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뉴스

[인터뷰] "언어, 그리고 기초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 김호동 교수 인터뷰

2017-11-03l 조회수 7471



인터뷰 진행 : 이정연(비교문학 협동과정 석사 수료), 황수경(동양사학과 박사 재학)

김호동 선생님, 선생님의 저서를 보고 동양사학과를 선택했다는 학생이 있는 만큼 선생님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선생님을 중앙유라시아 분야의 석학이시며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학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아틀라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고 이 아틀라스 시리즈는 57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이야기: 구약편』도 집필하였습니다.

1. 선생님께서는 중앙유라시아사를 공부하신 1세대라고도 합니다. 중앙유라시아에 주목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우리나라와 중국은 북방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묘사가 대체로 한문으로 쓰인 것이라 적대적인 것이고 편견이 많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북방 유목민들과 남방 농경민과의 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이루어진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못했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북방이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 그전에도 알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북방을 연구하기 힘들었던 것은 언어적인 장애 때문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은 자기들의 독자적인 전통이 있었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풍습도 다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봤는지 잘 모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로 쓴 글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전쟁이 끝난 어려운 시기였기에 그들의 언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에게 기회가 주워져서 그들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쓰기보다는 그동안 소홀히 취급했던 그들이 쓴 자료들을 원용해서 중국 관점과 균형 있게 보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지금은 저뿐만 아니라 저와 비슷한 세대에 외국에서 유학을 갔다 오면서 몽골어, 터키어, 러시아어 등을 배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꽤 여러 사람들이 그런 자료들을 보고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북방유목민족사에 대한 연구가 그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쓴 글에서 우리 선생님들 세대들에 대한 연구 업적을 거론하며 그 세대로 시작하여 제3세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지 언어로 연구하는 것으로 치자면 저를 비롯한 세대를 제1세대라 합니다. 우리 선배 선생님들 중에는 현지 언어로 연구하는 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 세대에서 키워낸 후배들, 제자들까지 더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발전의 가능성을 더 많다고 봅니다.
 

2. 그만큼 언어가 중요하다고 느껴집니다. 언어의 중요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 역사 연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인문학에 사실은 언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대학 들어올 때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몽골어를 비롯해서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는 물론이거니와 그 당시에는 러시아어 · 스페인어학과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영・독・불・중국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배울 수 있는 언어가 굉장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식학과로서 노어노문학과와 서어서문학과가 생겼고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다양한 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협동과정이 있어서 라틴어, 그리스어를 꾸준히 강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개설하려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문학은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전을 보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 됩니다. 물론 번역된 것을 보고 연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쓸 수 있는 분야도 깊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의 미래를 위해서 저는 철저한 언어훈련이 제일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어는 물론이고, 동양의 고전 언어인 한문의 학습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양의 고전 언어는 라틴어인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우리가 한문을 하듯이 라틴어를 배웁니다.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는 전통적으로 졸업생 대표가 라틴어로 연설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충 감으로 알아듣고 웃기도 합니다.
  한문, 라틴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들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도 우리 학교에 언어 교육 시스템이 있지만 아직 불충분해보입니다. 자기가 필요한 분야에 관련 있는 언어는 철저하게 공부하고 마스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학교에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서양과 동양의 고전 언어를 단계별로 초급부터 시작해서 아주 고급 단계까지, 정말로 원전을 아주 잘 읽을 때까지 훈련을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저희는 문헌연구를 위해서 언어를 배우는데, 회화의 중요성은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 회화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능력과 시간에 한계가 있기에 모든 문어와 구어를 마스터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언어를 배울 때에는 대부분이 갈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러시아, 몽골, 이란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문어로만 배웠습니다. 그래서 여러 개 언어를 한다고 해도 회화를 할 수 있는 것은 몇 안 됩니다. 바람직한 것은 회화까지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언어의 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언어는 살아 있는 언어를 배우고 그 다음에 고전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외국 사람이 한국어를 배울 때, 고전 한국어부터 배우면 안 맞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그것을 기초로 고전 한국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적 제약이 있으므로 꼭 필요한 언어는 회화, 구어, 문어를 다 하는 것이 좋고 그 외의 언어는 경우에 따라서 문어를 익히고 사전을 활용하여 원문을 읽고 해독하고 이해하는 정도면 괜찮다고 봅니다. 
  한문은 동아시아에서 고전 언어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인류의 지식이 영어로 쓰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어 자료를 자유롭게 쓸 수 없으면 그 많은 부분을 활용하는 데에 장애가 생깁니다. 인문대 학생이라면 영어는 당연히 잘 해야 하고 그 다음에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 따라 동아시아의 고전 언어인 한문과 유럽의 고전 언어인 그리스 · 라틴어는 좀 더 해야 합니다. 동양사학과 학생이 그리스 · 라틴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영문과, 불문과, 독문과 아니면 서양사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 · 라틴어를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독일어, 불어, 러시아어를 하는 것입니다. 
 

4. 외국어를 공부하는 요령이 있을까요?

- 없습니다. 물론 언어적으로 두뇌가 많이 개발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차이가 굉장히 커서 누구는 1시간으로 남들 10시간 할 분량을 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없습니다. 결국 자기가 투여한 시간만큼 결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언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언어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코스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 언어의 구조를 배운 다음에 중요한 것은 단어입니다. 단어를 많이 외우고 그 단어를 계속 복습하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 언어를 마스터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회화하고는 다릅니다. 언어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언어에 대한 감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만해서도 안 되고 기죽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5.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에 많은 지도가 실려 생동감을 줍니다. 집필하시는 데에 중점을 두신 부분이 있으신지요.

- 출판사의 기획의도가 지도로 보는 역사입니다. 중앙유라시아사가 특별한 것은 아니고 다른 책들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중앙유라시아 쪽은 중국사나 일본사처럼 지도가 풍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지도를 제가 만들어야 합니다. 지도를 만든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체로 지도는 책에 지도가 실려 있으면 종이를 올려놓고 따라서 그리고 거기에 자기 필요한 지명을 표시하는데, 할 때마다 똑같은 작업을 새로 해야 하고 찾는 지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없을 때에는 대충 다른 지도를 보고 적당히 표시해서 부정확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 지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애용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작업하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해서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가 전공을 하고 있는 몽골 제국 시대 지명들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명들의 경도와 위도를 넣었습니다. 대략 1, 2천 개의 지명의 데이터 값을 넣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지도를 띄워서 필요한 지명을 체크만 해주면 지도에 지명들이 표시됩니다. 처음에는 몽골 제국 시대를 넣었지만 나중에는 흉노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다양하게 넣어서 아틀라스에서 필요한 지도들을 만들었습니다. 기본 베이스가 되는 지형도는 여러 가지 베이스 맵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활용하여서 민족의 이동, 전투의 전개, 사신들의 왕래를 표시할 때 그에 대한 화살표를 지도에 긋습니다. 지형도가 자세하게 나오기 때문에 화살표를 엉뚱하게 긋지 않습니다. 그려서 넘겨주면 그것을 가지고 일러스트레이터가 책을 출판할 수 있게 디자인합니다. 그렇게 백 몇십 개의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더러는 기존의 지도들을 참고하기도 하였지만 일단은 기본적인 베이스 맵은 제가 그린 것입니다.
  지도라는 것이 재밌습니다. 저는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제가 안 가본 지역의 지도를 보면 마치 거기에 가 있는 느낌이 들고 묘한 흥분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지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옛날에 제왕들이 제국 지도를 그립니다. 제왕들이 지도를 그려놓고 자기 집무실에서 지도를 보는 것은 자기가 정복한 지역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배했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도 자기가 공부하는 지역에 대한 지도를 보면서 그 지역을 인식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묘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 공부를 할 때는 원전에 대한 지식과 함께 지리에 대한 지식도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료를 볼 때 도대체 어떤 무대에서 이뤄지는지 잘 모르게 됩니다.
 

6. 이번에 새로 출간하신 “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 이야기”에서도 활용되고 있어 실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신 의도를 여쭙고 싶습니다.

- 이 책은 전공과 관련되는 것이 아닙니다만 아무튼 성경을 볼 때마다 아쉬운 것이 원전으로 못 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은퇴한 뒤에 히브리어를 배워야지 하는 생각은 항상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리에 대한 감이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 시대의 이야기를 한참 하면 이곳이 어딘지.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아둘람이라는 동굴에 숨었는데 이 아둘람이란 동굴이 대체 어딘지. 아들이 압살롬이란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궁정에서 도망을 가서 마하나임으로 가는데 마하나임은 어딘지.’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안 들어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을 읽으면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나오는 메시지만 읽게 됩니다. 
  그런데 역사하는 사람들은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와 같이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구약을 많이 읽었지만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깨끗이 정리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지만 연구년 가있을 때 집필했습니다. 지도는 이미 많이 그려봤고 성경은 기존의 지도가 많이 있습니다. 기존 지도를 참고해가면서 직접 지도를 그렸고 각 섹션별로 이야기는 제가 공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도하고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7.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이를테면 문학 등- 지도가 그런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 역사하는 사람처럼 지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읽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더블린이라는 공간을 막연하게 머릿속에 설정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더블린 시대가 어떤 모습이라는 데에 지도가 있다면 훨씬 더 이해가 좀 더 생생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하고 지도의 효용성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런 공간적인 감각을 배제한 채 머릿속으로 구조물을 막연히 상상하는 것과는 좀 다를 것입니다. 더군다나 중세문학이나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같이 외국문학은 더욱 그러합니다. 조정래 씨가 쓴 소설에 지리산이 등장하는데 지리적인 환경을 어느 정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피아골 그러면 피아골이 어떤지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문학이 물론 역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도 없이도 가능하다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8. 선생님의 저서를 읽으면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느껴집니다. 글쓰기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 사람마다 글에 스타일, 문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글은 좀 길고 조금 어렵다고 합니다. 일반 교양인들이나 대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쓴 글조차도 어렵다고 합니다.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말 자체를 어렵게 쓴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면이 있기는 합니다. 우리 과 선배 선생님들, 민두기 선생님 혹은 이성규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받은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대학교 다닐 적에 사실은 역사보다는 문학 쪽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문학을 해 볼까하는 생각도 했었기 때문에 그때의 느낌들이 지금도 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복합적이겠지만 특별히 글 쓰는 연습을 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많이 쓰는 겁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호흡이라고 생각합니다. 써 놓고 읽으면서 문장의 호흡이 편안하게 들어와야 합니다. 리듬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있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글의 호흡이 달라서 내가 편한 호흡이 남들에게 편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호흡을 해나가면 일관성이 생기고, 남들도 읽다보면 그 호흡에 익숙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퇴고를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어줘야 합니다. 학생들의 글 보면 그게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글을 읽어보면 글이 거칠게 느껴집니다. 
  글은 가능하면 명쾌해야 합니다. 앞에서 자기가 이야기한 것과 잘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논리적으로 명쾌하지 않은데다가 호흡까지도 안 맞으면 글 읽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소설을 잘 읽게 되는 것도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처음 플롯이 설정될 때까지는 조금 인내가 필요하지만 한번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읽게 되는 것처럼 논문이나 책도 사람이 거기에 빨려 들어와야 됩니다. 그러려면 뭔가 빨아들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결국은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문제를 던지고 사람들에게 그게 왜 중요한 문제인지를 알게 해야 합니다.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논문은 경우에 따라서 큰 하나의 질문을 위해서 여러 개 질문들로 구성이 될 수 있습니다. 조그만 질문을 던지고 답하고 그것들이 쭉 연결되면서 나중에 모아보니까 처음에 던진 큰 질문에 대해서 이런 대답이 나왔구나 하면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글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야 합니다. 문체적인 것도 있지만 문제의식도 상당히 분명해야 되고 논리적인 구성도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글이 읽을 만하게 됩니다.

9. 글을 쓰시고 공부하시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 옛날에 담배도 많이 피웠습니다. 하다가 생각이 딱 끊기면 담배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담배를 문다
고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그렇습니다. 지금은 담배를 끊어서 그걸 이용할 수 없어서 답답합니다. 나이도 됐고 그래서 논문을 쓸 때 무리는 안 하려고 합니다. 무리라는 것은 논리적인 무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없는 것은 자신이 없는 대로 남겨놔야 됩니다. 추론할 때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그런 부분은 논지에 조금 불충분해도 남겨놔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렇지 않고 논지를 깔끔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서 무리를 하면 언젠가 자기에게 덫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논문을 써 놓고 나서 잘 봐야 합니다. 확인이 안 되는 것은, “그럴 가능성은 있으나 분명히 확인은 안 된다” 이렇게 남겨놔야 됩니다. 
 

10. 선생님께서 많은 저서를 집필하시는 데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학문에 대한 밀도 있는 집중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푸는 방법은 운동하는 것입니다. 운동하면서 풀고 가끔 술 먹는 정도입니다. 특별한 잡기는 없습니다. 그리고 생활패턴이 일정해야 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저는 밤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새벽형 인간입니다. 저녁 먹고 난 다음에는 맥을 못 춥니다. 그래서 대충 9시 뉴스 할 때면 하루가 끝납니다. 그 대신 새벽에는 일찍 일어납니다. 4시쯤 되면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시작하니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자기가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대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에 맞게 일정하게 생활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게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자기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해서 자기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건지는 게 좋습니다. 
  그 다음은 집중적으로 몰두하는 것입니다. 저서라는 게 변변치 못한 글이지만 집중을 안 하면 쉽게 끝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몽골 세계제국 강의가 학부 전공 탐색으로 있습니다. 보통 지금까지 강의했기 때문에 강의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쓰려고 하는 책과 연결 지어 강의안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싫어도 할 수 없이 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를 하고 뭔가 써야 됩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집중하는 방법들을 자기가 찾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강의를 활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방학이라든가 연구년을 이용해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11. 인문학의 열풍이 있지만 인문대 학생들이 취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인문학의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시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하다고 보시는지요?

- 저는 그렇게까지 그런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도 안 되고 지혜도 없지만 제일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문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의 전망이 다 어둡습니다. 의사나 법조계 전망이 안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쪽으로 사람이 몰리는 거는 그래도 확실한 거 하나를 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해는 됩니다. 그러니까 자연과학, 이과보다는 문과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문과 중에서 인문대학은 더 기초과학이기에 앞으로 취직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모르는 일입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릅니다. 우리 때 인기 있던 학과가 지금도 인기 있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좀 전망이 불투명하고 어두워 보이는 분야가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에 계속 어려우리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 앞으로도 계속 어려우리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당장 효용성이 나타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잘 훈련을 시킨다면, 인문학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분야에 가든지 그 사람이 인문대학에 있으면서 훈련받고 배웠던 지적인 틀, 그 체계가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치를 인정하는 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오리라고도 보장을 못합니다. 그렇지만 오지 않는다고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라는 게 어문학과, 사학과, 철학은 굉장히 오래된 학문으로 그 효용성이 단기적이고 직접적이기 않지만 그 학문의 필요성을 오랜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위 잘 나가는 대학이나 학과에 비교하여 기죽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문리대로 들어왔습니다. 문리대가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로 나눠졌지만 옛날 문리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도 법대, 의대는 취직이 보장되고 좋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도 문리대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문리대생이라는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문리대 출신들이 그 후에 사회 각 방면에 취직해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인문대도 그러리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인문대학에서 학생들을 잘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여기서 교육을 충실히 받아서 인문학의 본연에 맞는 것을 잘 갖춰서 나갔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인문대 그냥 적만 걸어놓고 다른 것을 하다가 나중에 인문대 나와서 아무 소용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12. 앞으로의 계획을 여쭙고 싶습니다.

- 잘 있다가 은퇴하는 것입니다. 은퇴하기 전에 몇 가지 써야 할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쓸 것입니다. 『캠브리지 몽골제국사』는 논문은 거의 다 모였기 때문에 글은 금년까지 쓰고 내년에는 2권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은퇴하기 전에는 나오는 것이니 늦어도 2019년에는 나오리라고 봅니다. 그 후에 긴 챕터를 하나 써야 합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제가 강의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몽골 제국체제 연구』라고 하는 책을 은퇴하기 전에 쓰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첨부파일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