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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17학년도 2학기 서울대학교 교육상 수상 - 최윤영 교수 인터뷰

2018-02-01l 조회수 5183

인터뷰 진행 : 신철우(국어국문학과 석사 수료), 김재헌(철학과 석사 수료)
 

1. 2017년 2학기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학자로서 연구 업적을 통해 주목받을 때와 교육자로서 그 성취를 인정받을 때의 감흥이 사뭇 다를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교육상을 받으신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그냥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매우 당황스럽습니다.(웃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상이었거든요. 제가 꼭 이 교육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제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고, 그 결과로서 이렇게 상을 받게 되어서 매우 기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 선생님께서는 교양과목 <여성과 문학>을 개발하시고 여러 학기를 담당하며 우리 학교의 젠더 관련 교양과목을 선도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성별 갈등이나 여성주의와 관련해 세간의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은데요. 젠더 문제를 고민해 봄에 있어서, 문학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갖는 고유한 장점 혹은 특징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또한 이러한 젠더 문제를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보는 과정에서 스스로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교육상을 받을 때 교육활동보고서라는 것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그동안 제가 가르친 <여성과 문학>이라는 교과목에 관해 정리해보니, 지금까지 열네 학기인가 열다섯 학기 동안을 가르쳤더라고요. 그러니까 굉장히 오랫동안 이 수업을 해온 셈이지요. 처음에는 주로 페미니즘의 고전을 가르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모든 시대에 여성이 차별을 받아 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그보다 젠더 문제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싶었어요. 각 시대마다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 또 사랑, 몸, 이미지와 같은 것과 관련해 이러한 남성성, 여성성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 살펴보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저는 수업에서 학생들과 토론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인데요, 그 중에서도 이제까지 젠더 문제의 관점에서 보지 않았던 작품들을 우리 학생들과 새롭게 해석하고 토론한 것이 가장 흥미진진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학생들이 제출하는 보고서도 아주 좋았고요. 예를 들어, <베니스의 상인>, 요즘은 젠더 문제의 관점으로 많이 읽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처음이었던 <프랑켄슈타인>, 또 독일의 클라이스트라는 작가가 쓴 <O 후작 부인>, 그리고 배수아 작가의 작품들을 갖고서도 많이 토론을 했어요. 교과목 이름이 <여성과 문학>이었는데, 여성뿐 아니라 문학에도 포인트를 두었던 것이 교과목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리고 특이했던 것이 수업을 듣는 학생 수를 보면 항상 남학생 반 여학생 반이었어요. 그래서 수업도 서로 이야기를 들어보는 방식으로 많이 진행했던 것 같아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굉장히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이런 의견들을 서로 들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젠더 문제, 젠더 감수성 문제가 우리 학교에서는 정말 핫이슈가 되고 있고 또 관련 사고도 많이 일어나는데, 의외로 학부 과정에는 관련 교과목이 점점 줄고 있고 관심도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그런 부분이 우려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문학의 장점은 이런 것 같아요. 어떤 사회 이슈가 있을 때 우리가 그것에 대해 끝까지 토론하는 것도 물론 재미있지만, 문학의 경우 구체적인 개인이나 삶의 형식 안에 문제를 녹여 다루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저렇게 새롭게 해석해볼 수 있는 측면들도 많고요. 그래서 어떤 사회 문제를 갖고서 치열하게 토론하는 것보다 문학 안에 구체적인 삶으로 구현된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 그리고 그 특성들을 갖고서 이야기 하는 것이 훨씬 더 오래 가고 좋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도 있고요. 우리 학생들은 워낙 뛰어나서 자극을 잘해 주면 새로운 것을 굉장히 많이 찾아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고요. 정말 글 잘 쓰고 말 잘 하고 토론 잘하는 이런 학생들과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때가 많아요.

 

3. 선생님께서는 독일 이민문학(또는 상호문화성 문학)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민문학은 현대 독일문학의 특징 중 하나로도 일컬어질 만큼 그 위상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데요. 외국어문학의 교육목표로서 이민문학이 한국사회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제가 예전부터 소위 이민문학에 속하는 작품들을 전공 수업 시간에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들이 이민문학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속한다는 것은 별로 인식을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2003년에 방학 때마다 미국에 갈 일이 있었어요. 그때 미국 하버드 대학에 방문 연구원으로 가서 그곳에 계신 교수님과 함께 수업을 하면서 이 분야를 알게 됐어요. 독일에 400명 이상의 소위 이민 작가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독일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독일 사람이 아닌데 독일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독일 문학에 굉장히 큰 활력소가 되고 있었는데도, 거의 주류 작가에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제가 이들에 관해서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미국에 가서 있을 때, 콥이라는 젊은 여성 교수 분께서 <상호문화영화>라는 교과목을 진행하고 계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 분야에 대해 알게 되었고, 또 제가 늘 읽어오던 이미륵과 미국에 가서 처음 알고 읽게 된 강용흘이라는 작가가 서로 형식이 너무 비슷한 거예요. 그때 ‘아! 이런 것이 이민문학이구나.’했지요. 그래서 그 이후로 ‘Asian American literature’ 관련 책들도 많이 찾아보게 되었고, 또 그 당시에 인류학에서 ‘Writing Culture debate’가 있었는데 이런 논쟁들도 많이 살펴보게 되었지요. 여기에서 얻은 방법론을 바탕으로 이미륵과 강용흘을 비교한 책을 두 권 연속해서 쓰고, 그 이후로는 정말 독일에서 활동하는 이민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돼서 그들의 작품들을 우리나라에 계속 소개하고 번역하는 일을 지난 10년 간 열심히 해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이민문학이 학생들에게 굉장히 어필이 되더라고요.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저는 항상 대학원에서 먼저 실험을 해보고 그 다음에 조금 쉽게 다듬어서 학부 과정으로 또 가르쳐 보는데요. 학생들이 이민문학을 좋아하는 것이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독일어가 우리에게 낯선 언어이고, 또 독일문학이 낯선 문학이잖아요. 그런데 이민작가들 역시도 낯선 이방인의 관점에서 독일어와 독일문학을 관찰하거든요. 또 이민작가들이 독일어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한 감수성을 보여줘요. 언어가 섞이는 것이라든지 혹은 신조어를 만드는 것에 관해서 말이에요. 독일어가 자기 모국어와 섞이면서 그 안에서 생겨나는 절대 자연스럽거나 당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식 그리고 모국어에 대한 거리두기도 있지요. 이러한 여러 현상이 학생들 스스로 외국 문학을 읽는 독자로서 갖는 타자로서의 위치와 맞물리기 때문에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또 성인이 돼서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이민작가들이 문제의식은 굉장히 깊지만 언어 자체는 보통의 독일 작가보다 조금 쉬운 경우가 많아요. 우리 학생들도 언어가 조금 미숙하지만 의식은 발달하고 굉장히 지성적이라서 밸런스가 약간 안 맞는 면이 있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이민문학이 굉장히 좋은 소재였던 것 같아요. 학생들이 이민문학을 소재로 토론도 잘하고 글도 잘 써오고, 심지어는 “나도 나중에 글을 쓸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외국어문학에서 이민문학은 굉장히 좋은 교재라고 생각해요.

 

4. 얼마 전 신문에서 한국 사회도 이민자나 다문화 가정이 점차 늘고 있어 머지않아 독일과 비슷한 상황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제 생각에 독일은 한국에 굉장히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미국은 원래부터 이민국이었잖아요. 그런데 독일은 원래 스스로가 단일 민족국가라고 생각했는데, 급격히 다문화사회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유의해야 할 것이 ‘다문화사회’라고 말할 때는 한국도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한국과 외국이 섞인 다문화사회가 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사회’라고 하면 외국이라든가 이방인 가정만을 생각하는데 이것은 맞지 않지요.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마찬가지로 이방인으로서 그 사회에 유입이 될 거고, 또한 우리도 지금 100만 명이 넘는 이민자들과 사는데, 이 사람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독일에 가서 강연을 할 때, 독일문학 뿐 아니라 한국문학 중에서도 이민자라든지 혹은 이주노동자가 나오는 문학을 소개하기도 하고, 또 독일에서 글을 쓰는 한국 작가나 영화감독을 독일 문학계나 한국 문학계에 소개하기도 해요. 이런 것들이 결국은 독문학자들이 중간에 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독일 사례를 살펴보면, 스스로가 민족국가라고 생각하던 상황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계속해서 유입되었고,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겪은 갈등과 혼란들이 있었지요. 독일은 이민정책에서 많은 실수를 거듭 되풀이 해왔는데요, 저는 독일이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문제는 사람들의 의식이 그만큼 성숙하지 않은 데 있다고 보는 거죠. 독일에서 ‘Interkulturelle(상호문화)’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이유가, 미국이나 캐나다와 달리 독일에서는 다문화적인 사회는 하나의 현상이라 보고, 이러한 현상을 인식해서 서로 간에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에 목표 또는 지향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문학계에서는 미국 쪽의 이민문학과, 독일 쪽의 이민문학을 비평하는 틀도 서로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또 각각의 일반사회에서 목표로 하는 바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한 번 눈여겨볼 만한 것 같아요.

 

5. 선생님께서는 독일지역학과 문화학에서도 개척자 역할을 수행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 시점에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여타의 유럽 국가들 중 특별히 독일의 풍토와 문화, 관습 등을 탐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제가 연구자로서 많이 연구하는 분야는 이민문학이지만, 실제로는 교육자로서 독일지역학이나 문화학을 개척하려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이것은 개인적인 경험의 틀인 것인데요. 항상 저는 어느 사람의 모자람이라든지 약점이 결국 그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믿는 편이에요. 제가 독일에 유학을 딱 갔을 때, 독일 사회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적었어요. 우리가 한국에 있으면서 독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너무 부분적인 것들이었고요. 그래서 제가 항상 생각한 것이 외국에서 독어독문학을 한다면, 텍스트만 전달해서는 안 되고, 콘텍스트, 그러니까 텍스트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동시에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귀국해서 그런 종류의 강의를 많이 만들자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당시 90년대에 독문학 위기설을 비롯해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해결책을 많이 모색하고 있었어요. 그러한 과정에서 다행히도 제가 계속 밀어붙이던 독일문화학이 받아들여졌어요. 그 당시에 『독일이야기 1・2』라는 책을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다 같이 냈는데, 그것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고, 강의주제나 방법론도 많이 개발되었지요. 또 항상 우리는 독일지역학과 문화학이 학문의 수준으로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많은 논의를 했었어요. 그 결과로서, 예전에는 독문학, 독어학 이렇게 2개가 주류였는데, 지금은 독어학, 독문학 외에 독일문화학이 또 하나의 중요한 기둥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저는 어쨌든 독일지역학이나 문화학을 개발하는 것이 외국어문학으로서의 독어독문학을 하는 사람의 책임감 혹은 자의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콘텍스트를 알아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꼭 독일식으로 독일문학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독일 문학을 다른 문화적 전통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는 것도 독일 문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많은 부분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잖아요. 이런 것을 부각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6. 선생님께서는 2015년부터 <SNU in Berlin>를 기획하고 지도하시어 많은 학생들이 독일 현지에서 외국어를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현대 독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SNU in Berlin>을 기획하신 취지와, 본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앞 질문과 이어지는데요, 제가 독일 지역학이란 걸 처음 개발했을 때 저희 과에서 제공하는 어떤 스텝을 밟아오면 저는 항상 마지막에 독일에 한번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었어요. 그런데 지금 학부생 수도 줄었고, 또 학교도 어찌되었든 간에 예전보다는 재정적 자원이 많이 늘고 해서, 처음 국제협력본부에서 <SNU in Europe>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한다고 들었을 때, 저희가 먼저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유럽 각 나라마다 전통과 문화에 따라 조금 다른 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사전교육은 <SNU in Europe>으로 같이 하고, 그 다음에 학생들이 독일 현지에 가서 전 세계에서 오는 사오백 명의 학생들과 함께 어학코스를 들으면서, 독일 교수의 강의를 10개 듣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소 10군데를 탐방하는 식으로 기획했던 거죠.
그런데 저희가 4주이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보다 긴데, 사실 학생들은 기니까 결국 더 좋아하더라고요. 왜냐면 진짜 독일 사회를 그냥 여행자로서 보는 게 아니고 자기가 거기서 한 달을 살았잖아요. 그래서 나름 어떤 유럽이라든가, 독일에 대해, 또 삶에 대해서 깊이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1기, 2기, 3기, 각각 30명씩을 독일에 보냈어요. 모든 과의 학생들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 같이 사는 법도 배우고 낯선 문화에 적응하는 법도 배우고요. 무엇보다 학생들이 평소 미국은 친숙하게 느끼는데 독일은 사실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독일어, 아주 짧은 독일어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독일이라는 사회에 대해 굉장히 호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유학을 오겠다는 학생도, 그 수는 적었지만 늘 있었고요. 실제로 1기와 2기 중에는 유학을 간 학생도 있어요. 또 학생들이 나중에 포닥이나 주재원으로 독일에 올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기는 무조건 오겠다고 해요. 아마도 학생들이 독일에 아주 잘 적응을 했기 때문에, 또 사회가 안정적이고, 녹색지대도 많고, 삶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의 의미도 학생들이 새로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독일에서 학생증도 받고, 실제로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같이 어울리면서 공부하고 그러는데, 제가 내년에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자유베를린대학 한국학과와 한 이틀 정도 겹치게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을 해보고 싶어요. 서울대 학생들은 워낙 똑똑해서 독일어를 하나 배우고, 새로운 외국어로 말하고, 적어도 시장에 가서 간단한 거 물어보는 건 충분하니까요. 자기가 모르는 새로운 낯선 세계에 들어가 버텨내고, 잘 적응하고, 잘 지내는 경험이 제가 보기에는 우리 학교가, 특히 외국어문학과가 줄 수 있는 제일 소중한 경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학교가 이런 프로그램을 계속 확장하는 것에 대해 대찬성이고요. 그 다음에 예를 들어,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걸,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프랑스에 갔는데 프랑스어를 안 배우고 영어로 하겠다. 이거는 제가 보기에 굉장히 오만한 태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 나라 말을 배우면 하다못해 박물관에만 이따금씩 가도 듣는 게 훨씬 많은데 이런 좋은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또 학부생뿐 아니라 대학원생들을 위해서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대학원생들한테는 너무 이런 프로그램이 없는 것 같아요.    

 

7. 사제지간으로 보자면 선생님이시지만, 학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배이기도 하십니다. 선배 학자로서 후배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 자기가 하는 일에 항상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당장 쓸모는 없어도 결국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것을 늘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우리 선학들은 늘 그런 질문을 해왔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너무 학문이 전문화 되고 체계화 되고 세분화 되다 보니까, 큰 질문 던지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데, 내가 이 논문 왜 쓰지, 내가 왜 이 주제를 쓰지, 그런 거에 대해서 항상 자기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마련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야 학자로서의 길을 걸어도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외국어문학자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국제학회에 열심히 찾아가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면 외국학자들도 많이 만나서, 이제는 초대도 많이 받고 제가 한국에도 초청을 하고, 그런 교류 관계가 많이 생겼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를 들어, 제가 쓰는 논문, 한국어로 쓰든, 독일어로 쓰든, 한 반반 쯤 될 텐데, 이걸 누가 읽을까, 아마 이걸 읽는 사람은 극소수일 거예요. 그런데 이 일이 왜 중요할까, 왜 의미가 있을까, 이런 거에 대해 스스로 납득을 해야 되는데 ….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서울대학교 교수면, 사실은 굉장히 축복받고 혜택 받는 위치인데, 남들이 잘 못하는 어려운 일을 좀 기꺼이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이민문학 작가를 계속 소개하는데 아주 가끔 전화가 오는 거예요. 다와다 요코를 제가 제일 처음 논문을 썼을 때만 해도 왜 저런 일본계 독일작가에 대해 글을 쓰느냐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제는 이 작가가 50권이 넘는 책을 쓰고 계속 활발히 활동을 하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 거죠. 얼마 전에는 한 대학에서 일본문학 전공의 선생님이 제가 쓴 논문을 읽고 강연을 해달라고 하셔서 가서 강연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언제, 누군가가 읽고 빛을 발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또 연결이 되어서 일문학과에서도 다와다 요코를 번역하는 사람이 생겼고, 뭐 이런 식으로, 당장에 답을 구할 수는 없지만, 제가 이렇게 하는 게 항상 어디선가 가끔 반향이 와요. 또 얼마 전 『민족의 통일과 다문화사회의 갈등』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도 여태까지 저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고 해서 쓴 거예요. 우리가 통일이 될 때 너무 민족의 통일을 강조하지 말자, 그러면 우리나라에 있는 이 많은 외국인이나 이주민들은 어떻게 하느냐, 이런 얘기들을 많이 썼거든요. 처음에는 사람들 반응이, 그거는 너무 주변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라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했었는데, 요새 또 갑자기 이런 데 관심이 생겼는지 여기저기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어요.
  이민문학을 연구하는 저로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거였지만, 외국문학자는 이렇게 자신이 하는 연구에 대해 걸 끊임없이 물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독일에 가서 내가 이 발표를 하는 게 왜 중요하지, 한국에서 논문을 쓰면 정말 소수가 읽을 텐데 왜 이걸 해야 돼지, 우리 후학도 생각해야 되고, 또 내가 하는 일도 원래 독일문학을 한국에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을 하면, 비록 읽는 사람이 없어도 누군가가 끊임없이 이런 업적을 계속 쌓아 놔야지 뒤에 사람이 그걸 보고, 그걸 밟고 올라가는, 그런 디딤돌이 되는 것 같아요. 인문학자들은 더더욱 그래야 할 것 같아요.

 

8.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이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서울대 교수로 2003년에 왔으니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남은 기간이 재직한 기간에 비해 올해부터 조금 짧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앞으로 남은 12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좀 하게 되죠. 그래서 제가 여태까지 관심 있었던, 큰 주제의 책을 긴 호흡으로 2~3년 정도 두어 권 쓰고 싶고요. 그 다음에 요새는 번역에도 관심이 많아서, 번역 작업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테레지아 모라라고 하는 헝가리 작가의 책도 금방 나올 거고, 다와다 요코의 책도 한 권 더 번역하기로 계약했고, 그래서 아마도 이런 이민 작가들, 한국에 수용될 수 있는 작가 위주로 조금씩, 아마도 이런 번역은 평생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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