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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연출가라는 정체성" - 이영석(동문, 연극연출가)
  • Writer이정연
  • Date2017-08-14 16: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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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진행 : 이정연(비교문학 협동과정 석사 수료), 최기섭(공연예술학 협동과정 석사 졸업)


 

1. 간단한 소개와 활동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이것저것 많이 한 거 같아요. 연극연출을 했고, 또 최근에 책도 한 권 나왔고, 어쨌든 박사학위도 받았고, TV 드라마에 출연한 적도 있고(육룡이 나르샤 권근 役), 또 연극의 무대 배우로도 작년에 출연했었고…. “도대체 넌 누구냐?”하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되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지. (제 생각에 저의) 가장 중심에 서있는 것은 연극연출가예요.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나 스스로에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관심과 호기심이 확장되는 쪽으로 이것저것 하다 보니 겉으로는 가지 수가 많아졌을 뿐인데, 그 각각이 뭐 대단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고 다만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했을 때, 저는 연극연출가입니다.
 
 

2. 연출가로서의 정체성이 언제 확립되셨는지?

- 저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를 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는데요, 사실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은 점수 맞춰서 갔어요. (그 나이대에) 많이들 그러듯 제가 특별히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었죠. 문학에 영 관심이 없진 않았지만 대단히, 뜨거운 열정으로 국문과에 진학한 것도 아니었어요. 신입생이 되어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내 강한 집중력과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싶었어요. (그 대상이) 학과는 아니었고요. 그래서 동아리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고, 그러다가 연극반을 발견하게 됐죠.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나라는 사람의 집중력이 동아리라는 공간으로 싹 부어지는 것을 느꼈죠. 대학생으로서의 내가 있을 장소는 여기구나. 과에 안 나타나고 동아리방에 ‘죽때리는’ 스타일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그렇게 학부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현장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그런 예술가, 실천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연극 혹은 희곡을 연구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실천가가 되려니 나 자신에게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 연출가나 배우로서의 재능. 그러고 제가 큰 실수를 했죠. 공부를 만만하게 봤다는 거죠. 공부야말로 재능이 필요한 건데 (웃음) 그래서 제가 지식이 일천하니 대학원에 가서 희곡공부를 해보자. 지금은 많이 연구가 진척됐는데 당시엔 한국 근현대희곡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되어 있지 않았어요. 국문과 내에서도 시 소설이 연구의 중심이었고, 지금은 뭐 전공자들도 많이 배출되고 있었는데, 당시엔 희곡 담당 교수님도 없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혼자 공부해야 했던 상황이죠. 주변의 동기들을 돌아봐도 희곡 전공은 나 혼자. 보는 책도 달라요. 그러고 나는 선배도 없어. 물론 희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님이 계세요. 대학원을 같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터울이 워낙 크다 보니 선배님이 아니라 ‘선생님’이 몇 분이 계셨던 거고. 석사를 혼자서, 희곡을 공부하겠다 하고 들어갔죠. 그때가 2000년, 2000학번인데 00년부터 02년까지 다녔어요.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재능이 없고, 솔직히 적성에도 안 맞는다. 난 진짜 현장에 가고 싶다. 이건 아니다. 이게 아니라는 것을 찾아서, 지금도 그렇고 그 당시도 그렇고 제 좌우명이 저게 얼마나 단단한지 부딪혀보자 이런 건데, 뭔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느 한 쪽을 선택해서 분명하게 가보고 이걸 내가 돌아가야 될 길인지, 뛰어넘어야 될 길인지 그때 가면 자명해지리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석사과정을 한 것은 후회하지를 않고, 어쨌든 우리나라의 희곡사, 혹은 연극사의 한 개괄 수준이지만 훑어보고 한 꼭지를 다뤄보고 한 것이 아 나로서는 바로 여기에서 연극하는 사람이지 우리가 아무리 외국 이론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런거 있잖아요. 그런 걸 읽다 보면 그 어떤 명쾌한 그런 인용의 욕구를 느끼게 하는 명문장들이 있잖아요.; 뛰어난 명제들. 그게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연극을 어디서 하냐, 나 거기서 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석사과정이 의미가 있었고. 그리고 현장으로 가고 싶다는 들끓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고요.
 
 

3. 석사 연구주제는 무엇이었나요?

- 논문 제목은 1920년대 희곡의 계몽적 담화구성 방식에 대한 연구인데 그전까지는 20년대 희곡은 참 못 썼다, 참 볼게 없다, 다들 어쩜 작품이 이렇게 허접하냐 이런 평가들이죠. 그리고 일말의 어떤 긍정성을 부여하자면 30년대의 사실주의 연극이 성숙도를 보이는데 그것을 준비하는 형성기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사실주의를 예고했다. 요약하자면 그거에요. 그런데 그때까지의 연극에 대한 제 경험은 연극반 경험이었지만 어떤 창작가가 무언가를 창작할 때 나는 10년후를 예비하기 위해서 나의 작품을, 이런 사람은 듣도보도 못했어요. 작품이 별로인 거 맞는데 ‘예고했다’ 이건 너무 편한 인상적인 이해지 그것을 어떻게 그 현장의 숨결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20년대에 무엇이 뜨거웠는가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죠. 전 의문스러웠어요. 제가 하고자했던 얘기는 당시는 연극을 통한 계몽운동이 시대를 지배했기 때문에 계몽이란 것은 조금 일방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관객에게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물론 과도하고 좀 생경하게 직접적으로 주제의식을 난발하고 그러지만 그것이 너무나 절실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사실주의를 기준으로 보면 극작품성의 미비함으로 보이지만 뜨겁게 만나는 현장성의 소통을 노렸다 그런 관점으로 희곡을 분석해 보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즈음 영화 <색계>를 봤는데 그걸 보면 여자주인공이 중국에서 연극반 활동을 해요. 연기력을 키워서 나중에 정부요인을 살해하기 위한 연기를 하게 되잖아요. 결국은 사랑하게 되지만. 그런데 그 여배우가 연극반 활동을 할 때 이 연극단이 순회공연을 간단 말이에요. 홍콩인가 어디에 공연을 가요 대학생이. 그게 우리나라 20년대랑 똑같은 상황이에요. 김우진 같은 동경유학생들이 조선 본토에 민중을 계몽시키기 위해 방학 때 연극반을 만들어서 한국을 와서 전국 순회공연을 하거든요. 근본적으로 사실주의 미학 자체를 추구하지 않았어요. 대놓고 계몽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에요. 색계에서도 그 장면이 나와요. 사실주의로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여자주인공이 ‘그래서 우리 중국인민들을 잊지 말아주세요!’하고 외쳐요, 그러면 관객이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쳐요. 그거를 미학상의 미비함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거죠.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고 나서 이제 현장으로 가야 되는데 마음에 걸린 것은 무엇이었냐면, 애초에 석사과정에 갈 때 내가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있느냐가 질문이자 장벽이었었잖아요. 그걸 한두 달은 고민했던 거 같아요. 과연 이제 내가 방향을 틀면 나는 연극연출가로 가는 거냐, 내 인생은 그걸로 가는 거냐, 스스로 그것에 대한 일종의 출사표를 던지는 건데,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재능이 없는 거 같단 말이죠. 솔직히 감각적인 부분에서 뛰어나지 않은 거 같고. 한참 고민을 하다가,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대단히 인정받거나 대단하게 이름을 남기거나 나중에 몇 십 년 후에 연극사가 서술될 때 연출가 이영석이 있었다 하는 인정 욕망이 너무 강했기 떄문에 지금 나의 재능에 관해 걱정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욕심을 좀 내려놓자. 나는 연극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러면 내가 연극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 자신은 없지만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은 강하게 들었담ㄴ 말이죠. 그거만 볼 수 있어야 이 길을 갈 수 있지 그것도 받고 인정도 받고 하면 선택이 선명하지 않고 머뭇거리고 불순해지게 되는 거죠. 근데 사람이 욕심이 있는 동물이잖아요, 욕망 덩어린데(웃음), 깨달은 자도 아니고. 그래서 한 2주 정도를 매일 대학 교정을 걸으면서 ‘인정받지 못할 수 있어’하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어요. 그만큼 인정욕망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한참 저 자신을 다독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길을 갈 수 있겠느냐, 했을 때 이젠 할 수 있겠다 해서 한예종 준비를 해서 극연출가를 하게 되었죠.
 
 

4. 한예종도 경쟁률이 상당히 센데, 석사 과정 중에서 연극 실천 경력이 있으셨는지?

- 원래도 주된 건 학부 때 동아리 활동 경험이 있었고, 사실 대학원 다니면서 외부 극단에 소속되어 출연을 두 번 정도 했었어요. 심지어는 석사 2학기를 마치고 다시 학부연극반에 가서 대학원생을 부담스러워하는 애들의 표정을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애들을 꼬셔서 나랑 같이 공연하자 하고 같이 동아리에서 공연까지 했어요. (웃음) 그런 과정을 내가 좋은 의미에서 좀 유체이탈을 해서 나 자신을 보니 그 때 숨을 쉬더라고요. 공연하자, 공연하자 쫓아다니고 있을 때, 잘하든 못하든 무대에 있을 때 숨을 쉬고, 석사논문 쓰겠다고 책 보고 자료 뒤지고, 이런 건 의미있는 건 아는데 사람이 말라가더라고요. 나란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도, 리비도라고 해야 하나? 방향성이 텍스트 공부보다는 현장에서 실천하는 쪽에 호흡이 맞는 것 같다고 알게 되었죠.
 

5. 연출과는 보통 어떤 학생들이 와요?

- 저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는 전문사 MFA실기석사 과정이었는데, 보통 우리나라에서 연영과라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은 그곳에 석박과정이 있잖아요, 중대나 한양대. 그쪽 학생들이 많이 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만약 그쪽 학생이 오면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던 친구들이나 다른 연극 관련 활동을 했던 사람들. 저랑 비슷한 경우였어요. 졸업하고 나서 연극연출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명확한 그런 목적의식을 가지고 한예종에 오게 되죠. 이미 학부부터도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말이 금방 통했던 거 같아요. 본인들도 그렇고 우리를 바라보는 외부적 시선도 그렇고, 우리를 잠재적 연출가로 보았기 때문에 그런 지평에서 대화들이 바로바로 이루어졌어요.
 

6. 한예종 생활은 어땠나요?

- 대단히 재미있었죠. 지금 서울대 인터뷰하면서 한예종 재밌다는 얘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웃음). 저의 신체적 호흡을 보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저는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사람이 아닌데 딱 두 번 줄여봤어요. 재수할 때랑 한예종에서 공연 연습할 때. 잠을 안 자더라도 이건 반드시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여러 가지 경험도 많이 하고 학내긴 하지만 여러 공연팀에 들어가서. 일 년 간 6편에 발을 담그었더라고요. 전문사 과정 1학년이고 제가 연출한 작품은 하나였어요. 실황연극 페스티발 참가작이다 해서 30분짜리를 하나 연출했는데 배우 조연출 무대감독 조명오퍼 음향오퍼 연출작품 이런 식으로 해서 어쨌거나 6개나 했어요. 생활이 뭐냐면 아침 9시에 가서 수업을 듣고 공강시간에 막 숙제를 하다가 저녁을 먹고 무조건 공연연습. 그 패턴으로 일 년을 살았어요. 방학동안에도 공연연습 더 열심히 했죠. 그래서 무슨 얘기가 있었냐면 한예종 들어오면 연인관계가 다 파토난다, 만날 시간이 없으니까. 물론 전 그때는 연인이 없었지만 (웃음), 다행이었죠.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까 2년 되어서는 제가 연출한 것도 두 개, 1학기에 하나 2학기에 하나 하고 나니 좀 지쳐서 1년 휴학을 하고, 거긴 3년과정이거든요. 또 1년을 다녀서 마쳤죠. 연극원 전체가 3년 과정이에요. 그래서 휴학까지 치면 4년을 다녔죠. 학부를 한 번 더 다닌 셈이죠. 그러면서 그냥 원하는 일을 가열차게 한다는 거, 그게 그 시절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한예종에 갈 때 마음속으로 세웠던 지표가 있잖아요, 인정욕망과 싸우자 그게 계속 올라오잖아요, 그 욕망이. 그러면 내가 편안해지겠다. 사실 인정이라는 건 다른 사람이 해주는 거지 스스로 하면 삶이 얼마나 추레해지나요. 비참해지고. 그냥 인정은 잊고 내 할 일을 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대신에 이것저것 좀 무책임할 정도로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더라고요. 인정욕망에 사로잡히면 2학년이 되면 처음으로 정식으로 어떤 공연을 연출해야 하는데 주변의 동료들이 있고 다 잠재적인 연출가로 보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시선들이 상당이 경쟁적이에요 사실은. 그러니까 한예종 재학생 시절부터 인정받고자 한다면 외부적 시선을 늘 염두에 두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사실 불행한 일이죠. 비교당하고 스스로가 비교하고. 그런 생각을 좀 접고 나 여기에서 졸업하기 전까지 몇 번의 연출을 해야 하는데 최소한 4번의 연출을 해야 되거든요. 원하면 방학을 이용해서 더 할 수도 있고. 그래서 뭘 할거냐, 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연출로서의 내 색깔이 뭔지 모르겠어서 이것저것 탐구를 해보자. 해서 겁 없이 고대 그리스 작품도 연출해보고 셰익스피어를 하는데 스타일을 확 바꿔서 현대적인 퍼포밍을 강조하는, 배우의 신체나 아크로바틱적인 요소를 도입해서 해보기도 하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도 해보고. 사실주의도 해보고. 또 극장주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서 나름대로 자기수련의 기간을 가졌죠. 자기 색을 갖지 못한 가수가 여러 장르의 노래를 불러보듯이 말예요. 그랬던 시절이었어요. 그러고 졸업해서 이제 간간이, 자주는 못하고 연극연출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죠. 처음 작업은 2006년부터였고, 그 이후로 계속 연극연출 작업을 하고 있어요.
 
 

7. 집에서 반대를 했다거나 친구들이 걱정을 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나요? 갑자기 진로를 바꾸니까..

- 많이 걱정을 하셨죠. 근데 불처럼 강력하게 반대를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석사 마쳤을 때는 집안에서 제가 계속 공부를 해서 그 길로 가겠구나 생각하고 계셨고. 근데 제가 진로를 바꾸겠다고 말씀드리던 그때 이미 저는 서른이었기 때문에 대학을 들어갈 때의 스무살 때와는 다르니까 저도 제 의지를 강력하게 말할 수 있었고 부모님도 저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니가 뭘 몰라서 그래’ 하지도 않으셨고, 다만 네가 참 걱정된다. 하셨죠. 심지어 지금도, 제가 올해 마흔 다섯인데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니가 연극을 그만두는 순간부터 니 인생은 핀다’하는 말씀을 멈추지 않으세요. (웃음) 그런데 그렇다고 어머니가 뭐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서 저를 뜯어말리는 건 아니고. 어머니가 가지고 계시는 아쉬움의 토로니까, 그냥 ‘그러게나 말이에요.’하고 넘어가고 말죠.
그게 이해가 되긴 하는데,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사회의 성과나 어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일, 그게 나쁜 일도 아니고 가치있는 일이잖아요. 거기서 대단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일을 선택함이 당연한 것이고, 그러지 못한 것이 부조리하다는 인식이나 분위기가 지배적이면 그런 시절에서 성장하고 자라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으시겠죠. 부모님이 살았던 시대, 사실상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고 그걸 당연시여기는 게 아니라 그걸 하는 게 마치 사회에서 얘기하는 대단히 열심히 해서 평범해지라고 강요하는 사회잖아요. 출산율도 낮은데(웃음). 남자는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을 해서 가장이 되어야 하고 여자는 애를 낳아야 하고, 이렇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거라는 허위의식을 유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제가 느끼기엔 그냥 사람이 ㅇ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안 되는 게 답답한 거죠. 그리고 사실 친구들도 그런 얘기를 해요. 너 어떻게 살려고 그래. 아 그래서 이건 똑같구나, 부모님 세대가 강하긴 해도 이게 세대의 문제는 아니구나. 앞으로 그런 시각이 계속 바뀌어야 하고 그럼에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그런 사회의 시스템도 함께 바뀌어가야 하는 거죠. 제발 이런 인터뷰에서 어떻게 이걸 하게 됐어요? 이런 질문 없이 그게 왜 좋았어요? 이런 질문으로 바로 들어가게 되는 그런 사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요원한 일이겠지만. 계속 떠들다 보면, 언젠가는.
 
 

8. 첫 외부작품을 2005년에 하셨고요, 박사는 몇 년도에 하셨나요?

- 2008년 2학기에 입학을 했고요, 아마 맞을 거예요.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느낌도 들었고, 2007년 8년에 연달아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학생이 참 편하구나 하는 것도 느꼈어요. 방금도 학창시절에 한예종 재학시절에 다양한 나를 수련하는 과정,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연출해보는 과정을 설명 드렸는데. 졸업하고 나니 이제는 택스트에 기대기보다는 연출가로서의 나의 전망은 무엇인지 그런 걸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참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나의 ‘재능없음’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 건가. 그런데 재능 문제도 아닌 거 같고. 인식의 문제도 관련이 있는 거 같고. 그래서 깊이 생각했던 게 어떤 공부라는 게 뭘까를 또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나에게 있어 공부는 내가 전망을 갖고싶을 때 어디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될지 모르니까 출발선을 제공해주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고민의 출발선을. 그러면 공부를 좀 병행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문의 체계 이런 건 저는 이해를 못해요. 연극학하고 공연예술학이 있다면 이게 어떻게 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칸트식의 질문을 하는 거도 아니고 다만 우리의 앞으로의 연극은 어때야 하고 왜 의미가 있을까? 사조라고 불러도 되고 양식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그런것들을 비평가들이 쓴 글이나 연구서적을 읽었을 때 개념어들을 제대로 읽어내고 싶더라고요. 물론 석사를 다니면서도 공부를 조금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만으로는 내 인식의 베이스를 넓히기엔 무리였던 거 같고. 어쨌든 연극은 평생 할 거니까. 사람은 한번에 너무 많이 변신하는 건 안 좋지만 적당할 때 변화하지 않는 것도 참 꼰대스러워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의 도구를 손에 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연극사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걸 좀 찬찬히 들여다보고자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죠.
 
 

9. 국문과도 선택의 옵션이 되었을텐데 공연예술학과를 선택하셨네요?

- 예전에는 아무래도 제 베이스가 국문과였고 초기 제 연출도 텍스트 기반으로 무대에 어떻게 구현하느냐의 문제였는데 이제는 문자텍스트와 공연으로 만들어진 ‘짓거리’의 관계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텍스트 기반일 수도 있고, 텍스트를 거부할 수도 있고, 디바이징 시어터라고 해서 텍스트 없이 만들어가자는 경향도 있죠. 소위 공연성이라는 것을 텍스트에 오롯이 담긴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겠구나, 공연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뭘지. 공연성을 기본적인 틀로 삼아보는 게 좋겠다. 그래서 공연예술 협동과정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지만 제가 석사 다닐 때는 없었어요 그 과정이. 2002년 이후에 생겼죠. 그렇다면 여기에 가서 공부를 하는게 나에게 좋겠다, 연극연출가가 기본적인 정체성이니까 이제 거기 가서 공연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자 거기로 진학했죠. 관심사가 계속 이어져오게 된 기반은 역시 동아리 활동이 컸었죠. 그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뭐였냐면 텍스트는 당연히 어떤 작업의 출발선일 수 있는데 가만 보니까 사람이 모여야 공연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사람이 흩어져도 텍스트는 남아있어요. 텍스트가 위대하단 생각이 드는 것보다 텍스트는 움직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움직이면 텍스트가 같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연극반 내부에 사람 셋만 모이면 연극이 이루어진다는 명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공연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므로 사람의 ‘짓거리’를 중심으로 제 생각의 방법이나 틀을 조정해가고 외연을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10. 그러면 책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박사 때 연구하셨던 것들 박사논문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 일단 연극계에서 최근에 2010년 즈음에 많이 뜨거워진 논의가 포스트 드라마론인 거 같아요. 솔직히 저 자신은 굳이 포스트모던한 성향보다 그냥 모던한 성향이 강한 사람이고, 사실 근대주의잔데, 포스트란 말이 나오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제가 보더라도 연극계에서 제가 납득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공연들이 많이 나오는데 주변 평론가들이 그거야말로 포스트한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빨리 따라 잡아야겠다 하고 생각한 건 아니고 어떤 부분은 이해가 되지만 어떤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그건 제 인식 속에 놔둔 채, 저는 여전히 입생과 스타니슬라브스키, 브레히트 같은 20세기 초반에 20세기 그림을 제시했던 사람들에게 머물러 있었던 거죠. 60-70년대 네오 아방가르드라고 부르는 시절이 오는데, 거기까지는 섭렵하지 못했고요. 그 20세기의 틀로만 봐도 요즘 이루어지는 새로운 트렌드를 해명해주지 못해요. 그래서 우리 사회의 연극계도 포스트한 방향성으로 가는 게 분명한데, 나는 이걸 모르는 채 어쩌면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고 있구나. 이걸 어떻게 이해하지? 나 큰일났네 이것도 모르고 있다니, 하는 게 출발선이었어요. 그렇다면 우리의 연극사에서는 지금 이걸 해명하기 위해 현재 연극의 현상들을 해명하면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고, 이게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일일까 아니면 내부적인 긴 흐름 속에서 여기까지 도달한 것일까, 그런 것에서 혹시 내부적인 흐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점검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학문적인 어떤 정확한 판단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논의 방식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어요. 그 방식이란 게 뭐냐면 역시나 포스트한 현상에 대해 외국 이론들을 공부하고, 물론 이론 공부하는 것은 좋은데, 외국의 사례들을 먼저 얘기하고 이것이야말로 포스트드라마다 라고 설명하고 국내에서는 유사하게 이런 것들이 있다, 하는 설명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거죠. 물론 저도 인정해요. 국내 연극의 여러 현상들이 해외의 연극의 수용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수용 주체로서 형성해 온 맥락이 있을 터인데 그것들은 소거되고 우리는 서구 연극의 에피고네로만 되풀이되고 있다는 거. 그런 현실에 어깃장을 놓고 싶었어요. 그게 정말 사실인지도 점검해 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한국연극사를 보다 보니 크게 꺾이는 연극사적 변곡점이 어디일지를 살펴보았는데, 포스트 이전의 모던함이 있었는데 이 모던은 입생부터 얘기되는 모던함이 아니라 사실주의하고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말하는 벤야민이나 브레히트가 말하는 식의 모던을 얘기하는 거죠. 그것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얘기가 있어야, 그러면 한국에서는 기존의 모던에서 어떻게 벗어나려는 포스트한 시도를 했는가, 이렇게 설명해야 앞뒤가 맞는데 60-70년대에는 서사극이 지배했는데, 21세기에는 갑자기 포스트가. 이래버리면 90년대는 뮤지컬이 부상했다, 막 이러고, 80년대는 마당극이다. 두서없이 그때그때의 현상들만 확인하고 끝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현상이 나오기 전의 단계를 살펴봐야. 우리나라의 포스트드라마를 다룬다기 보다는 포스트드라마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를 먼저 다루고 싶었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소위 말하는 모더니즘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보고 싶었던 거죠.
그 이전에는 사실적 재현의 핍진한 모방이야말로 진정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지배했던 시대에서, 전쟁 이후에는 당시로서의 실험극들이 꽤나 분명한 지향점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분출되었어요. 도대체 왜 이 시절의 공연과 희곡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설명하는 일종의 해설서를 쓰게 된 거죠. 그것이 교두보로 마련이 된다면 이렇게 우리나라 연극에서 사실적 재현 이후의, 탈재현주의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는데요, 탈재현적인 양상을 확인한 다음에는 여기서부터 서사극이니 메타극이니 하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하거든요. 사실적 재현에서 벗어나면서. 그럼 그 다음에 포스트드라마에 대해 얘기하자는 게 제 생각이었고, 그렇게 되면 시간이 엄청 걸리고 제가 현장비평가도 아니고 대단한 연극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저에게는 제 자신의 연구를 위한 호흡이 있었던 거죠. 이걸 공부한 다음에 이제 한국의 포스트드라마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제 향후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포스트드라마에 대한 설명을 읽어도 아직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혼자 더 많이 읽으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무책임함과 자유로움이 있어요. 저는 제 위치를 연극연출가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저 자신을 학자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박사논문도 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소산이었고. 학문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치를 축적해가는 일인 거 같아요. 거기서는 제가 한 발 벗어나있다는 거죠. 그러고 빨리 현재의 동향과 사조와 현상들을 설명해 내야 하는 의무로부터도 약간 무책임하게 한 발 건너 있는 거죠. 왜냐면 저 자신을 학자가 아닌 연출가로 생각하기 때문에.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해하는 한국 연극사의 흐름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었던 거죠. 기존의 연구의 틀로부터는 자유로는 새로운 시각. 제가 연출가로서 감지했던 것을 제 박사논문에 적용시켰고 앞으로의 공부에도 그런 관점이 작용할 거기 때문에. 그런데 소위 지금 서술이나 용어의 사용 관점 이런 쪽에서 기존에 축적되어 있는 방식과는 꽤 다른 용어들과 관점을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 상대적인 저의 자유로움이죠. 제가 축적해 가는 것으로서의 학문이기 때문에.
 
 

11. 실천도 하시면서 장기적으로 어쨌든 연구를 계속 하실 거잖아요. 이런 경우가 드문 건 사실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 첨언하자면 우리나라에서 포스트드라마를 이해한다는 것은 뭘까에 대해 왜 제가 굳이 한국연극사의 흐름에서 그걸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느냐, 저의 어떤 답답함 때문인데 제가 국수주의자거나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협소하게 우리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한국적인 것의 이데올로기에 결코 동의하지 않아요. 한국적인 게 뭔데? 하고 의문을 표하거든요. 그럼에도 한국연극사라고 하는 이유는, 포스트드라마는 난해해서 포스트드라마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사유 방식 삶의 방식, 고민거리, 자체적인 모순을 기존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야 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포스트한 시각이 요청되어서 포스트드라마라고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정체성은 고정된 것인지 유동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이제는 누구도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다는 신활 믿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떨 때 자신의 정체성이 유동하다고 느끼는지를 다루는 게 연극이지, 정체성의 유동을 표현하는 양식을 수용하는 게 포스트드라마는 아닌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의 어떤 포스트한 고민들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연극이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누가 이런 설명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양식적인 의미를 앞에 두고 그걸 설명하고 있는 거 같아서 아쉽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무슨 학계에 발표할 것도 아니고, 빨리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우리에게 어떤 포스트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우리가 정말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연극연출은 그냥 배우들이랑 모여서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은 많이 생각해왔지 우리가 무슨 고민을 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이 고민이 선행되어야 포스트드라마를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포스트드라마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가 알게 되겠죠.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래서 논문의 골격은 한국전쟁 이후 새로운 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에 연극에서는 기존의 사실적 재현으로 담아낼 수 없는 새로운 탈재현적 실험적 방법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정말 공부하고 싶은 것의 전초작업 같은 거예요. 그러면 오로지 연극연출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거냐?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런 구분을 굳이 해야 하나요? 공부를 한 게 작업에 당연히 도움이 되고, 작업을 하면서 얻은 감각들이 공부를 하면서 또 도움이 되니까. 이 둘을 병행해 온 것이 양쪽에 큰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12. 그렇게 공부를 해서 ‘어떤 현상’을 해명했다고 치면, 그런 꺠달음이 다시금 어떻게 공연으로 순환이 되나요?

- 사실은 저라는 연출가가 작업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 사유를 하고 있는지 그 한계는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정도예요. 그러면 제 사유의 패턴, 제 사고 방식을, 제가 해온 연극이 있는데 그게 과거의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이 됐는지를 봤잖아요. 중요한 건 이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 지점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건지를 모색해야 하는 거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한 한계점을 보게 됐다는 거예요. 단순히 직관적으로 뭐가 안 풀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제가 정리해 온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거. 그게 새로운 창조력으로 이어지는 거 같지는 않아요. 다만 이제 고민을 좀 더 구체화해야겠다는 문제의식에 도달하게 되었죠. 테크닉과는 연결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인식의 폭이 넓어지죠.
이것보다 구체적으로 제가 느낀 것은 지금은 제 박사논문 테마를 두고 포스트드라마와 그 이전의 사실주의와의 중간을 다룬 거잖아요. 이걸 다뤘다고 해서 포스트드라마의 전망이나 내가 포스트드라마를 어떻게 창작해야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준 건 아니죠. 하지만 느낀 것은, 조금 차원이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요, 논문쓰기와 공연 만들기가 다르지 않구나 라는 거예요. 저로서는 사실 격려를 받았어요, 박사논문을 쓰면서. 제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 등. 그런데 많은 작품을 연출해보고 박사논문을 쓰다 보니 우리가 논리라고 말하는 것, 앞뒤가 맞아야 한다는 것, 논문도 하나를 증명해내기 위해 많은 글을 읽고 쓰잖아요. 공연도 이와 닮아있다는 것을 박사논문을 쓰면서 알았어요. 이전에는 저도 감각이 모자라, 재능이 없는 거 같아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공연도 단 하나를 얘기하기 위해 많은 장면들 많은 요소들 빛나는 부분들을 잘 조직해내서 그것이 관객의 마음 어디에 가 닿아야 하는지. 제가 그렇다고 멜로드라마적인 걸 얘기하는 건 아니고요, 마음이든 인식이든, 정확하게 어느 지점으로 가지고 가려 하는 건지. 그것의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공연이구나 하는 걸 사실 박사논문 쓰면서 처절하게 재인식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쓰면서는 쓰는 과정도 참 힘들긴 했지만 과거에 제가 만났던 배우들과 디자이너들에게 했던 숱한 거짓말들 – 말이 안 되지만 이런 거라고 생각하고 해보자라고 했던 것들,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열정을 불태워보자는 연출 관습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됐어요. 글쓰기와 공연 만들기가 경계가 분명한 게 아니라 그 안이 본질적으로는 별반 다를 것 없는 비슷한 활동으로 제 안에서는 이해되고 있어요. 글쓰기도 자료들과 대화하잖아요. 내가 원하는 쪽으로 네가 변해주면 안되겠니, 하면 자료는 ‘나는 그런 자료가 아닌데?’ 하고(웃음). 그렇지 너라는 자료가 있을 더 바른 자리는 어디였는지 내가 다시 고민해야 했던 거지? 하고 대화하잖아요. 사실 배우들과의 대화도 상당히 비슷해요. 나의 감각 속에서 네가 이런 식으로 연기를 하면 안 되겠니? 하고 제안을 하면 배우들이 이 인물의 정당성과 텍스트 안의 나의 위치는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하는 정확한 반론을 받게 되고 그럼 연출이 저 한 대목만 해결되면 다 뚫릴 것 같은데 사실 그건 나의 망상이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거죠. 그러면 내가 이 공연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리셋해야 하는구나 하죠. 모든 전략을 세워두고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결코 아니거든요, 공연을 만든다는 건. 그래도 논문은 서론 본론 결론의 체계를 갖추고 있으니 그렇게 하면 될 거라 생각하는데 써보고 나니 자기가 예상했던 글은 결코 나오지 않잖아요? 마지막 순간까지 쓰는 자기도 어떤 글이 나올지 모르는. 그런 줄다리기 속에서 글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연출로서 가지는 재능없음의 부족분을 대화 자료와 성실히 대화할 수 있다면, 배우들 또는 디자이너들 참여하는 사람들과 성실히 대화할 수 있다면 향상되리라. 논문도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하게 한다면. 공연에 있어서도 예술가인 척, 이 공연이 멋있는 척 하지 말고 이 공연이 정확하게 관객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를 다시 따져볼 수 있다면 둘의 접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제가 박사논문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어요. 포스트 드라마나 모더니즘 재현 이런 것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내용 자체랑 제 창작물이 직접 관련되지는 않아요. 언제 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향후 한국의 포스트드라마를 제가 이해하는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 우리에게 유의미한 포스트한 연극에 대해 실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13. 책의 출판 계기는?

- 직접적인 계기는 알아보다 보니 서울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예술연구서적 지원사업이란 게 있었어요. 제 글 자체의 퀄리티만 생각하면 솔직히 부끄러운데, 그래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연극연출가가 한국연극사에 대해 쓴 책. 물론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학자 코스프레하는 연극연출가라 말해야겠네요.(웃음) 그런 사람이 한국연극사에 대해 무슨 말을 했을까? 글 자체의 퀄리티보다는 연극연출가는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이런 건 드러내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원했어요. 다행히 선정이 되어서 출판지원금을 받고 책을 내게 되었죠. 제 박사논문은 새로운 것을 증명 했다기 보다는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연극은 그 이전의 연극에비해 어떤 연극을 꿈꾸었나를 해설한 글이니까요. 공연은 사진 몇 개와 당시 기사 몇 개를 모아서 공연을 재구성해놓은 글들이 꽤 있어요. 이런 부분은 제가 연극연출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해요. 그런 점에서 의의가 있겠다. 당연히 반론의 대상이 되겠죠. 그러나 어쨌든 대상에 대한 논의는 늘 새롭게 이루어지니 반박 당함으로써 , 첫 테이프를 끊음으로써 담론이 발전하는 거겠죠. 텍스트, 희곡에만 기대지 말고 공연에 관련된 기사와 사진들을 엮어 설명한 것이 이 책의 의미인 거 같아요. 책은 시중 대형서점에도 다 보내질 예정이고 도서관에도 비치될 예정입니다. 학과 졸업생으로서 최초로 단행본을 낸 경우라서 선생님들을 찾아 뵙고 인사드리고 과에도 책을 드려야겠죠.
 
첨언하자면 실은 포스트한 것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연출도 몇 가지 했었어요. ‘디바이징 시어터’. 사실 영어로는 ‘디바이즈드 시어터’가 더 맞는 영어인 거 같아요. 고안된 연극. 그거는 이제 텍스트를 두지 않고 배우들이랑 테마를 정해서 만들어내는 연극이에요. 드라마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있죠. 나름대로 포스트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유의미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연출로서 시도해본 거였는데 좀 공연 끝나고도 많이 부족한 걸 느꼈죠. 근본적으로 느낀 게 디바이징 시어터라는 외피를 가져왔지만 사실 그 안에서 이야기하는 화자들의 존재를 봤을 때 그들의 정체성을 너무 일관성있고 고정적인 것으로 봐왔다는 것을 제가 알게 됐어요.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 포스트한 시각이 아닌 거예요. 아마도 이런 지점이 제가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포스트드라마라고 할 때 무엇이 진정한 포스트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후에 다른 작품을 만든다면 리얼리티나 아이덴티티를 바라볼 때, 물론 힘들겠지만, 기본의 시각에서 벗어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나 자신은 스스로 변하지 않으니까 공부라는 망치를 가지고 제 머리를 계속 치고 있는거죠. 시각을 바꿔보라고,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이런 제 노력이 성공한다면 그때에 가서는 대답해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저의 공부와 저의 창작이 어떻게 내밀히 연결되는지.
 
 

14. 재능이라면 재능이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문제의식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셨던 거잖아요. 게다가 창작욕도 왕성하셔서. 그런 동시적인 욕구를 지닌 사람이 흔치 않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다면 특별한 거죠. 작품상 받으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 인극페스티발이라는 축제에 참가한 작품이었고 길이는 한 45분-50분 정도, 짧은 작품이죠. 직접적으로 그 작품의 창작 모티프는 세월호예요. 제가 작가인 건 아니고, 작가가 아들을 키우다가, 그 글을 쓸 때는 뱃속에 아이가 하나 더 있는 엄마, 여성이죠. 아들을 낳고 나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지금 그 아이는 다섯 살인데, 그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진 거죠. 2014년이니까 그 아이는 한 두세 살 때예요. 아이를 잃은 슬픔이 극도한 슬픔 이렇게 표현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표현할 수는 없는 거죠. 부모가 아이를 잃는다는 게 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작가가. 이 작품이 하는 얘기는 ‘이별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죠. 어디든 살아있는 거죠, 여기 머릿속이든 심지어는 감각적으로 바로 옆에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이별 자체가 불가능한데, 그 세월호 사건 이후로 시간이 흘렀으니 그걸 잊으라고 말하는 것은 부조리하다. 그걸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잊으라고 하지마라, 이별했다고도 하지 마라,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게 큰 주제에요. 소주제는 아들과 아버지는 만나야 한다에요. 아버지는 산에 올라서 바다를 바라다보고, 아들은 물속에 있어요. 아버지 옆에서 산도 같이 타고, 아들을 살아있는 것으로 다뤄요. 여기는 물입니다 산입니다 하고 나누지도 않고 저 아들은 죽은 영혼인 거 같다가 먹을 거 다 먹고 얘기도 한단 말이에요? 살아있음과 죽음의 경계 없이 써버렸고, 그래서 이제 현실과 비현실을 나누는 것은 세계에 대한 낡은 이해고 또 그렇게 자꾸 뭔가를 구분하는 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게 아닌가, 우리 시대에서는. 그건 함께 존재할 수도 있는 건데. 그렇게 생각을 하던 중에 세월호를 그렇게 표현한 글을 보니 연출이 너무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야 이 텍스트가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뭔가 특별함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반드시 연출을 하고 싶다고 했고, 같이 공연을 만들게 됐어요.
내용은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등산을 해요. 같이 라면도 먹고 위험한 암벽등반, 릿지등반이란 게 있더라고요.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 방식. 서로 손도 잡아주고 하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이 아이가 8살 때 이야기, 현재 산을 오르는 이야기, 그리고 이 아이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상황 세 개가 별 설명 없이 겹쳐서, 뒤섞여서 진행돼요. 작품 준비할 때 “이건 8살 얘기지, 현재 얘기지, 죽었단 얘기지? 근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그런지는 설명을 해주면 안 된다는 거지?” 혼란스러웠어요(웃음). 이제 마지막에는 아버지가 산 정상에 오르고, 아버지가 페트병을 이만~큼 모아서 페트병을 계속 엮다 보니 큰 공처럼 됐고 그걸 지고 물속으로 걸어가서 물속에 있는 아들과 만난다는 얘기예요. 말이 안 되지. 물속으로 들어간 순간 아버지는 죽었을걸? 그런 식의 리얼리티로 생각하는 작품은 아닌 거죠. 어 가네? 아들이랑 결국은 만나네.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구나. 그거를 말하는 작품이에요.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라는 거죠. 이 작품 설명하기가 힘든 게 환상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거예요. 거긴 환상도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도 아냐. 그 아이를 잃은 분들의 절실함이란 리얼리티 그 현실이 있을 뿐이에요. 그 차원에서는 모든 것의 뒤섞임이 가능한 거죠. 이건 일차원적인 사회적 분노 등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리고 맨 마지막엔 이렇게 해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만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는 것. 제가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에요. 당연히 분노고 슬픔이죠.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살아야 되잖아요. 무엇을 근거로? 분노를 근거로 해서 살아야 된다는 건 좀 이해는 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하는데 그 근거는 아이들과의 이별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으니 그걸 근거로 살아갑시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싸우는 이유도, 우리가 분노를 유지하는 것도 사랑하는 힘에서 유지할 수 있는 거죠. 그냥 분통을 터뜨리는 거야말로 정치권이 유가족들을 매도하는 상황인 거죠. 분노밖에 할 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사랑이 우선이죠. 오히려 정치권이 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정부가, 이것이 사랑임을 도대체 모르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연출이, 텍스트를 칭찬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근데 이 작품은 저와 잘 만난 케이스에요.
 

15. 어쨌든 세월호의 모티프를 받아서 성립된 작품인데 내용상 직접적인 연관은 드러나지 않나요?

그냥 아들이 물속에 있다는 것을 환기하고, 처음에는 등산복을 입고 있다가 중간에 한 번 퇴장한 후에는 교복을 입고 등장하거든요. 좀 예민하거나 관심 있던 관객들은 이거 세월호 얘기구나 하고 아는 거고,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아버지가 무슨 사고로 물에 빠져 죽은 아들 얘기를 하나보다 하는 관객들도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무슨 아버지와 아들의 보편적 관계로 끌어올리려는 그런 의도는 아니고 그냥 이 상태가 맞다, 그런데 구구절절 설명하지 말자 하는 의도로 했어요. 직관ㄴ에 의한 판단이었는데요. 왜 그게 맞을까, 왜 직접 설명하지 않는 게 더 좋을까 하는 건, 세월호라고 직접 설명하는 순간 프레임에 갇혀버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세월호에 대해서 이제까지 이어져 온 담론과 이야기의 방향 이런 것들에 먼저 규정되어 버릴까봐. 이게 우리에게도 좋지 않고 관객들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관객들이 스스로 이게 세월호 얘기임을 발견해 낼 때 그때서야 제대로 공연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음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공연은 세월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들이 이게 세월호 얘기라는 걸 미리 알고 오면 자신들이 이 사건에 대해 쌓아온 맥락을 덧씌워서 결과적으로 작품 이해를 협소하고 편향적으로 하게 하지 않을까 그런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어요. 나중에 깨닫는 사람들이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공연도 이렇게 생각하네. 나랑 이 공연이 잘 만났다 하고 그 만나는 순간을 보장해주고 싶었어요.
 

16. 세월호와 관련된 연극이 강제로 중단되었던 적도 있었는데요, 혹시 그런 제약이 있으셨는지요? 그리고 블랙리스트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제약은 없었어요. 작년 11월에 작품이 나와서. 이미 정부가 탄핵이 진행이 되고 몸을 움츠렸는지 제재를 받지는 않았어요. 사실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투쟁해 오신 연극계 선배들이 계시고, 정말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와 실상은 그분들에게 듣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저는 다만 저의 소회를 말씀드리자면 좀 갑갑하고 서글프단 생각을 했어요. 예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 수준의 그런 의식수준을 가진 정부를 가지고 있다는 게 슬펐어요. 그 인식수준이 저열하다고 생각했어요. 통제되지 않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예술의 본질이 모난 건데, 어깃장 놓고. 인간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인문학이고 그걸 표현하는 게 예술인데 그걸 다 없애면 그거야말로 비극이죠. 당연히 ‘못 살겠어, 고통이야, 인간답지 않아’ 이런 얘기가 많아져야 그 사회가 건강한 건데, 그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소위 정부를 구성하고 거기서 정책을 입안하고, 조율하고 통제한다는 게 한심해요. 그래도 최대한 감정을 내려놓고 폭넓게 생각하면, 이런 시각이 물론 당연히 이 정부의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리라 예상을 하는데, 근데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늘 산재해 있었어요. 심지어 우리 내부에도 있어요. 제가 연극반 활동할 때 총학 인문대 학생에서 인문대 오리엔테이션을 하니 연극반은 공연을 하시면 돼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연극반이 오리엔테이션 당연히 가서 학부 신입생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인문대 학생의 지시 혹은 요청에 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단체는 아닙니다. 하고 답변을 했죠. 이처럼 우리 내부에도 그런 사람들은 있어요. 문학예술을 마치 우리 사회의 장식품으로 여기는 것처럼 말예요. 교양 혹은 오락거리, 이정도로 여기는 거. 그러니까 여가로 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우리에게는 중요하고 본질적이고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하나의 의미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건 무슨 콘텐츠, 돈이 되는 문화 ‘산업’이니, 그런 식으로 연결하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걸 통제해도 되는 대상으로, 본질적인 게 아닌 것으로. 장식이니까. 장식은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거니까요. 그거의 극악스러운 사례를 본 거지 몇몇 개인의 사례는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서글픔이 덜해지는데, 스스로에게 아유 그런지 몰랐어? 하고 되뇌이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손놓고 있자는 건 아니고,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실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하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는 통제 대상이 아니고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 때 대단히 즐거운 생각과 활동과 발상이 시작됩니다. 정말 연극을 통해 우리가 즐거워지려면 통제에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라고 화법 자체를 바꾸고 싶어요. 블랙리스트가 문제야, 라고 말하기보다는. 그렇게 하면 즐겁지가 않은데 어떡하죠? 하고 묻는 거예요. (…) 이것도 답답한 게, 그 이분법적이고 고정된 시각. 한 번 너는 우리의 적이야 라고 증오를 생산하면. 왜 국가지도자들이 증오를 양산하는지 모르겠어요. 한 번 낙인찍으면 끝이에요. 적이면 통제하고 관리만 하면 되니까. 그런 사람들이 힘을 쥐고 뭔가를 결정하고 있다는 게 답답하죠. 저는 자꾸 이런 이야기들이 있으면 크게 생각하려고 해요. 역설적으로 연극이, 예술이 참 필요하다. 이런 고정된 시각과 싸워야 되니. 그걸 할 수 있는 게 예술이라는 거죠. 그래서 너무너무 중요한 건데 그만큼의 가치평가를 못 받고 있어요. 물론 그것을 얻어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일 테니, 앞으로 더 해도 되는구나, 해야 되겠구나 하는 반사적인 명분과 이유를 많이 받고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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