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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글로벌박사 팰로우십을 소개합니다" - 학생 인터뷰(중어중문학과 이수현)

2017-07-17l 조회수 6470


인터뷰 진행 : 이정연(협동과정 비교문학 석사 수료), 최기섭(협동과정 공연예술학 석사 수료)
 

1. 전공과 현재 하시는 공부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중어중문학과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으며 근-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학부 때는 중국 근대 시기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번역한 엄복의 <천연론>으로 졸업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중국에 진화론이 소개되는 결정적 계기이자, 이후 중국의 근대 논의에 밑바탕이 되었던 책이에요. 하지만 <천연론>은 전통 시기 중국의 사유로의 번안에 가까워요. 그래서 중국의 전근대와 근대를 명백한 단절과 충격으로 설명하는 기존 논의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연속성을 찾아보고자 했던 시도가 제 학부 논문의 내용이에요. 석사 시절에도 번역론에 계속 관심을 갖고 만청소설 <해상화열전>으로 논문을 썼어요. <해상화열전>은 중국에서 근대적 형태의 소설 창작-출판이 나타난 최초의 사례라고 일컬어지고 있어요. 석사 논문에서는 '근대'라는 선이해를 역으로 투사하여 중국의 소설사에서 <해상화열전>을 근대소설로 명명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했어요. 연구 과정에서 <해상화열전>이 최초로 연재되었던 <신보>의 자료도 접하게 되었고, 현재는 ‘제국의 충돌’이라는 중국 제국론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2. 중어중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었나요?

- 학부 전공은 조금 막연한 느낌만을 가지고 선택했습니다. 저는 학부제 세대이기 때문에 ‘어문학부’로 입학해서 1년간 수업을 들은 후에 전공을 정했어요. 학부제 특성상 선후배 사이의 네트워크가 부족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비전이나 전공의 방향을 스스로 파악하기에 1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죠. 중국에 대해 공부하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중어중문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중국이 점차 성장하고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이라는 말들도 많았기 때문이에요. 아, 그리고 1학년 때 중국어 원어 연극에 참여하게 된 것도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슬프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
 
 

3.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학부 3학년 때까지만 해도 대학원 진학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군대를 제대한 이후에 대만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경험이 대학원 진학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당시에 대만에서 수업을 꽤 많이 들었어요. 특히 대학원 수업에도 참여를 했는데, 그 수업은 영미권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즉 영미권 학자들의 중국학 연구를 검토하는 내용이었어요. 수업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토론을 하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었어요. 제가 가진 생각에 대해 미흡한 중국어로 의견을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씀해주시면서 저의 의견을 발전시켜 토론으로 이끌어 가시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저로서는 학문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죠. 이후에 선배님, 교수님들과 면담을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중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일단 중문학에 발을 담근 이후에 계속해서 그 의미를 찾아나가고 싶은 목적에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즉 왜 지금의 우리는 오늘과 같은 형태의 삶과 사유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와 우리 사회를 만들어 낸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중국의 문학과 중국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접근하면서 사유의 폭을 넓히고 싶었어요. 물론 부모님은 먹고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를 많이 하시긴 했지만요.
 
 

4. 박사까지 진학을 하게 되신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 위에서 말한 대학원 진학의 계기도 하나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딱히 원동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른 여러 진로를 선택한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는 취업을 하고, 누군가는 고시에 도전하듯이, 저는 직업으로서 인문학, 그 중에서도 중문학을 선택한 것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어찌되었든 노력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학업에 대해 과도한 사명감과 숭고한 목적의식을 가지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학문을 삶 그 자체와 유리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인간적으로는 주변 동료 대학원생들과의 유대, 가족들의 지지(저의 경우 비록 계속 반대는 하시지만)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5. 한국연구재단에서 국내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사과정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Global Ph.D. Fellowship, GPF)’에 선정되셨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그리고 프로그램의 장점과 혜택 등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 학과 선배님들 중에 두 분이 이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어서 알게 되었어요. 사실 석사 시절에는 부모님께 조금은 의지하면서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박사부터는 떳떳하게 독립을 해서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어 지원하게 되었어요. 많은 분들이 석사부터 자립적으로 공부를 하고 계시는데 조금 부끄럽기는 하네요.  장학금은 1년간 연구비 및 인건비로 2,000만원이 매달 분할 지급되고, 또 등록금은 따로 지급됩니다. 직전 해까지만 해도 등록금 포함 연간 3,000만원을 지급했는데 방식이 바뀌었죠. 서울대처럼 학비가 연간 1,000만원이 되지 않는 학교의 학생 입장에서는 혜택이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인원을 추가 선발하게 되어 나아진 지점도 있어요. 사업 1년차에 연차보고서를 작성하고 2년차에 단계평가를 거쳐서 3년차 추가 지원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합니다. 지원을 받는 동안에는 다른 부업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학업과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정말 큰 혜택입니다. 연차보고서 외에 재단에서 더 요구하는 것도 없고요.
 
 

6.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 이 프로그램은 이공계 연구자 양성 사업 중의 일부분으로 설정된 사업이에요. 이공계는 학부 학생부터 대학원 학생까지 전문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한 장학 프로그램의 설계도가 마련되어 있는 반면에 인문계는 장학 제도가 상당히 미약한 편이죠. 그래서 GPF는 인문계도 어느 정도 할당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지원 서류의 형식 자체가 이공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가령 서류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제외한 지원자의 연구 성과를 요구하는데 사실 학부 재학생 시절부터 교수님과 프로젝트를 하는 이공계와는 달리 인문계에서도 특히 서울대에서는 박사 이전에 학술지 투고를 잘 안 하니까요.
 

7. 인문계에서 석사 과정 중에 논문을 투고한다는 건 드문 일이기도 하고 또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서류를 어떻게 작성하셨나요?

- 저는 운이 좋게도 석사 시절 활동 중에 증빙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도움이 됐어요. 예를 들어 지도교수님이 산업협력단에서 프로젝트를 하셨는데 제가 연구 조교를 했었거든요. 사실 제가 한 것은 회의록을 작성하거나 자료 수집, 혹은 자료 정리를 한 정도인데 이러한 활동들에 대해서 산업협력단에서 증빙 서류를 받을 수 있었어요. 명목이 있고 그에 대한 증빙 서류가 있다면 실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석사 때 번역을 한 것도 실적으로 기입했어요. 당시에 책은 아직 출판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출판사로부터 확인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죠. GPF에 선정된 같은 과 선배 중에는 신문사 등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것도 실적으로 작성했어요. 심지어 학부 때 기초교육원에서 ‘우수레포트상’을 수상한 것도 실적이 될 수 있어요. 잘 뒤져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긴 행적들이 있기 때문에 실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있을 수 있어요.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실적이라도 어떻게 내러티브를 만드느냐에 따라 실적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8. 최종 면접에서는 연구계획서를 영어로 프리젠테이션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표 준비를 위해 영어를 따로 공부하셨나요?

- 저도 평소에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해요. 서류 역시 영어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죠. 발표할 내용도 미리 외워서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영어 능력이 평가 요소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이것이 영어 시험은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중요한 것은 프레젠테이션에서 연구의 요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과 연구의 지향점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에요. 심사위원들도 주로 연구 주제에 대한 내용으로 질문을 하셨어요. (인문계 면접의) 심사위원들은 인문계 교수님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의 경우 인문계 다양한 전공의 교수님들이 심사를 하셨어요. 인문계와 이공계에서도 각 영역별로 면접실이 따로 준비되어 있어서 같은 날 여러 장소에서 면접이 동시적으로 진행이 돼요.
 
 

9. 그렇다면 서류 작성 형식이 이공계 중심이라고 하더라도 인문계 지원자들에 대해서는 인문계 교수님들이 심사를 하기 때문에 연구 실적 등에 대해 너무 걱정을 하진 않아도 되겠군요?

- 맞아요. 인문계 심사 담당 교수님들은 인문계 사정에 대해 익히 알고 계시기 때문에 연구 주제의 의미와 시의성, 실현가능성 등을 구체적이면서도 자신감 있게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실제로 발표를 할 때에도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발표 자체에 주목하시기 보다는 저의 연구계획서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계셨어요.
 
 

10. GPF를 받으시면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하고는 계시지만 석사 과정때와는 다른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박사 과정생으로서 힘든 점들은 무엇인가요?

- 다른 분들도 많이 말씀하고 계시듯이 석사 때는 일정 부분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지만, 박사부터는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바뀌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박사부터는 스스로가 하나의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연구를 수행하고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구축해나가야 해요. 그리고 그저 나 스스로만 만족하는 공부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향의 연구를 해야만 해죠. 이 점은 저 자신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11. 슬럼프 극복를 위한 본인만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 예전에 ‘대학원에서 살아남기’라는 특강이 있었어요. 원래는 이 특강이 학부생을 위한 진로 특강이었는데 제목만 보고 대학원생들이 몰려들었어요. 그만큼 많은 수의 대학원생들이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거죠. 그 때 강사님께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대학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하셨어요. 만학도라서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 혹은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자신만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본인의 기준에 따라 꿋꿋하게 공부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차피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데 조금 뒤쳐진다고 해서 그것이 치명적이 될 수는 없어요. 일과 병행하면서 공부를 하더라도 일을 할 때는 일에 집중하고 주어진 시간동안 공부를 할 때는 공부에 집중하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절대로 자책하지 말아야 해요. 보다 구체적인 슬럼프 극복 방법으로 저 같은 경우는 단기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어요. 예컨대 논문을 한 편 읽는다던가, 연구 주제와 무관한 흥미로운 책을 읽거나, 혹은 짧은 글을 번역하는 등의 일은 하루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기 때문에 보람을 줄 수 있어요. 강제성이 동반된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죠. 학과의 워크샵 발표를 자진해서 맡게 되면 밤을 새서라도 하게 되니까요.
 
 

12. 대학원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선택하면서, 모든 요소를 따져서 최적의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다만 대학의 정규 교원이 되어야겠다는 꿈만을 품고 대학원을 진학한다면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보지는 않아요. 어제까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발견되는 것이 현재의 현실이고 또 앞으로 다가올 세계이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자신이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있어서 ‘박사 학위’가 반드시 필요한 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위는 제도예요. 생각해보면 이러한 제도권에 속해있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이 있고, 또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제한되는 일들도 생길 수 있으니까요.
 
 

13. 인문학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에 있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 흔히 인문학은 쓸모는 없지만 교양을 함양시킬 수 있는 학문이라고 말하죠. 인문학에 대한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은 결코 실제 삶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에요. 인문학은 삶과 인간, 사회의 결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사유를 정련하여, 지식의 형태로 구체화하는 학문이에요. 답을 찾고 싶은 문제의식을 탐구하고, 기존의 틀을 깨고 나감으로써 그동안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문학의 과정이니까요. 가시적인 성과와 실물 경제에 대한 기여만을 따지는 방식으로는 인문학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어요. 이러한 기존의 방식 때문에 한국의 교육 예산 가운데 인문학에 할당된 비율이 지극히 미진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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