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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봉준수(영어영문학과) 교수 인터뷰

2018-10-19l 조회수 14169

Q. 우선 2018년 1학기 교육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학자로서 연구 업적을 통해 주목받을 때와 교육자로서 그 성취를 인정받을 때의 감흥이 사뭇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교육상을 받으신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물론 상 받은 것은 기쁘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부분도 많아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상 후에 교육이나 교수법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일일이 감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제 딴에는 예전에 비해 크고 작은 실험적인 시도들을 더 많이 하게 되는데, 기대하는 대로 되진 않아요. 그런 점에서 머릿속이 좀 더 복잡해지고 수상 자체도 조금 부담은 됩니다. 아마 교수법에 대해서 더 고민하라고 숙제처럼 주어진 상 같아요.
 

Q. 선생님께서 현재 하고 계신 연구나 관심 갖는 주제가 있다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 현재 엘리엇에게 끼친 단테의 영향에 관심이 있는데 당분간은 이 주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생각입니다. 이는 저와 같은 엘리엇 전공자에게는 친숙한 주제이지만, 두 작가들 사이의 영향관계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영미모더니즘이라는 커다란 맥락 안에서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단테는 엘리엇이나 파운드, 조이스와 같은 주요 모더니스트들이 공통적으로 중시했던 작가라는 점이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또 다른 연구 주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시에서 미국적 특성을 찾는 작업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철학자이자 문인인 에머슨이 휘트먼, 프로스트, 스티븐스와 같은 주요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과정에서 일종의 미국적 전통이 형성된다는 비평적 전형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내년 봄에는 이 주제로 대학원 세미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서정시를 중심으로 장르이론도 꾸준히 살펴보고 있고 전기와 여행기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현대영미시 전공자이지만 다른 시대나 장르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감각을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애쓰는 편인데, 어느 정도의 폭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공 분야에만 몰두하는 것은 불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Q. 선생님께서는 꼭 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문학들을 본다고 하셨는데, 장르이론에 대한 선생님의 연구도 그런 점들과 연결이 되나요?

 
 - 장르이론에 대한 제 관심은 일단 존재론적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가령 가장 순수한, 혹은 좁은 의미의 서정시는 작품 내에 청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정시에서의 발화는 누가 들으라고 하는 발화가 아니라는 의미이지요. 감정이나 상념을 주체하지 못하는 발화자가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말들이 가장 순수한 의미의 서정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접근해선 그 존재양식이 제대로 설명되는 않는 시들도 얼마든지 있어요. 그래서 시와 다양한 방식으로 겹치거나 떨어져 나가는 소설, 그리고 얼핏 보기엔 서정시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외면화된 장르인 희곡까지, 여러 장르적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거나 불쑥 두드러지는 양상에 자연히 주목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희곡에서의 독백이나 오페라의 아리아, 뮤지컬에서의 "I AM" song 같은 것들은 시간을 타고 흐르는 플롯을 잠시 중단시키는, 일종의 서정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정시는 시의 하위 장르들 가운데 가장 친숙한 것이기는 한데 – 혹은 친숙하다고 착각을 하게 되는 장르인데 – 막상 정의를 내리거나 이론적으로 접근하려 할 때 우리는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지난 20년 동안 영미권에서 서정시라는 장르에 대한 다양한 이론서가 꾸준히 나오는 것이 서정시에 대한 이론적 논의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암시한다고 봅니다.
 

Q. 지금 영미시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 번역이 많이 되어있는 편인가요?

 
 - 초창기 한국 영문학자들의 연구는 대체로 시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래서 소설이나 희곡보다 시 중심으로 번역이 이뤄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요. 지금까지 많은 영미시인들이 번역되었지만, 번역은 대체로 30년 정도가 유효기간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거든요. 각 세대는 그 세대에 맞는 번역본이 필요하고, 결국 누군가는 나와서 다시 번역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1950년대에 출간된 번역본이라면 아무리 정확하고 유려하더라도 요즘 대학생들이 읽기 힘들 거예요. 단어 선택은 물론이고, 문장 구성도 그렇고, 글에서 감지되는 호흡이나 숨결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에, 특정한 시인이 번역되어 있냐는 물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즘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하겠지요.
 

Q. 선생님께서 특별히 ‘현대’라는 시기에, ‘영미문학’에, 그중에서도 ‘시’라는 분야를 연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시’를 연구한 건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학부 2학년 때 생전 처음 현대영국소설 과목을 수강한 후 나중에 소설을 전공하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한 적도 있는데, 이는 물론 완전히 무식한 상태에서 한 말이었지요. 제 학부 졸업논문은 비평이론에 관한 것이었고, 석사논문에서도 비평이론을 다뤘는데, 석사 마치고 2년 후에 미국유학을 갈 무렵에 현대영미시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비평이론에 대한 관심을 거둔 상태로 현대영미시 전공자가 된다는 식의 변화는 아니었고, 그냥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박사논문을 쓸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 정도?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도 그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서구, 특히 영미권의 급변하는 역사가 흥미롭게 느껴졌고, 그 맥락 속에서 영미시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살펴보는 일이 재밌었어요.
 

Q.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문학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는 위치와, 앞으로 문학이라는 분야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이 질문에 대해 아마 국문학 전공자가 저보다 더 잘 대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말해보자면, 우리나라에서 문학 연구자들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마 문학의 위상과 큰 차이가 나진 않겠지요. 우선 문인들이, 나아가서 예술가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상기해볼 필요가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든, 작곡을 하든,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든, 일반인이 예술가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보여주고, 이는 예술가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후생복지정책으로 이어집니다. 영국의 경우 사이먼 래틀이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시절에 버밍엄의 택시기사도 연주 일정과 내용을 훤하게 알고 있을 정도였지요. 콜롬비아는 국민총생산이나 1인당 국민소득에 있어서 우리보다 훨씬 뒤지는 나라이지만 세계 각국의 시인들을 초청하여 대규모의 시 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고, 국민들의 반응 또한 무척이나 뜨겁습니다. 이런 예들은 우리의 문화적 현실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문학은 어떻게든 유지야 되겠지만 작가 지망생이 지금처럼 폐쇄적인 틀에 자신을 밀착시킬 때 등단할 수 있다면 그리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는 없지요. 이러한 폐쇄적인 과정은 달리 보면 매우 허술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 점이 또한 문제이지요. 독자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주관적인 인상이긴 하지만 예전만큼 시가 읽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대학생들이 창비나 문지 시선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던 시절은 지났지요. 요즘 대학생들은 예전에 비해 걱정거리도 많아진 것 같고, 차분히 지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가 힘든 환경으로 세상이 급변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래도 전공분야를 떠나서 시나 소설 등을 통해 뭔가 지적이고 감성적인 공통분모나 공동의 화두 같은 것이 만들어질 수는 없는지 궁금해요.
 

Q. 사제지간으로 보자면 선생님이시지만 학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배이기도 하십니다. 선배 학자로서 후배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 몇 해 전부터 학문으로 뭔가를 이루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직업으로서 학문을 택한다면 지구력을 가지고 먼 거리를 걸어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겠지요. 현실적 관점에서 보면 학문의 길은, 특히 인문학 분야는 박사학위를 취득해도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는데, 이런 걸 다 감안하고 대학원에 와서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하는 거예요. 박사가 되어도 소위 '비정규직'으로 몇 년을 보내야 하는지 예측하기 어려워요. 바로 이런 어려움 때문에 잠재적으로 학문후속세대가 되는 대학원생들은 안쓰럽고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앞으로의 연구나 저술 활동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분간 엘리엇과 단테를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살펴보고 에머슨을 출발점으로 삼아 미국시의 흐름을 재검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일반 독자들을 위하여 엘리엇의 『황무지』에 대한 일종의 지침서를 쓰고 있는데, 전공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게 지침서 중간 중간에 최근의 비평적 동향을 조금씩 논의할 생각입니다. 번역을 대충 해놓기는 했지만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것도 있는데, 어서 마지막 손질을 해야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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