에서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고, 언제 다시 도래할지 모르는 불안의 감각과도 얽혀 있습니다. 이때 트라우마를 둘러싼 분투는 다층적인 시공간적 경험이자 이 시대의 위기를 매개하는 노동이기도 합니다.   
  제 연구의 또 다른 축은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트랜스내셔널리즘을 역사화, 맥락화하는 작업입니다. 특히 아시아계 미국(Asian America)이라는 범주의 확장, 수정, 재기입의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아시아계 미국은 일종의 공간적 상상체이자 비판적 방법론으로서, 20세기 후반 미국 민권운동의 산물로 탄생한 범주입니다. 이렇게 구성된 학제 안에서 학자들은 아시아라는 형상이 재현되어온 역사를 심문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의 소속과 정체성을 요청하고,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자리를 정당화했습니다. 최근 이 범주는 점차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출발(아시아)과 도착(미국)의 이분법과 목적론적 서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그 사이의 불연속과 시차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디아스포라와 트랜스내셔널리즘의 문제틀이 조명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보면, 아시아계 미국문학은 미국문학이라는 국가문학 내의 지분을 정당화하는 과제를 넘어, 아시아와 미국 사이의 다양한 역사적 이동과 교섭의 문제에 개입하는 글로벌 서사 혹은 세계문학의 고민을 공유하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우덕 펠로우로서 제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의 아시아 혐오범죄를 미국의 아시아 인종화의 역사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최근 반-아시아 혐오범죄는 경제적환경적, 생의학적 위기를 둘러싼 불안이 바이러스를 아시아적 생물성으로 오인하게 하는 과정에서 증폭된 공포가 인종적 타자에 대한 실제적 폭력으로 나타난 경우입니다. 이는 구조적 인종차별주의의 뿌리 깊은 발현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편, 아시아라는 형상이 유사-보편적 인종이자 변화와 위기의 표상으로 미국 사회에서 인종화되어온 방식을 역사화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요컨대 19세기 쿨리 노동자를 고통과 권태를 모르는 근대적 기계-몸으로 이해해온 방식, 20세기 후반 아시아계 이민자를 신자유주의적 자기갱신과 유연성의 화신인 모범소수자라는 경제적 형태로 인종화해온 방식을 21세기 코로나1팬데믹의 반-아시아 인종주의와 연결지어 사유하는 일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최근 한국계 미국작가 이창래의 On Such a Full Sea (2014)를 위기의 스타일과 인종의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을 썼고, 할리우드 시스템에 안착한 아시아계 영화들--<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미나리>, <기생충>,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둘러싼 담론 속에서 아시아라는 형상이 이해되는 방식을 아시아 인종주의의 역사 안에서 맥락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