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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앞으로의 인문학과 고전의 과제" - 이강재 교수 인터뷰

2017-11-03l 조회수 4180

인터뷰 진행 : 이정연(비교문학 협동과정 석사 수료), 황수경(동양사학과 박사 재학)
 

이강재 선생님, 늦었지만 선생님께서 2016년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께서 ‘SNU in Beijing’ 등 학생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도하시여 현재까지 많은 학생들이 본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중국 현지를 생생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 먼저 교육상 수상을 축하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서울대, 특히 인문대학의 많은 교수님들께서는 대부분 교육에 열정적이고 큰 힘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상을 받았다는 것을 그 어떤 상보다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동안 ‘SNU in Beijing’을 비롯하여 제가 관여한 여러 교육 부분에서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1. ‘SNU in World Program’은 2012년에 Beijing을 시작으로 현재 8개 지역으로 확대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SNU in Beijing’이 있었기에 오늘날 ‘SNU in World Program’이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SNU in Beijing’을 기획하신 취지와 이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생들을 위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SNU in World Program’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세계화를 위해 실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들에게 세계가 나아가야할 올바른 길을 체득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우리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SNU in Beijing’ 역시 최근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데, 앞으로 어느 분야에서 활동을 하더라도 이미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상수가 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까지도 중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것 외에 깊은 내면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 혹은 통일을 위해서도 중국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SNU in Beijing’을 비롯한 여러 ‘SNU in World Program’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국내외에서 이루어지는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해외 현지에서 생활해볼 수 있는 해외 채류의 경험을 준다는 점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경험이 외국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운 여름 장기간의 프로그램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서는 체력적으로도 힘들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야 하며, 또 함께 참여한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리더십을 함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을 잘 생각해 두어야할 것입니다.
 
 

2. 새로이 교과목을 만드시고 개편하실 때에 중점을 두신 것이 무엇인지요?

-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우리 학생들 역시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교과목을 만들고 교과과정을 개편할 때에는 언제나 그것이 변화하는 세계를 담아낼 수 있을지, 또 새로운 교과목을 통해 우리 학생들에게 무엇을 심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습니다. 새로운 시도의 구체적인 모습은 항상 달라지지만, 그 방향은 학생들에게 변화 많은 세계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미래 사회의 리더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자는 것입니다.
 

 

3. 선생님께서 예전에 협동과정 서양고전학에서 발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양고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유가경전에 대한 연구가 중어중문학과, 한문학과, (동양)철학과, (동양)사학과 등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을 지적하시고 동양고전 협동과정 신설의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구체적인 말씀 부탁드립니다.

- 동양고전, 특히 유가경전은 문사철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며 또 동아시아 공동의 문헌유산으로서 한국, 중국, 일본 전공자 모두에게 관여된 분야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분과 학문 체계에서 종합적으로 논의되기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협동과정 등의 필요성을 생각해본 것입니다. 다만 대학원 협동과정은 아직까지 교수진의 완비라든지 졸업 후의 진로 등에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성공적인 협동과정으로서 동양고전을 다룰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신설의 어려움 등으로 그것을 계속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학과로서의 학문이 아니라 학회를 통해 문사철 및 한중일 전공자가 함께 하는 길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경학학회라는 학회를 몇 년 전 창립하는 데에 관여하였고 그곳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중인데, 이 학회에서 제가 말한 협동의 과정을 통해 서로 발전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이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협동과정 등의 공식 학제 속에 포함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4. 인문학의 위기가 종종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인문학이 다가오는 시대에 중요하게 쓰일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인문학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냉정하게 따져서 인문학이 위기가 아닌 적이 언제였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익을 탐구하고 인간성을 그 이익의 뒤에 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정신을 우선시하는 인문학은 언제나 위기 속에 있었으며 그 위기 속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곤 했습니다. 2006년 인문학 위기론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 저는 위기론을 언급하는 순간 위기는 더 커지는 것이므로 위기담론은 그 자체가 위험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인문대학 기획실장(지금의 기획부학장)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리더를 위한 인문학 최고위과정(AFP 과정)을 만들었고 직원 인문학 강좌를 하자고 주장하였으며 인문학 후속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인 인문한국(HK) 사업에 적극 관여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인문학자들 스스로 인문학은 숭고하기 때문에 모두 우리를 따라야 한다거나 우리를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세상 속으로 넓은 마음을 갖고 들어가서 세상을 받아들일 때 인문학은 그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인문학이라는 범주 속에만 머무르면 인문학은 더 고립에 빠질 것이며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최근 제4차 혁명 시대를 언급합니다. 누구나 예측하듯이, 미래 시대의 지식은 지금과는 현저하게 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암기로서 가능한 지식은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며,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롭게 사고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또 당연히 기계가 다룰 수 없는 영역이 중요해지는데, 그렇다면 인간만의 영역에 대한 탐구가 더욱 힘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 시대에는 인간의 사유에 근거하여 융합하고 창조해내는 지적 사유가 중요하게 될 것이며 여기에 인문학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측면에서 미래 시대에는 인문학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 인문학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과거의 지식을 어떻게 새로운 세상 속에서 융합하여 미래의 경쟁력을 만들어갈 지를 생각하면서 공부에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대중을 위한 인문학은 또 다른 영역일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대중을 위한 인문학은 문사철 각 분야에서 과거의 학문 영역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대중들이 인문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단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인문학자들이 먼저 열린 마음으로 창의적인 사유를 해나가면서 이를 대중들에게 전파하여 대중들이 스스로 과거의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융합하고 적응하는 사유를 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 선생님께서는 현재 인문학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신데, 인문학연구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 인문대에는 학과뿐만 아니라 연구소도 있습니다. 인문대가 직할하는 연구소가 있고 인문학연구원 산하에도 연구소가 있습니다. 인문학연구원 산하에는 17개 연구소가 있습니다. 인문학연구원은 이 연구소들을 총괄해서 연구비 등의 관리를 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진행된 HK 사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취지는 학과에서는 할 수 없는, 혹은 학과를 넘어서는 융합적인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들이 학과라는 이름 대신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학술 활동을 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학과에 부속되어 있는 연구소도 있고 여러 학과가 함께하는 연구소도 있습니다. 굉장히 층차가 다양합니다.
 
 


6. 인문학 전공자로서 나중에 연구소에서 일하려면 어떤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할까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합니까?

- 사실 HK사업을 제외하고는 연구소에 전임인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연구소 부문이 약합니다. HK는 2007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인문학 위기 담론이 나올 때, 이것을 헤쳐 가는 방법으로 AFP 과정, 직원 인문학 과정, 인문학 열린 광장들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후속 세대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연구소에서 근무할 수 있으면 좋기 때문에 HK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HK가 만들어질 때에 기본적으로는 당시의 한국연구재단에서 주도하였지만, 당시 서울대 인문대학 학장이신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님과 고려대 문과대학 학장님 등이 논의에 참여하였고 저 또한 연구소를 통해서 학문 후속세대들이 연구소에서만 연구하고 평생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자고 생각하였습니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이공계통은 국책연구기관이 많습니다. 그런데 인문학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의 연구소를 만들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학교 내에서 만들어보자고 주장하며 HK 사업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가 2006년입니다. 그리고 2007년에 HK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하고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10년 전에 인문학 과정을 만들려고 노력할 때와 지금은 천지차이입니다. 지금은 인문학 과정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 자리매김을 새로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적 호기심 영역으로 인문학을 했습니다. 한동안은 인문학을 통해서 시대를 읽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했지만 사실 대학에서 또는 대중강의로 이루어졌던 인문학이 진정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우리 방향이 거기에 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여가로서의 인문학에 많이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요즘 AI 시대라고 하면서 인공지능이니 스스로 학습하는 deep learning 등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인문학이 여전히 단순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라면 존립이유가 없어질 것입니다. 인문학이 가야할 길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지식을 습득하고 익히고 전수하는 것은 네이버 지식이 더 낫고 위키피디아를 찾으면 대부분 나옵니다. 그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어떻게 융합을 해서 새롭게 깊은 사유를 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유를 던져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여기에 인문학의 길이 있다고 봅니다. 그걸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이제는 학생들과 대중들에게 강의할 때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지식이라는 그림을 던져놓고 여기서 무엇을 뽑아낼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인문학의 갈 길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4차 산업 이후에 없어질 직업과 살아남을 직업을 이야기할 때, 살아남을 직업 순위 20위 정도에 인문학 교수가 있었습니다. 이 순위는 상당히 높은 것입니다. 의사도 없어지고 변호사도 없어진다고 하지만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계의 발전이 인간의 존립 이유를 더 분명히 밝혀야 되는 시대가 올 것이고 여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 학과나 분과 학문 체계로 흩어져서 가는 것이 아니라 융합을 해서 문사철이 계속 끊임없이 교류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합니다. 융합을 해서 새롭게 사고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힘을 길러내야 합니다. 그쪽으로 가야되는 것이 앞으로의 인문학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길을 찾아낸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7. 학생들이 새로운 것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훈련 방법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 그런 부분을 제가 요즘 학생들에게 약간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항 시대를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있는 사실을 비틀어보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학생들은 너무 고분고분한 세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시과정부터도 그렇고 살아온 과정이 너무 고분고분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대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선생님한테 대든다는 것은 사실은 기존의 학문에 대해서 대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판정신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일찍부터 우리 교육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끊임없이 말 잘 듣는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총장님께서도 ‘선한 인재’ 하지만 선한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1968년에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보듯이, 교육은 산업화시대에 우리나라를 산업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우리를 하나의 노동력으로서 일꾼으로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은 그 시대에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는 새롭게 도전하고 창의를 해 나가야 됩니다. 국민교육헌장을 넘어서서 비판정신이 있는 인재를 길러야 되고 이들이 끊임없이 도전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의식을 심어줘야 그 다음에 책을 봐도 자기가 읽어낼 수 있습니다. 기본 마인드 자체가 도전과 비판정신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부든 학교든 선생님이든 나보다 더 큰 권위에 대해서 비판하고 도전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중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 부분이 우리가 지금 많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8. 요즘 학생들은 성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간고사 지난 후에도 학점이 잘 안 나올 것 같으면 ‘드롭’(수강신청과목 포기)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 제가 대학 다닐 때에는 ‘드롭’ 제도가 없었습니다. 변경까지만 가능했습니다. 그러니까 어찌되었든 버텨냈습니다. 이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학생 편의를 봐주는 것이 교육적인가, ‘드롭’을 그렇게 늦게까지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학생들이 끊임없이 피해가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됩니다. 인생을 두고 본다면 도전해야 합니다. 끝까지 잘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학점을 생각해서 ‘드롭’하고 가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총학생회 선거에서 몇 년 전에 제기되었던 학점취소제, 즉 학점 다 받은 다음에 자기가 취소할 수 있는 이런 제도까지도 수년 전에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정말 비교육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전공까지 상대평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A, B가 30, 40 합해서 70%까지 하면 되는 교양 과목의 상대평가가 아니라, 옛날처럼 A 20%, B 30%, C 이하 50%로 해버리면 그냥 2.5만 맞으면 보통이고 3.0이면 학점 잘 나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밖에서 서울대를 볼 때 서울대를 학점으로 볼까요? 막상 대기업 취업담당자하고 이야기해보면 학점으로 안 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그게 불안합니다. 저 사람들이 거짓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인들 여기 와서 학점만 잘 따가지고 가는 애들이 기업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사람을 뽑는다면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본 사람을 뽑을 것입니다. 그런 애들이 훨씬 더 세상을 멋있게 잘 삽니다. 놀 줄 아는 사람이 공부도 잘 합니다. 지금 서울대는 그게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로스쿨에 가기 위해서 학점을 높게 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로스쿨을 없애면 좋겠지만 안 없앨 거라면 로스쿨에서 학생 뽑는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성적을 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적을 중시하니까 학생들이 다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9. 이러한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선생님이 노력하지 않으면 힘듭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힘든 일입니다. 선생님들이 다 바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들도 한가하게 해줘야 합니다. 아까 학생들이 맨날 공부해서 문제라고 했는데 교수들도 똑같습니다. 교수도 놀아야 하는데 공부만 해서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나친 평가 중심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점이, 정성평가와 정량평가가 있다면, 정성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이 안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정량평가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양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기다려주지를 못합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 것처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농사지을 때에도 비료주고 속성 재배하는 데 익숙해져서 교육도 똑같이 그런 식입니다. 기다려줘야 합니다.
 

 

10. 현대인들이 '논어'를 비롯한 동양 고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 젊은 학생들에게 공자, 맹자를 언급하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전은 고전 자체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끊임없이 현재적 의미로 읽어나갈 때 그 의미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공자의 언행을 담고 있는 논어의 경우, 당시의 지식인, 혹은 당시 리더를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한 사회의 올바른 리더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현대의 우리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다면 논어에는 아직도 중요한 가르침을 갖고 있습니다. 가령 제가 학부 전공에서 맹자를 가르치면서 중점을 두는 것은 그 교과목이 한문강독이기 때문에 한문 해독 능력 배양을 일차적 목표로 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올바른 지식인, 올바른 리더의 길에 대한 강조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넓게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를 학생들과 이야기합니다. 맹자가 가졌던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려고 노력했던 모습은 요즘 학생들에게 부족한 자기희생과 비판정신을 심어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11. 요즘의 한문교육을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시는지요. 한문을 어떻게 접근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까요?

- 한문교육도 답이 없는 것 중에 하나인데 이것도 옛날에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고 해서 무조건 많이 읽으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한문을 학습하기에 좋은 공구서들이 매우 많이 발달해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처럼 무조건 읽히는 것에서는 벗어나 체계적으로 읽혀야 합니다. 그러니까 구조적인 훈련도 시켜야 되고 공구서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즉 고기 잡는 방법, 그물질 하는 법을 배우게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한문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합니다. 교양으로서의 한문과 전공영역으로서의 한문입니다. 교양으로서의 한문은 쉬운 한문을 가르치면서 그것을 통해 고전에 대한 사유, 그리고 동아시아 공동의 문헌이기 때문에 동아시아적인 사유를 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전공자를 위한 한문은 좀 더 타이트하게 구조에 대한 훈련과 그것을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어떻게 찾아 나아갈 것인가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공을 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점은 읽어야할 원전이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제 학생들과, 요즘은 잠시 안 하고 있지만, 한창 했던 것 중 하나가 ‘10 to 10(ten to ten)’입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스터디를 했습니다. 격주로 토, 일 이틀씩. 그러니까 한 달에 두 번을 20시간씩 합니다. 그래서 쭉 같이 읽어나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읽어야 하는 텍스트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서삼경을 읽어야 되고 일부 역사서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동양의 고전 관련 분야에서는 어떤 전공을 하더라도 사서삼경에 바탕이 되어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령 서경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학생들에게 서경 알아서 읽으라고 하면 언제 읽겠습니까. 그래서 학생들에게 모두 모여라 해서 10명이 모여서 하루에 10시간씩 20시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딱 100시간 걸렸습니다. 두 달 반 만에 서경을 송나라 때 채침의 전까지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학생이 논문 쓰려고 하는 텍스트가 있으면 그 텍스트로 스터디를 합니다. 그렇게 읽어나갔습니다. 서울대에 있어서 제일 좋은 점은 학생들하고 같이 그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에 중국의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하다고 보시는지요.

-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여 미중간은 물론 세계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금융업 중심의 미국이 제조업을 강화하겠다고 하고 있고 과거 제조업 중심이었던 중국은 금융 등 3차 산업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 굴곡을 거치기는 하겠지만, 중국은 앞으로 큰 흐름 속에서 보면 더 성장할 것이 분명하며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측면과 통일, 외교, 안보 등에서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학생들이 중국에 많이 나가고 중국 학생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의 많은 대학들이 중국 유학생을 받아서 미충원된 학생 대신 등록금 수입을 올려주는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또 중국, 홍콩 등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한국을 공부하려는 학생이 단순히 한류드라마 등의 영향에 의해 이루어지는 한국에 대한 이해 역시 우려스러운 면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향후 한중간에는 더 많은 인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하며 더 깊은 상호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서로 함께 논의하는 파트너로서 중국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직도 국내의 중국에 대한 이해는 너무 피상적이고 부정적인 과거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미래의 리더로서 성장할 서울대 학생들은 더 많은 학생들이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에 대한 모색을 할 수 있어야만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13. 저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 다니면서 생활비, 등록금 충당하려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 정말 속상한 일입니다. 직업으로서의 대학원생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많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대학원에 다니면서 자기 혼자만 책임져야 한다면 어지간하면 버텨낼 수 있는 제도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즉 혼자 사는 것만 치면 박사까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 이상을 책임져야 한다면, 그 이상의 알파가 필요하고 그래서 더욱 힘듭니다.
'맹자'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 즉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장차 큰 임무를 맡기고자 할 때에는 먼저 그의 온몸을 피곤하게 하고 마음을 괴롭히고 하고자 하는 것을 자꾸 못하게 합니다. 어그러지게 만들고 그 속에서 자기 심지를 더 굳게 하고 나중에 결국 큰일을 해나갈 수 있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욕심 버리고 자기의 뜻을 굳게 가지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경제적 여유가 없이 대학원을 다닌 사람으로서 학생들을 보면 그 점이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4. 대학원 생활과 관련하여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그것이 웹에 연재될 때 저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상황이 다 다릅니다. 서울대는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서울대 대학원은 장학금도 많고 상대적으로 보면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저 다닐 때는 장학금도 별로 없었습니다. 조교 하면서 겨우 그것으로 등록금 내고 이러고 다니고 했는데 시간 지나고 보면 그게 또 나를 키우는 중요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대학원 다닐 때나 교수로서 살아가는 지금이나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편이 못 됩니다. 그래서 대학원을 들어가면서 가졌던 계산법이 있습니다. 분수에서 분모와 분자가 있는데 분자를 크게 키우면 답이 커집니다. 그런데 분모를 확 줄여도 답이 커집니다. 수입을 늘려서 사는 방법도 있지만 안 쓰고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모를 최대한 줄이고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기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학생들도 그렇지만 교수들도 그렇습니다. 교육도 해야지, 연구도 해야지. 지금 저처럼 보직하고 행정도 해야 하는데 다 하고 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해내야 합니다. 그러면 아까 첫 번째 분모를 줄이자 했는데, 둘째는 부지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보다 잠도 조금 자고, 일찍 일어나고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교수를 하면서 제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입니다. 그 두 가지를 지키자. 그렇지 않으면 사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내가 내 것을 챙겨야 되거든요. 그러면 거기에서부터 나태하거나 부정한 마음이 싹틀 수 있습니다. 맹자가 한 이야기에 '養心莫善於寡慾'이 있습니다. 마음을 기르고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 욕심을 줄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게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부지런해야 되고 욕심을 줄여야 되고 그게 최고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특히 대학원 이상 다니려면 욕심을 줄여야 되고 부지런해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본다면 이것이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5.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제가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처럼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을 위해 교육하고 공부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이전에 했던 것처럼 필요하면 새로운 교과목도 개발하고 새로운 학생 참여 프로그램도 제안하고 직접 운영하면서 지낼 것 같습니다. 또 당장은 인문학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인데, 현재 10년째인 HK사업을 잘 마무리하고 최대한 노력해서 HK후속 사업에 우리 연구원이 참여하도록 애써야 한다는 생각 정도를 할 뿐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1999년 서울대에 부임한 이후 교육과 행정적인 일 등에 밀려서 놓치고 있는 연구와 저술 부분에 앞으로 더 힘을 쏟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박사논문의 연장에서 100년 아니 500년 이상 갈 논어에 대한 큰 저술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랫동안 그것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 게으름과 논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한 점도 작용했습니다. 3년 전부터 이 작업을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이 들었고 이에 앞으로 이 연구와 저술에 시간을 쓰자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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