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문과 민은경 교수 저서 캠브리지대학 출판부 간행

2018-06-19l 조회수 4400

  민은경 교수는 이번 2018년 4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 저서 China and the Writing of English Literary Modernity, 1690-1770를 출간하였다. 국내 대학에서 20년 이상 재직하면서 이처럼 세계 저명대학 출판부에서 저서를 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 그 경위와 의의를 듣고자 했다.
 

Q. 선생님, 이번에 출간하신 저서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특히 한국 연구자들에게 어떤 부분이 흥미롭게 읽힐 수 있을까요?

- 이 책은 기본적으로 18세기 영문학사를 정리한 책이에요. 18세기는 영문학사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시기죠. 문학시장의 인프라가 구축되고, 신문과 정기간행물 등의 상업적 출판이 발달되기 시작합니다. 소설과 같은 대중적 장르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이전보다 넓은 독자층이 형성되었고요. 문학텍스트가 다양화되고 문학을 소비하는 독자가 많아지면서 어떤 텍스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비평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기이고, 국민문학으로서의 영문학에 대한 이론화가 시작된 것도 이 시기예요. 저는 이러한 문학사적 변화 속에서 중국이 얼마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지를 써보고 싶었어요. 기존 영문학연구 중 제 저서처럼 문학사에 초점을 맞추어 중국의 영향에 대해 논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 5장에서 중국문학이 18세기에 영문학에 끼친 영향을 대해 자세히 소개했어요. 가령 퍼시(Thomas Percy)라는 사람이 이웃집에서 청나라 소설인 『호구전』의 번역 원고를 발견하는데요, 퍼시는 이것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편집해서 1761년에 출간합니다. 『호구전』은 완역되어 유럽에 소개된 첫 번째 중국소설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퍼시에 의해서 출간되었죠. 이 원고는 광저우의 영국 동인동회사에 근무했던 친척이 영국에 돌아올 때 가지고 온 것인데 아마도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소설을 번역한 것 같아요. 본인이 직접 번역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고요. 소설은 대부분 영어로 번역되어 있었지만 1/4정도는 포르투갈어로 되어 있었는데, 퍼시가 진짜 번역한 것은 포르투갈어로 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예들을 통해 영국 문인들이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를 보고자 했어요.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가 오리엔탈리즘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이전의 시기였다는 겁니다. 이 시기 자료를 보면 중국에 대해 정확한 정보도 별로 없고 중국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긴 하지만, 저는 당대 영국 문인들이 중국에 대해 굉장한 지적, 문화적 호기심을 보였다는 것에 주목해요. 영국인들은 이런 호기심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신들이 문명인으로서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시 중국문화가 18세기 영국문화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는가에 대한 연구로 볼 수 있을까요? 

- 단지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재현에 국한시키면 중국문화가 영국에 왜곡된 형태로 수용되었다는 뻔한 결론에 이르러요. 저는 재현을 넘어서서 다른 방식으로 이론화를 하고 싶었어요. 영문학계에 있는 분들은 대체로 진보적이고 자아비판을 많이 해요. 영국의 영문학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영국학자들은 제국주의, 식민지 시기의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기비판을 하는 일이 많지요. 저는 이 작업을 통해 18세기 영국문인들이 타문화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고, 그들에게 대표적 타자가 중국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템플(William Temple)과 같은 사람은 적극적으로 타자를 수용하고 알아가려는 자세를 가졌었는데, 이러한 자세는 우리가 높이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영국문인들은 중국에 대한 성찰을 통해 무엇이 진짜 영국적인 것인지, 영국의 근대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영국의 근대문학이 어떤 점에서 특별한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물론 중국에 대한 편견도 많았지만 진정한 관심도 있었어요.
 

Q. 선생님 저서에 또 다른 내용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 첫 번째 장은 당시 유럽의 고대-근대 논쟁(quarrel between the ancients and the moderns)을 다루었어요. 고대 문명과 근대 문명 중에 무엇이 더 나은가를 논했던 유명한 논쟁이지요. 특히 William Temple과 William Wotton의 논쟁이 흥미로워요. 이 논쟁을 논한 논문과 저서는 많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책을 전체적으로 꼼꼼히 분석한 연구는 놀랍게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제가 그들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 도서관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읽어보니 중국에 대한 서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이 사실을 지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들의 저작을 직접 분석하면서 저는 이 논쟁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게 되었고 18세기 영문학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 논쟁을 벌인 사람들은 단순히 유럽내의 과거와 현재의 문명을 비교하는 작업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시각에서 고대 중국 문명과 근대 영국 문명의 관계까지 깊이 있게 논했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두 번째 장은 『로빈슨크루소』에 관한 내용을 다뤘어요. 『로빈슨크루소』의 2부에서 로빈슨크루소가 중국에 가는데, 그가 왜, 어떤 경로로 중국에 가는지, 그리고 만리장성을 보고 왜 분노하는지 등을 분석했어요.
  네 번째 장에서 다루는 텍스트는 Public Ledger라는 신문에 Oliver Goldsmith라는 작가가 연재한 ‘중국인 철학자의 편지’인데요, 중국인인 척하며 100회 이상 편지 형식으로 신문에 연재한다는 발상도 재미있고 중국인을 통해 영국성을 풍자하는 방식도 아주 창의적이에요. 저는 이 편지들이 신문에 연재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분석을 했어요. 중국은 영국인들에게 ‘오래된 과거’를 상징하기도 했지만 ‘첨단’, ‘동시대성’, ‘새로움’, ‘놀라움’을 상징하기도 했고, 영국의 반사적 거울로 기능하기도 했어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영문학자들에게도 생소한 텍스트를 많이 다루고 있어서 접근하기 쉬운 책은 아닐 테지만, 한국 독자들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Q. 선생님, 이제 화제를 바꾸어보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하고 공신력 있는 출판사인 케임브리지대학출판부에서 저서를 출간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어떻게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지요? 출간 경위와 과정에 대해 좀 말씀해주세요.

- 사실 이 책의 주제는 1998년 제가 서울대에 부임한 다음 줄곧 생각한 것이에요. 아시아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어떤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다가 정한 주제지요. 주제를 대충 정한 후 해외 고문헌 자료들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18세기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기 이전이었죠. 2001년 UCLA에 있는 Clark Library라는 고문헌 도서관에 처음 자료 조사를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연구에 착수하여 책을 내는 데까지 15년 이상 걸린 셈이에요. 케임브리지에서 책을 낸 것은 운이 좋았어요. Princeton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당시 케임브리지대학출판부의 Linda Bree라는 편집자가 방문하여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분은 18세기 영문학 연구자로서도 매우 권위있는 분이에요. 그분 말씀이 요즘은 대학의 출판부도 전문학술서(monograph)가 시장성이 낮다고 여겨 아주 까다롭게 선정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책의 개요, 목차, 그리고 제가 이미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을 정리해서 그분과 상담을 하였고 다행히 ‘관심 있다, 원고가 다 되면 보내달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어요.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정말 열심히 집필했습니다. 결국 원고가 너무 길어서 많이 잘라내야 했지요. 케임브리지에서는 책 길이가 12만 단어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전 정말이지 좀 봐줄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너무나 힘들게 원고를 만들어서 제출했더니 읽어보지도 않고 너무 길다, 분량 맞춰서 다시 제출하라고 하는데 눈물 나는 줄 알았어요. 
  완성된 원고를 보내니 편집책임자가 해당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자 두 분을 물색하여 Peer Review를 진행해요. 원고 분량을 감안하여 읽을 시간을 넉넉히 주고요. 2015년 말에 처음 원고를 넘겼는데, 각각 서너 페이지 분량의 평가를 받기까지 1년 반 정도가 걸렸어요. 두 분의 평가가 다행히 상당히 긍정적이었어요. 저는 심사자의 의견에 대해 답변을 적어 제출했고 출판사 이사회에서 저서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최종 심의하여 계약을 확정하게 되었죠. 2017년 봄에 계약서를 작성했어요.이후 세 번 정도 교정을 진행하여 출판에 이르렀어요.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들 가지시는데, 저는 여러 명의 편집자(editor)와 일을 했어요. Linda Bree는 제 commissioning editor였고, 그분 외에도 총괄 managing editor, copy editor가 붙었고, 마케팅/홍보 담당자도 따로 있었어요. 표지는 design team에서 디자인 해주었고요. Copy editor는 정말 꼼꼼하게 교열을 봐줬어요. 제 의견을 여러 차례 물어가면서요.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 규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면 제 뜻을 존중해줘서 고마웠습니다. 막판에는 또 다른 copy editor가 최종교열을 봐줬어요.
 

Q. 책을 출간하며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책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어요. 어린 딸을 키우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병행하는 작업은 언제나 시간과의 전쟁이었습니다. 대학에서는 논문을 요구하는데 저는 책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연구를 하고 계신 분들은 주로 해외에 있는데, 그분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좀 외로웠어요. 연구를 교류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해서요.
 

Q. 앞으로 학술출판을 생각하는 연구자들에게 주고 싶은 Tip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케임브리지대학출판사에서는 요즘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의 위치와 지역성(locality)이 어떤 장점 혹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내 독자층이 누구인지도 고민해 보아야 해요. 연구 초반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누구에게, 왜 전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 뒤, 독자층을 겨냥하고 출판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의 위치를 장점으로 돌리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해외출판을 준비할 때는 글로벌한 독자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지요. 저는 유럽, 미국, 그리고 아시아 독자를 동시에 겨냥해서 책을 썼습니다. 해외출판의 장점은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글을 읽어준다는 점입니다. 케임브리지대학출판사는 마케팅도 아주 적극적으로 해주고 전자출판도 동시에 준비해주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해외출판을 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해외 네트워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외학술지를 통해 나를 알리고, 네트워킹을 통해 내 연구에 대한 학문적 신뢰를 쌓는 과정이 없이 책이 나오기는 힘듭니다. 결국 내 분야 연구자들이 내 책을 읽고 심사하고 서평을 써주니까요. 그분들과의 관계가 정말 중요해요. 나 혼자만의 목소리를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 공동체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 연구가 발전하는 것이지요. 나의학문공동체 내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또 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수립하는 과정을 꾸준히 밟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서울대 연구자들이 더 많이 해외출판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 저는 한국연구재단, SBS 재단, 서울대 지원 외에도 해외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어요. 해외 재단에서는 대개 결과물 제출 등과 같은 사후 요구 사항이 거의 없고, 그저 연구 종료 후 짧은 결과보고서가 고작이지요. 연구자를 믿는 것이죠. 이런 믿음은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해요. 그건 큰 빚이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장기적인 재정지원과 저를 믿고 신뢰하는 연구환경이 있었기에 연구가 원활히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이런 장기적이고 개방적인 지원 시스템이 한국에도 도입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제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학문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연구주제에 관하여 서로 토론하고 발전시켜주며 서로의 연구성과를 읽고 아껴주고 인정해주는 학문공동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현재 한국18세기학회 학회장을 맡고 계신데, 학회의 계획과 함께 선생님 개인의 연구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 18세기 연구는 다양한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예요. 문학, 역사, 정치학, 철학, 경제학 간의 학제간 연구도 많고, 연구 폭도 상당히 넓죠. 요즘은 18세기 연구 안에서도 ‘글로벌 18세기(the global eighteenth century)’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예전에는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연구를 많이 했다면 요즘은 전지구적 맥락을 연구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번 책에서 한 연구처럼요. 지금 한국18세기학회에서는 심포지엄을 열고 책을 간행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이번 기획주제인 ‘18세기의 방’도 이런 시각에서 출발했습니다. 18세기의 사적 공간은,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글로벌한 교류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18세기 유럽에 인테리어 디자인이 처음으로 개발되면서 귀족들은 자기들의 방을 꾸밀 가구 등을 새롭게 고민하여 들여오기 시작했는데요, 이 사적 공간은 동시에 이 시대의 글로벌한 변화를 반영합니다. 유럽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가구 중 하나가 중국 의자입니다.
  제 개인 연구로 가면, 저는 연구주제를 잡을 때, 제 일상생활 속에서 제가 고민하는 주제에서 항상 출발해요. 이번 책을 저술하며 아쉬웠던 점은 이 연구에 여성이 들어갈 자리를 별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저서에서는 17, 18세기 여성문학을 가지고, ‘의무(obligation)’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려 해요. 사회계약론에서 생각하는 의무관계가 사회계약에서 배제된 여성들에 의해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여성들은 어떤 의무를 안고 살았고, 그들이 의무를 어떻게 성찰하고 의무와 어떻게 협상했는지 살피고자 해요. 이 시대 여성문학은 주로 로맨스였는데 로맨스와 의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피는 작업입니다. 재미있겠지요?
 
인터뷰 진행이우창(영어영문학과 박사 수료)

 


(China and the Writing of English Literary Modernity, 1690-1770 표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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