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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너스 프로그램 수기] 철학과 이유란

2024-04-29l 조회수 1403
왕수인과 장재가 만나는 지점


철학과 이유란

 안녕하세요, 2023학년도 2학기 인문 아너스 프로그램의 수기를 작성하게 된 철학과 이유란입니다. 길고도 짧았던 제 학부 5년을 이와 같이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제가 아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하고, 최종 결과로 제출한 논문은 「왕수인과 장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논문의 논지는 심즉리[心卽理], 즉 마음이 ‘리’임을 제창하고 있는 왕수인의 심리학[心理學]이, 사실은 마음이 ‘기’임을 주장하는 장재의 심기학[心氣學]과 여러 부분에서 공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통설에서 두 철학은 정반대의 것으로 여겨졌으나, 개념의 속성과 그 함의 등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유사성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설명해내는 것, 그것이 제 과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두 철학은 모두 1) 사욕의 제거를 강조하며, 2) 각각의 핵심 개념인 양지와 태허를 무선무악한 것으로 상정함으로써 만물일체 사상으로 나아가고, 3) 예라는 사회적 기준과의 합치를 강조합니다. 이 세 공통점은 두 이론이 모두 이발 중심 이론이라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위 결론을 풀어 설명하는 40여 쪽의 논문 「왕수인과 장재가 만나는 지점」은 비단 한 학기의 고민만으로 쓰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학년 때 철학과에 진입하여 낯선 마음에 1년을 방황하다, 3학년이 되었던 21학년도 1학기에 정원재 교수님의 <한국철학사>와 <신유학특강>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맞닥뜨린 동양 철학이었지만, 교수님께서는 제 허무맹랑한 질문마저도 친절히 답변해주시며 부족한 저를 끝까지 이끌어주셨습니다. 단순하고도 엄밀한 개념적 틀에서부터 실천적 수양론으로 한달음에 이어지면서도, 그 개념적 단순성 때문에 다양한 학설로 나뉠 수 있는 신유학의 특성에 매료되어, 그렇게 동양 철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위 두 수업에서 신유학의 기본 이론을 다지고, 2학기에 <송명대 신유학>을 수강하여 장재를 배웠으며, 다음 해 1학기에 <중국근현대철학>을 수강하여 왕수인을 배웠습니다. 각 수업들을 통해 공부한 원전들, 그리고 수업과 복습 때 떠오른 의문점과 생각을 적어놓은 메모들, 이를 종합하여 작성한 기말 레포트들, 그리고 2023학년도 2학기의 연구, 이 모든 것들의 종합이 이번 논문 「왕수인과 장재가 만나는 지점」인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는 제 학부 5년의 최종 결과물이자 서울대학교 철학과가 제게 준 선물과도 같습니다.

아너스 프로그램 참여를 통한 연구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보다 완성도 높은 글을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고,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첨삭을 받고, 단행본으로 남을 최종 결과물을 여러 번 퇴고하는 과정을 통해 글의 짜임새를 탄탄하게 하고 빈틈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학기 초에 심사가 있는 졸업 논문과 달리, 아너스 프로그램 연구 발표는 종강 이후 진행되어, 여유로운 기간을 가지고 글을 수정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제 논문을 읽어주시는 수십 명의 독자 분들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제 생각과 주장을 알아주고, 읽어주고, 이해해준다는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이자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보다, 기꺼이 들어주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너스 프로그램은 단행본을 발행하고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여러 동료 학우 분들과 교수님들께 제 논문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감사한 여정에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뜻깊었습니다.

졸업, 익숙함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제게 관악 밖 새로운 환경으로 나가는 것은 꽤나 두려운 일입니다. 철학과, 인문대학, 그리고 아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자유로운 공부와 연구의 경험은 그 두려운 일을 보다 씩씩하게 시작해낼 용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