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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종교학과) 교수 인터뷰
  • Writer신철우
  • Date2018-06-05 10:56:14
  • Pageview1483

  
 

Q. 선생님께서 하고 계시는 건명원은 어떤 곳인가요?

- 단추를 제작하는 중소기업 두양의 회장님과 4-5년 전쯤 이태리 여행을 갔습니다. 그분께서 그해 6월쯤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학교를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회장님은 북촌마을에 있는 한옥 2채와 100억원 상당의 기부룰 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건명원이 시작되었죠. 인문, 과학, 예술이 다 있어야 했기 때문에 최진석 교수, 김개천 교수, 김대식 교수, 주경철 교수, 박훈 교수, 최무영 교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첫 기수에 30명을 뽑는데 900명이 지원했습니다.
  건명원은 출석을 꼼꼼히 봅니다. 라틴어와 도덕경 원문을 외워 매번 시험을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기수에는 36명 중 16명만 졸업했습니다. 학생 선발은 블라인드로 진행됩니다. 학력이나 여타 배경은 보지 않습니다. 인간이면 됩니다. 이외에 심층면접 역시 실시합니다. 3시간 동안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에세이를 써야 하죠. 지난 주 일요일 심층면접에서는 ‘추상이란 무엇인가’, ‘전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주제로 심층면접을 진행했습니다. 첫 기수 때는 학생들에게 여행 경비로 500만 원씩 지원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여행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2기부터는 안 주고 있습니다. (웃음)
  수요일에는 4시간씩 최진석 교수가 도덕경을 강의하고, 저는 키케로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토요일에는 8명의 교수가 돌아가며 2시간씩 강의를 진행합니다.

 

Q. 도덕경과 라틴어 원문을 외우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 원문을 외우는 일을 싫어하는 학생도, 이해 못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운다는 건 내 세계관과 다른 언어와 표현을 가진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세계관이 자기인 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 공부하죠. 자기 편견을 강화하면서 더욱 무식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외움 중에서 인내, 근면을 배우게 되기 때문에 매 시간 도덕경과 라틴어 원문을 외우는 시험을 치고 있습니다. 

 

Q. 건명원 교육과 기존 대학 교육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 건명원은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도덕경이나 라틴어 원문 역시) 언어를 가르치려는 게 아닙니다. 건명원은 독립적 인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를 계속 묻게 하죠. 혹시 눈치 보고 온 것은 아닌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지…. 왜냐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는 (현재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당장 그 일을 그만두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라고 말해줍니다.
  2기에는 탈북자 학생이 있었는데 가장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은 건명원 공부에 매달렸기 때문이죠. 3기에서는 두 명의 자녀를 둔 육군대위가 있었습니다. 건명원 과정을 통해 저는 그분이 변하는 걸 느꼈습니다. 공부란 이같이 간절해야합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도록 돕는 것이 우리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대기업에서 채용을 위한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 거절했죠. 이 학생들을 기업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Q. 건명원 첫 기수와 현 기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시간이 가면서 건명원 선생님들도 건명원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원자들의 간절함도 커졌습니다. 건명원에서 50퍼센트 밖에 졸업 못하고 공부한다는 소문이 났는데, 오히려 이번 기수에도 경쟁률이 10 대 1이 넘었습니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구나’를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건명원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방금 예로 드셨던 육군 대위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 그분은 매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시험도 매번 거의 만점을 받았죠. 육군대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건명원 공부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못 했겠죠.
  제가 바라는 건 건명원 과정을 통해 자기 자리에서, 그 학생이 더 좋은 군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KBS에서 건명원 강의를 1년 동안 방송했던 적이 있습니다. (생각의 집, 건명원) 당시에 제 입장에서도 건명원은 대한민국에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KBS를 찾아가 방송하자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꼭 필요한 일이라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한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알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요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가 갑자기 좋아졌기 때문이죠. 제가 예술에 대해 아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요즘은 자코메티에 대한 책을 쓰고 있고, 4월까지 마무리해서 책을 내려고 합니다. ‘네가 그 조각가를 어찌 아냐?’라는 질문에 내가 좋아해서 그렇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십시오. 교수들도 전공했다고 해서 그 전공만 일생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든 공부하면 됩니다. 저는 4세기 산스크리트어 문헌 요가 수트라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아한다면 누구보다 많이 공부하면 될 일이죠. 공부하는 것이 내 전공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Q. 북촌이라는 자리가 건명원에 주는 영향이 있습니까?

- 한국의 전통적 분위기가 있죠. 이에 더불어 회장님이 기부한 그 집은 재벌이 아닌 분이 자수성가해서 얻은 집입니다. 그분은 대한민국이 20년 안에 망할 거라고 생각하셨죠.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기가 모은 재산을 통해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한국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매우 비장했죠.
  실제로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아프리카, 케냐보다 낫지 않습니다. TV를 보세요. 연예인, 먹는 프로그램, 흉내 이외엔 아무 것도 없죠. 인문학 강의조차 똑같은 내용만 반복됩니다.
  오 회장님은 이런 식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셨고,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셨습니다. 자기 자식에게는 단돈 1원도 안 물려줬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교수들도 비장할 수 밖에 없죠. 최진석 교수의 경우 서강대를 그만두고 건명원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Q. 교양 인문학이라는 추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그러한 추세는 이미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내용보다는 인문학적 성찰이 중요합니다. 인문학적 성찰이란 단순히 고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글을 썼을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인물들에게는 몰입과 열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인문학은 개인에 초점 맞춰야 합니다. 개인의 수련, 훈련을 통해 이런 작품들이 탄생하는 것이죠. 요즘 인문학이라는 건 마치 상품처럼 여겨집니다. 인문학이라면서 유명한 작가들이 모여서 술 먹고 얘기하며 그것이 ‘인문학’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인문학은 왜곡된 형태의 대중을 위한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은 ‘정색’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경우 무대 위에서 한 시간 연주하기 위해 1년 내내 연습하죠. 인문학 역시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술 먹고 음식 먹으며 얘기하는 것은 인문학이 아닙니다. 방송이 대중교육, 민주교육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20년 전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들은 맨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남에게만 집중하고 있죠. 자기에게 몰입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서울대 학생들도 여태까지도 많이 외워서 서울대 들어왔는데, 그런 식이면 스마트폰이 서울대 학생들보다 똑똑할 겁니다. (웃음) 독립적이고 인내를 가진 학생, 두 발로 걷는 학생을 뽑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대학 교육의 한계가 왔다고 봅니다.

 

Q. 교양 인문학이 대학에서 연구하는 인문학보다 ‘얕다’는 것인가요?

- 교양 인문학이 얕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을 공부한다면, 번역된 시편만으로는 시편에 대해 잘 모를 것 아닙니까. 히브리어도 알고, 단어 하나 하나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시편을 다윗이 지었다면 다윗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시 자체의 가치가 느껴지겠죠. 이런 것을 전달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입니다. 그러니 교양 인문학과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은 다른 것이죠.
  또 그런 시를 쓰도록 자극하는 것, 인간의 심오한 연구를 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를 관찰하는 것, 나도 내 삶에서 그렇게 해야겠다고 용기를 주는 것이 인문학에 필요한 정색입니다. 이를테면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은 자기가 읽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에 대해 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왜 그런 글을 썼을까? 왜 서양의 고전이 되었을까? 왜 일리아드 첫 번째 장에 ‘분노’ [mênis]라는 단어를 썼을까?’ 등을 공부하는 것이 인문학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인문학은 끝이 없습니다. 항상 좋아하는 일을 매일 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이 두 개가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일 전쟁 나서 죽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오늘을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날처럼 사는 게 제 모토입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40분을 명상하며 운동한 뒤에 ‘오늘 내가 뭘 하지 말까’를 생각합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해야 되는 일을 하게 됩니다.

 

Q. 정색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 ‘색’이란 가변적인 것입니다. ‘색’은 호숫가 물결과 같습니다. 내 마음이 호수라고 생각하면 보물은 저 밑바닥에 있습니다. 보물을 찾으려는데 물결이 흔들리고, 그 물결은 보물을 보지 못 하게 합니다.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정’입니다. ‘정’은 하늘 있는 것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만을 하는 것이 바로 ‘정’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오늘 글 하나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오늘 ‘정색’하고 쓰는 도중에 이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죠. 나에게 가장 우선되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Q. <인간의 위대한 여정>에서 말씀하셨던 이타심이란 무엇인가요?

- 제가 좋아하는 진화생물학자 E.O. 윌슨은 2012년 <지구의 정복자> (Social Conquest of Earth)라는 책을 썼습니다. 윌슨은 이 책을 통해 1974년 자신의 저서 <사회생물학> (Sociobiology : The New Synthesis)의 이론을 완전히 엎어버렸죠. 당시 <사회생물학>의 핵심 이론은 혈연선택(Kind Selection)으로 생물이 살아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유전적으로 가까운 존재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에 1975년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썼습니다. 저는 도킨스의 생각이 틀렸다고 봅니다. ‘나를 움직이는 건 이기적 유전자’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고 봅니다. 인류 문명을 보면 이타적 행위에서 비롯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타심을 어머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사족 보행에서 이족 보행으로 진화했죠. 또 인간에게는 원래 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냥에 적합하게끔 진화하기 위해 몸에서 털을 없앴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이족 보행을 하게 되면서 자궁이 좁아지고 아기는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말은 태어난 지 30분 만에 걸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인간은 1년 이상 자립하지 못 하죠. 인간은 매우 취약하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전폭적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생존하지 못 합니다. 이것이 이타심이며 이러한 이타심이 인류를 여기까지 진행시킨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윌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찰스 다윈의 약육강식 등은 경제학, 경영학에 속합니다. 여전히 기업에서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얘기하는데 이는 모두 옛날 얘기일 뿐입니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 때 다른 이들과 경쟁했나요? 아닙니다. 위대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경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을 진리라고 착각합니다. 과학은 과정입니다. 지금 첨단과학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10년이 지나면 거짓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교 근본주의자들처럼 과학 근본주의자들 역시 존재합니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 10년 있으면 이 의견 역시 바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진리라고 말하는 건 거짓입니다. 차라리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진리에 가깝다고 봅니다. 내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숫자는 과학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러한 것들에 만족하고 맙니다.
  암흑 물질이 우주 90퍼센트를 차지한다는데, 암흑 물질에서 ‘암흑’이라는 표현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모른다는 것이죠. 

 

Q. 이러한 이타심이 개인이 아닌 집단에도 있을 수 있나요?

- 집단이란 개인의 집합체입니다. 그리고 집단화는 이데올로기로 빠지게 되죠. 우리가 필요한 것은 위대한 개인입니다. 깨어있는 개인이 많아져야 합니다. 서울대도 개인을 기르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데올로기에 빠지고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비극작가들이 했던 일이 바로 이타심과 연관된 민주주의 교육이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철학과 문학이 싸웠죠. 문학은 대중교육을 통해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대중교육이란 그리스 비극을 뜻합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살라미스 해전을 다루고 있는 그리스 최초의 비극인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들>에는 그리스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비극에는 크세르크세스라는 페르시아 왕이 등장하는데, 극중에서 크세르크세스가 잘못을 시인하며 우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자기 아버지, 자식을 죽인 왕이 울자 다 같이 웁니다. 이것이 바로 카타르시스를 통한 교육인 것입니다. 남의 입장에 서보는 동정(compassion), 이타심을 갖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최근 원전 추가 건설에 대한 논의를 숙의 과정을 통해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숙의과정이 필요합니다. 숙의가 정착되지 않으면 사회나 개인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Q. 한국 사회는 어째서 역지사지의 자세를 취하지 못 하고 있나요?

- 우리 사회가 너무 경쟁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존만을 강조한 것이죠. 서울대 역시 수월성만을 생각합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은 앉아서 침묵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를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훈련을 뜻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죠.
  여러 학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천문학은 달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고, 해양학은 물고기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배우지 못 한 사람은 자기 편견만을 강화하죠.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무식을, 즉 편견을 강화하려 공부하고 그 이유 때문에 서울대 역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Q. 한국사회는 이타심 부족한가요?

- 애초에 이타심을 중요하다고 배운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경쟁만 해왔죠. 이타심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베풀고, 사랑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나를 보는 것이 이타심입니다. 조선은 소수가 결정을 내리는 왕정이었기 때문에 이타심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란 동정(compassion), 즉 공동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어려운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통용되고 논의될 수 있는 공동체의 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그런 공동체가 없습니다. 방송, 신문, 교수 공동체에서조차도 그런 공동체가 없고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지 못 하고 있으며 지식인들 역시 무기력한 상태입니다. 저는 건명원을 통해 시스템 밖에서 다른 것을 시도해보려는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여태까지 방향 전환이 없었을까요?

- 왕정 문화가 전 정부까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이 정부도 어느 정도 포퓰리즘적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심을 잡아야 나아가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조선시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질서, 예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자유, 인격적 대우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런 것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몇 사람이 모든 것을 하는 왕정 국가였기 때문이죠.
  학생들 역시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눈치를 보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인터뷰 진행 : 지광해(불어불문학과 석사 수료), 이정연(비교문학 협동과정 석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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