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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학, 그리고 세계 미학자 대회를 아시나요?" - 오종환 교수 인터뷰

2017-11-03l 조회수 8881



인터뷰 진행 : 김재헌(철학과 석사 수료) , 이진실(미학과 박사 수료)


1. 오랫동안 미학을 공부해오셨는데, 처음에 어떻게 미학을 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으로 미학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그 때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셨는지 그리고 이처럼 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동기는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굉장히 사적인 얘기를 해야 되네요. 요즘 학생들은 입시 면접을 하면 미학이 뭔지 알더군요. 『미학 오딧세이』 같은 책을 보고 미학을 하고 싶어서 왔다고 이야기를 해요. 우리 때는 사실 미학에 관한 일반적인 책을 고등학생이 읽어볼 그런 기회는 전혀 없었어요. 제 경우는 집안에서는 상대 가서 취직해야 된다고 그랬는데 상대 갈 실력은 안 되고, 또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 중 특히 수학 선생님이랑 물리 선생님께서 철학에 관한 그런 이야기를 몇 번 해주셨어요. 그것을 듣고 ‘아! 좋다. 철학과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철학이 무엇인지 사실은 잘 몰랐겠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학문적인 깊이가 있고 진리와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하니까 괜찮아 보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때는 철학과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어요.
근데 아주 웃기는 것이, 그 당시 나는 산악반에 속해 있어서 매주 산에 다녔는데, 어느 날 아주 친한 애가 어디 갈 생각이냐고 물어봐서 철학과에 갈 것이라고 하니까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서울대학교에는 철학과만이 아니라 미학과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미학이 뭐하는 건데?’하고 물어보니까 ‘아. 거기도 철학을 하는 곳이기는 한데, 철학 중에서도 특히 예술 쪽을 하는 것이다.’라고 알려줬어요. 산에 가면 예술에 관련된 이야기, 음악이 어떠니, 미술이 어떠니, 문학이 어떠니, 그런 이야기를 그리고 클래식 이야기를 그 친구랑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친구 말을 듣고 보니까 그 때 어린 마음에 미학이 훨씬 더 멋있을 것 같았던 것이지요. 철학을 하면서도 예술을 한다니까 뭔가 이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사실 미학이 뭔지도 잘 몰랐으면서도 미학과를 지원을 해서 아주 우연하게 들어오게 됐습니다. 근데 미학과에 들어와서 실제 미학을 해보니까 예술에 관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생각보다 굉장히 딱딱했어요. 학문이라는 것이 어렸을 때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죠.
미학과를 다닌 것에 대해 후회한 적도 있어요. 왜 후회를 했냐면, 그 때 철학과를 나온 내 동기 친구들은 석사를 마친 다음에 다 지방대학교 교수로 갔어요. 그때만 해도 서울대학교에서 석사만 마치고는 바로 지방대학교에 교수로 갈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나는 미학과를 나왔다 보니 그런 곳을 갈 수가 없었죠.(웃음) 상당히 후회스러웠고, 그 이후에 직장 생활을 조금 하다가 돈을 모아서 미국에 가서 유학을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게 된 것입니다.
 

2. 미학이라는 학문을 학교에 와서 공부해보시니까 기대했던 것보다 딱딱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 비록 기대했던 것보다는 딱딱하지만 그래도 미학이라는 학문에 흥미가 많이 있으셨기 때문에 공부를 지속하신 것이겠지요?

 
- 아니 뭐.. 일단 미학과에 들어왔으니까 미학은 해야 했어요. 문제는 이것이 엄청나게 어려웠다는 것이지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독일 미학, 쉽게 얘기해서 칸트, 헤겔 쪽의 미학을 전공하신 분들만 계셨고, 영미 미학 쪽은 오병남 선생님이라고 계셔서, 그 분이 혼자서 독학을 하셔서 저희에게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독일 칸트, 헤겔 철학은, 어쩌면 학문적인 취향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배워도 이해가 되지를 않았어요. 반면에 오병남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내용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돼서 영미 미학 쪽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미국에 가서 공부를 했지요.
그것이 언제냐면, 제가 72년도에 입학을 해서 76년도에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는 76년도서부터 시작을 해서 78년도에 졸업을 했어야 되는데 또 겁 없이 장가를 가는 바람에 먹고 사느라고 1년을 더 다녀서 79년도에 졸업을 했어요. 79년도에 졸업을 했을 때 철학과 친구들은 다 지방대학에 교수로 갔는데 나는 미학과라 가지 못했고요. 제가 인생에서 크게 속은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내 친구한테 속아서 철학과를 안 가고 미학과를 간 것이에요.(웃음) 석사를 마치고 철학과 친구들이, 물론 그때도 안 풀린 친구가 몇 있기는 있었지만, 대부분 지방대학에 가는 거 보고 ‘그 때 한 번 아 이거 속았구나.’, ‘그 때 걔 말을 들으면 안 됐는데.’ 그런 느낌이 있었죠.(웃음) 또 하나는, 오병남 선생님께서 계속 설득하시면서, ‘미국 가서 1년만 고생하면 그 다음에는 학교에서 돈을 지원해주니까 돈 없이도 공부할 수 있어.’라고 하셨어요. 나는 대학교 때부터 집안이 쫄딱 망해서 굉장히 힘들게 학교를 다녔고, 미국 갈 돈도 없어서 직장 생활 3년을 하고 미국을 갔는데, 미국 가면 1년 뒤에 돈을 주느냐? 안 주더라고요.(웃음) 거기 가서 또 엄청 고생한 것이 두 번째 크게 속은 거지요. 그래도 하여튼 그 덕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기는 했습니다.
 

3. 우리나라에 학부 과정으로 미학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학은 서울대학교가 유일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으로 미학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학은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외 몇몇 소수 학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이와 관련해서 외국의 사정이 어떠한지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을 할 때에 크게 보아 철학에 소속되어 있는 여러 분과 학문 중의 하나로서 미학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철학과 구분되는 미학만의 특징은 어떤 것이며, 서울대학교의 경우처럼 철학과 미학이 독립적인 전공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미학을 공부하는 데에 어떤 의미와 장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장점과 강점 얘기는 좀 이따 하지요. 미학과는 우리나라에서는 홍대와 영남대에 대학원이 있고 다른 대학에도 한두 군데 있다가 없어진 그런 상황입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는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대의 체제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경성제대는 동경제대의 체제를 그대로 따온 것이고요. 그 동경제대의 경우도 1860, 70년대에 처음 설립될 때 독일 대학 체제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독일 대학에는 아마도 미학과라는 것이 따로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대학교도 미학과가 독립된 과로 있게 된 겁니다. 단 제가 다닐 때는 미학과에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뿐이 아니라 미술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어요. 미학 및 미술사학. 그래서 사실 저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들은 대개 미학과를 다녔다고 하면서도 미술사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고 미학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살펴보면 대륙 계통에서는 미학이 따로 독립된 그런 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지금도 보면 특히 그런 전통이 더 강한 곳이 공산주의 계통의 나라들인데, 소련이나 폴란드 같은 나라가 지금도 그러하고 혹은 불란서 같은 나라들도 보면 어떤 대학은 미학과라는 게 따로 있더라고요. 미학과 또는 예술학과라고 해서요. 영미 전통, 경험론 전통에서는 미학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철학 안에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보면 영국이나 미국에 가면 당연히 미학이라는 것은 그냥 철학과 안에 있지요. 철학과 안에서 어떤 교수는 미학을 한다고 되어 있고요. 지금은 대륙 쪽에서도 미학과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아요.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우에는 미학이라는 것이 예술에 관련된 것이고, 예술은 말하자면 선전 선동, 그러니까 대중들을 의식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에 하나니까 그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독립된 과로 편성해놓은 것이고요. 우리는 지금 그게 어정쩡하게 되어 있는 거지요. 영미 쪽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따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고, 대륙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직 핀란드나 그런 나라들에는 미학이라는 것이 따로 있고요. 제가 미국에서 배울 때는 미학은 철학의 하나로서, 철학적인 방법론을 아름다움이나 예술적인 현상에 적용할 때 그것을 미학이라고 부르고 철학의 한 범주로 생각합니다. 그것을 독립된 체계로 잡는 전통도 틀림없이 유럽에 있기는 있지만요. 근데 이제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4. 네. 철학과 구분되는 미학의 특징이 무엇인지 하는 질문하고도 관련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미학이라는 것은 예술 현상, 미적 현상에 대해서 철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주제 면에서는 미학이 갖는 독립적인 특징이 있는 반면 방법론에서는 여전히 철학의 것을 사용하는 것이네요. 그런데 독립적인 분과로서 둘 만한 이유가 있다면 혹시 다른 것을 기대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해서 질문을 드려봅니다.

 
- 글쎄요. 다른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 지금 미학의 전통 안에서도 예술학이라는 분야가 있어요. 독일에서 처음 생겼는데, 그것을 가장 처음에 주창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서 어떤 과학적인 접근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 과학적인 방법론이 적용될 테니까 철학적인 방법론이 아닌 것들도 쓰이게 되겠지요. 만일 예술학이라는 것이 미학의 한 분야라고 하면 철학과는 조금 달라질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의 어떤 대학은 예술학을 별개의 과로 편성해놓은 곳이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예술의 현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어떤 학문적인 성과가 있는지 잘은 모르겠어요. 나는 미국에서 철학과를 다녀서 그 쪽 분야를 잘 모르기도 하고요. 예술적인 현상에 대해서 철학적인 접근이 밝혀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분야를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일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수업할 때 솔직히 미학이 철학의 한 분야라고 하고 시작하는 편이에요.
지금처럼 미학이 독립적인 분과로 있을 때 미학과생들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나 강점에 관해서는 글쎄요..굳이 이야기한다면, 철학과에서 예술적인 현상에 대한 논의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요. 서울대학교의 경우에는 미학과가 따로 있으니까 그쪽에서 그러한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요. 예술적인 현상에 대해서 보다 폭넓게 심도 있게 공부를 할 수 있다. 그 정도를 이야기 할 수 있겠죠.
 

5. 작년에 ICA 그러니까 세계 미학자 대회를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오종환 교수님께서 그 조직 위원장을 맡아서 전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 미학자 대회란 어떤 행사인지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일단 국제미학회라는 것이 있어요. 철학에서도 2008년에 서울대학교에서 세계 철학자 대회했을 때, 그 철학자 대회를 주관했던 국제철학연맹이 있듯이, 국제미학회라는 것이 있어서 전 세계에서 미학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학문적인 논의를 하고 친목을 도모해요. 3년에 한 번씩 모여서 모든 참가자들이 논문을 발표하고 학문적인 친목을 도모하는 그런 자리입니다. 작년 여름 우리나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것이 제20회 세계 미학자 대회였어요. 정확하게는 1913년부터 시작을 해서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때문에 잠시 쉬었다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어요. 처음에는 4년마다 했다가 1990년대서부터 3년마다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제 우리나라에서 20차 대회를 하게 된 것인데요. 명목상으로는 전 세계의 미학자가 다 모여서 하는 것이지만, 이 대회가 처음에 유럽에서 생겼다보니 대륙 철학에 기반을 둔 미학자들, 그러니까 특히 독일 미학 전통에 근간을 둔, 칸트, 헤겔, 현상학 등을 전공하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여서 논의를 했었고, 지금은 그와 함께 영미 쪽 전통에 있는 사람들도 같이 모여서 논의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철학에서도 보면, 영미 분석 철학하는 사람이 대륙 철학하는 사람을 철학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지도 않고, 대륙철학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대륙 철학 하는 사람들은 분석 철학하는 사람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한다고 하지요.(웃음) 그런 경향이 미학계에도 철학 쪽이랑 똑같이 있어서, 영미 쪽은 참여를 해도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은 별로 오지 않아요. 저번에 2008년에 서울대학교에서 세계 철학자 대회를 할 때도 주최 측인 한국철학회에서 특히 영미 쪽에서 유명한 학자들을 많이 불러서 발표하게 했었는데, 이번 여기 미학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국제 미학회 임원이라는 사람들이 거의 다 유럽 전통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물론 불렀지만, 영미 계통에서 중요한 사람들도 우리가 따로 많이 불렀습니다.
우리가 그 대회를 맡아 열게 된 이유는, 제가 전에 미학자 대회를 네, 다섯 번인가 참여해서 논문을 발표하고 다른 사람 논문 발표하는 것도 듣고 했었어요. 물론 훌륭한 학자들도 있지만, 세계의 온갖 학자들이 다 와서 떠드는 자리인 만큼 학문적인 질이 그렇게 대단히 높은 대회는 아니에요. 그야말로 온갖 사람들이 다 와서 떠드는 자리니까요. 그것까지는 좋은데 제가 참지 못했던 게 무엇이냐면, 이 사람들이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굉장히 우습게 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학문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이지요. 외국 사람들은, 특히 내 나이 또래나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이라고 하면 뉴스에서 배운 게 한국 전쟁밖에 없지요. 피난민들하고 고아들의 이미지. 그래서 이 사람들은 우리가 형편없는 줄로 아는데 제가 보기에는 걔네들도 별 볼 일 없거든요?(웃음) 그래서 ‘안 되겠다. 너희들이 와서 한 번 봐라.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한 번 봐라.’ 그런 마음에서 대회를 열게 됐습니다. 이번에도 외국 학자들이 말하기를 ‘한국 사람들 발표가 다른 나라 발표에 비해서 너무 훌륭했다.’고 그래서, 나는 이 대회를 이렇게 한국에서 한 번 개최한 것이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 세계 미학자 대회를 유치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특별히 들려줄 만한 이야기 거리가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 일단 이번 2016년 20회 세계 미학자 대회에는 정확하게 37개국에서 온 481명이 참여 등록을 했고, 등록 외로 초청된 학자가 8분이 계셨어요. 참여 등록한 481명 중에서 해외에서 오신 분들은 총 365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발표된 논문은 총 380편이었습니다. 유럽에서 했을 때랑 비교하면 숫자는 대충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서양이 아니라 한국에서 하니까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적어서 300명이 좀 안 되고, 그 대신 일본이나 중국에서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이 오는 그런 차이는 있었습니다.
이 행사를 한국에서 유치하기로 결정된 것은 6년 전이었어요. 국제 미학회에서 각국 대표들이 모인 국제 미학회 임원 회의라는 것이 있어요. 그곳에 6년 전에 신청을 하고 복수 지원이 있는 경우 각 나라가 어떻게 대회를 잘 유치할지 발표를 해요. 발표를 하면 그 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결정합니다. 6년 전 2010년에 개최된 북경 대회 때에 우리랑 호주가 신청을 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경쟁에서 이겨서 대회를 개최하게 됐지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나라 미학이 대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까도 말했지만 유럽은 자세히는 몰라도 영미 또는 영미 쪽의 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학 하면 철학과에 선생이 한 명, 두 명이 있는 것이지 우리처럼 과가 따로 있지를 않아요. 우리는 따로 수십 명이 미학을 연구하고 있잖아요. 물론 으뜸은 중국이기는 하지요. 중국은 미학회 하면 수천 명이 모여서 한다고 하니까 우리가 그것을 당할 수가 없지만, 그런 숫자의 측면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학문적인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 이처럼 모여서 연구하는 곳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전혀 모자를 것이 없어요.
제가 이전의 세계 미학자 대회에 가본 경우로 터키, 중국, 폴란드가 있었고, 세계 미학자 대회 말고 그보다는 작은 대회가 있었는데 그 작은 대회가 이태리에서 있었고 세르비아에서 있었고 해서 총 대여섯 나라에 가봤어요. 그런데 대회 진행상의 껄끄러움만이 아니라, 발표 내용의 수준 등이 제가 보기에는 별로 신통치가 않았어요. 대회 진행상의 껄끄러움이라는 것은,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미학과가 따로 있지 않은 나라에서 미학자 대회를 하려고 하면 동원할 학생들도 없고, 선생들이 있어도 각각 다른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몇 명 모여서 준비를 하니까 조직력도 떨어지고 그래요. 학문적인 발표의 측면에서도, 개개의 발표 내용이야 온갖 나라에서 온갖 사람들이 와서 발표를 하니까 그 수준의 좋고 나쁨을 주최 측이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더 우월한 측면이 있어요. 대회를 열게 돼서 300개의 논문이 들어온다고 하면 같은 주제, 비슷한 분야의 논문끼리 모아서 세션이라고 나눕니다. 두 시간 동안 네 개의 논문을 발표하도록 세션을 구성해 놓으면, 참가자들은 각자 필요한 세션으로 쫓아가서 듣는 것인데요. 같은 세션이라도 한 논문은 대륙 쪽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논문은 영미 쪽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말을 하는 식으로 논문들을 묶어놓으면, 영미 쪽 주제가 관심이 있어서 간 사람은 영미 쪽 논문 하나 빼놓고 나머지는 다 쓸모가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에요. 그런데 주최 측이 각 논문의 내용을 잘 모르니까 그냥 제목만을 보고서는 적당히 같은 세션으로 묶어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대륙 쪽 하는 사람들은 어떤 논문을 보면 ‘아. 이 논문은 이러한 이야기로구나.’ 하고 딱 묶어놓고, 영미 쪽 사람들은 또 ‘아. 이 논문은 이러한 이야기로구나.’ 하고 같은 종류끼리 딱딱 묶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외국인들이 이번 서울 세계 미학자 대회에 참여하면서 특히 좋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에요. 세션의 분류가 분명하고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것은 대회 주최 측의 능력이지요. 세션을 제대로 분류해서 참가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골라서 들을 수 있도록 한 것. 그냥 논문들만 모아놓고 마구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내용의 수준까지 고려하여 논문들을 묶어서 세션으로 정리를 하고 어떻게 진행을 하느냐. 이것이 주최 측의 능력인데, 우리가 그런 것을 굉장히 잘했어요. 또 하나는 아까 말한 껄끄러움이 없는 것. 많은 학생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고 또 선생님들도 많이 도와줘서 진행을 깔끔하게 한 것이지요. 이런 부분은 외국인들도 인정을 해줬어요.
대회 중에 국악, 재즈 등의 공연도 하고 미술 투어도 했는데, 반응은 국악 공연 같은 것을 제일 좋아했어요. 재즈 공연도 굉장히 괜찮았어요. 미술도 그렇고. 미술의 경우는 파주 해이리로 미술 투어를 갔었는데요. 이러한 부분에서도 이제 우리가 미술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외국 학자들 중 어떤 학자들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한테 자기네 나라의 훌륭한 작가를 소개해줄 테니까 비행기 경비랑 작품 운송비를 모두 지원해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알아보면 그렇게 훌륭한 작가도 아니고 그냥 이름 없는 사람이에요.(웃음) 그냥 그 사람이 보기에 괜찮은 사람인 정도인데, 사실 우리나라에도 그 정도 수준의 작가들은 많지요. 그러니까 외국 학자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에요. 그냥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파주에 가서 미술 전시회 보면서도 깜짝 놀랐을 것이에요. 다들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나는 아까도 말했지만 외국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학문적인 수준도 그렇고 전반적인 문화수준이나 생활수준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세계적으로 알렸다는 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7. 말씀해주신 것이 다음 질문과도 연결이 되네요. 어떻게 보면 학문의 변경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세계 미학자 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학술 행사를 서울대학교에서 개최한다는 것이 한국 미학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미학의 현실에서 세계 미학자 대회 유치가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 그것은 진짜로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저희가 이 세계 미학자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항상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아마 철학도 똑같은 질문이 적용될 텐데,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하는 철학이냐 아니면 한국만의 철학이냐. 저희도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특히 이 대회를 일본도 했고, 중국도 했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한 것이라서 동양 쪽의 미학에 비중을 두자고 해서 다른 대회보다 그러한 부분들에 훨씬 비중이 있도록 계획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한국만의 미학이 있느냐. 이 문제에 관해서는 참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서 일단은 그냥 한국에서 영위되는 모든 미학을 보여주자고 방향을 잡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서구의 미학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물론 미학과 안에서 보면 사실 우리만의 미학이라는 것은 동양 미학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만, 그 동양 미학이라는 것도 애매한 것이 중국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에요. 일부는 한국에서 하는 미에 관한 논의라지만, 결국 대부분은 중국 고대서부터 쭉 있어왔던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들여와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만의 어떠한 미학이라는 것이 있느냐고 했을 때,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어요. 동양 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한테 또 마냥 맡겨놓을 수도 없고 참 애매한 이야기고 어려운 이야기에요.
 

8. 그렇다면 그냥 ‘한국 미학’이라는 표현 대신에, 그냥 한국에 자리를 잡고 미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의 집단을 포괄적으로 ‘한국 미학계’라고 부를 때 이 경우에 관해서 질문을 드린다면 어떨까요?

 
- 아주 속되게 이야기하면 이번 대회의 가장 긍정적인 영향은, 한국의 많은 신진 연구자나 학생들, 박사 과정이나 석사 과정 학생들이 이번 대회의 여러 발표들을 들으면서 ‘야! 우리가 굉장히 잘하는구나.’, ‘우리나라 학문 수준이 굉장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히요.
우리나라 미학의 경우는 아직 세계적인 수준에서 논의를 이끌어나가는 데까지는 못 미쳐요. 아직 세계에서 어떤 주제가 있어서 누가 뭐라고 떠들면 ‘아! 이게 어떠어떠하다고 떠드는 것이로구나.’ 하고 알아듣기는 하는데, ‘그것 말고 이런 것도 있다!’고 한국 학자 중에 누가 나서서 이야기할 그런 수준은 아직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 대회를 개최하면서, 세계적으로 어떠한 학문적인 조류가 있으며 그 안에서 뭐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우리가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지요. ‘그 정도 보여주는 것이 뭐가 대단하다고 세계 미학자 대회를 열어?’ 그렇게 누군가가 질문한다면, 사실 세계에 그렇지 못한 나라들도 엄청 많거든요. 제가 아직 학생일 때의 우리나라가 그랬어요. 제가 대학원에 있을 때 미국 MIT에서 미학으로 박사를 막 마치고 이대에 1년인가 2년 잠깐 왔다 간 한국계 미국인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그 때 영어로 발표를 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들었어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는? 영어로 했으니까.(웃음)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완벽하게 한국말로 그 내용을 발표했어도, 지금 내가 생각해보면, 그래도 아무도 못 알아들었을 것이에요. 왜냐면 그 논의가 어떠한 수준인지를 이쪽에서는 아무도 이해할 만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이제 우리 미학도 그 수준은 돼요. ‘너는 이것이 틀렸어.’ 이런 소리까지는 못하지만. 이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어떤 배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 정도는 우리가 할 수가 있어서, 이 정도를 세계에 보이는 것도 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외국인들이 우리가 발표하는 것을 보고 ‘저 놈이 한국에서 왔다는 놈이 저런 것을 어떻게 알고 저런 소리를 해?’ 대개 표정이 이랬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다. 세계 수준까지는 못 가지만 그 전까지는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대회를 연 것이에요.
반대로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국에서 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받은 긍정적인 영향이라면..글쎄요.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인 성과라면 우리가 기조 연설자부터 시작해서 우리 나름대로는 그래도 새로운 경향의 의미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려고 노력을 했으니까, 그 사람들이 발표한 논의들이 그 쪽 분야에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어떠한 자극을 주었을 것이고, 또 ‘아! 저런 식으로 논의가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는 점이에요. 그런데 뭐 이 대회뿐만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 공부하면서 학회지를 찾아보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직접 와서 얘기를 하면 그러한 영향을 더 받을 수는 있겠죠. 그리고 많은 외국의 학자들과 학문적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것을 발견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미학계에서 한국미학의 위상을 높이고, 또 개인적 친분을 통해 여러 나라들의 학자들과 학문적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9. 인문학과 관련한 대중 강연이 활성화되고 저서도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실상을 보면 인문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기대가 적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에서는 인문학 관련 전공의 정원이 축소되거나 학과가 통폐합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충격적인 얘기해도 되나요? 일단 한 가지.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이 인문학에 관련된 과에 학생들이 오지 않고, 그래서 과가 축소가 되고 통폐합이 되고 하는 것이 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면, 나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인문학의 위기는 당연하다고 봐요.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인문학이라는 것이 쓸데없이 너무나 비중이 컸다고 나는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지금은 안 그렇지만 20년,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 독문학과가 있었어요. 독어독문학과라는 곳은 독일어를 배우고 또 독문학을 하는 곳이죠. 우리가 독일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고 하면 언어는 당연히 알아야 되겠지만, 독일에 대해서 어떤 현상을 알고 싶은데 독문학만, 꼭 문학만을 해야 하나요? 이것이 왜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 다 있어야 하나요? 우리나라에서 독일 문학을 연구해야 될 사람이 그렇게 많아야 하나요? 불문도 마찬가지고요. 나는 우리나라가 너무나 그 이전에 인문학에 비중을 크게 두었기 때문에 지금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요. 아 물론 독일어를 해서 독일에 가서 장사를 하든지 할 사람은 많아도 돼요. 그런데 독문학을 할 사람이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 다 있을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몇 대학에서 머리 좋은 몇 사람만 하면 되지요. 왜 이게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 다 있고 더군다나 그 모든 대학에 대학원까지 다 있나요? 이것은 진짜 우리 체제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지요.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나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은 당연히 와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좀 그래요.
인문학이라는 것이, 물론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중요해요. 그런데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내 생각에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학제적으로 그렇게 크게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은 잘못됐어요. 왜? 실제로 정말로 인문학을 전공해서 그것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을 수가 없으니까요. 사회적인 수요도 그렇고요. 그러면 그것은 당연히 축소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대중들이 왜 인문학에 관심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느냐. 나는 그래서 학문으로서 인문학자가 있다면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것은 맞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대중에 대한 서비스라고 봐요. 아까 내가 고등학생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진리가 무엇인가 이런 것을 하려면 철학과에 가야 된다는 식으로 오해를 해서 철학과에 가려고 했다고 했지요. 뭔가 그것이 상대 가서 졸업하고 좋은 직장 취직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을 것 같다고 어린 마음에 생각을 했다면, 사실이 어떠하다는 것을 조금 더 대중에게 알려주는 역할은 틀림없이 인문학자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상대를 가고 공대를 가고 농대를 가고서 뭘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도 ‘내가 뭘 하는 거야?’, ‘인생을 이렇게 살아도 돼?’,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멋있고 의미가 있는 거야?’ 이런 질문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인문학자는 대중들의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사람이고, 해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의 숫자는 적어지지만 대중적인 관심은 많아지는 것이 나는 전혀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미국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학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교양 과정 때문이에요. 그리고 모든 학생들에게 인문학적인 소양을 길러주고요. 물론 나름의 다른 이유도 있지만, 대학 체제 안에 인문학이 있는 더 큰 이유는 그런 것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대중 강연이나 대중서적들이 인문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증식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관해서는..물론 그럴 수 있지요. 그럴 수는 있는데, 글쎄 그것은 자정능력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실제로는 힘들지만요. 저 진중권이 쓴 『미학 오딧세이』. 그런 책이 있다는 것 알지요? 나는 그 책을 안 읽어봤는데, 그 사람이 그 책에 미학을 얼마나 제대로 소개했을지... 틀림없이 쉽게는 소개했겠지만, 얼마나 올바르게 소개했는지는 안 읽어봐서 잘 몰라요. 참 어려운 문제에요. 그 사람이 제대로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 쉽게 썼으면 좋은데, 잘못 알면서 그렇게 써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게 됐다면 그것을 어떻게 고치느냐? 그것은 참 어려운 문제인데요. 할 수 없죠 뭐. 자정 능력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누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10. 다소 추상적인 질문이기는 하지만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 이해해볼 때,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그리고 더 넓게는 인문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의 미래와 관련해서 후속 학문 세대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은 없으신지요.

 
- 내가 이쪽으로는 사실 별로 생각을 못했어요. 학문후속세대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답답해요. 학문후속세대의 미래는 어떠하냐? 암담하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느냐? 별로 대안이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솔직하게 이야기하지요 뭐. 인문학의 미래는, 아까 말했던 인문학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당연히 암담하다고 생각해요. 암담해서 인문학을 전공해서 밥 먹고 살기는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은 어떻게 될 것이냐? 그래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은 살아남을 것이다. 왜?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여기 있는 것이니까. 결국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나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한가요? 너무해도 사실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한 식이면 서울대 다니는 애들은 살아남고 타 대학 다니는 애들은 다 죽으라는 이야기밖에 안 되지 않느냐?’ 이렇게 이야기할 텐데... 그러한 얘기라기보다는, 그냥 학문의 세계도 양심적인 세계가 돼서 공정하게 실력 있는 사람이 인정을 받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인정을 받을 확률은 더 높을 테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에요. 꼭 서울대는 되고 다른 곳은 안 된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요. 열심히 공부해서 진짜로 실력 있는 사람은 여전히 될 것이다. 뭐 그 정도로 하지요.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 안 힘들 때는 없었다. 위기가 없을 때는 없었다.’ 이런 말도 있어요. 이 말도 맞아요. 이 말도 맞지만, 그래도 지금은 심해요. 힘들지만 ‘옛날에도 그랬으니까 그냥 해.’라고 하면 조금 무책임한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대학원 나왔을 때는 철학과 애들이 전부 교수 자리로 갔다니까요. 철학과만이 아니에요. 중문과도 모든 대학에 다 있잖아요. 그러니까 서울대 중문과 석사 받으면 지방대 가는 것이에요. 누구만 못 가? 미학과만 못 가요.(웃음) 왜? 미학과는 지방에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사실 그때는 지금보다 엄청나게 기회는 많았어요. 지금은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와도 자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옛날에도 힘들었지만 풀릴 거야. 그냥 해.’ 이것은 약간 무책임한 것 같아요. 그냥 일반 애들이 취직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우리 때는 대학 졸업하면 좋고 나쁨은 있었지만 못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근데 지금은 아예 못 들어가잖아요. 그러니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정말 틀린 소리에요. 그것은 아니에요. 지금은 확실히 그러한 세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참고서 해라.’ 그것은 참 무책임한 소리 같아요. 어렵네요.(웃음)
 

11. 마지막으로 연구와 교육에 관한 선생님 나름의 신조에 관해서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강의를 하든지 발표를 하든지 항상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아는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모르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발표하는 것을 듣고 내가 이해를 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제대로 아는 것이에요. 내가 아무리 모르는 분야라도 처음부터 계속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소리를 떠드는 사람은 결국 보면 그 사람도 제대로 알지를 못하고 있어요. 이게 내 지론이라서, 나는 선생으로서 내가 아는 한 정확하게 가르쳐주자고 생각해요. 학생들에게 말이에요. 뭐..지금 학생들 반응은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요.(웃음) 여전히 ‘저 사람 무슨 소리를 떠드는 거야?’ 이러는 것 같아요. 내가 내년에 퇴임하는데, 내가 특별히 한 다른 것은 없는 것 같고, 이것은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잘 했는지 못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판단해주겠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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