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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정숙(서양사학과) 교수 인터뷰

2018-07-04l 조회수 7233

  
 

Q. 한정숙 교수님께서는 오랫동안 역사를 공부해오셨습니다. 처음으로 사학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그 때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을 뜻하며, 또 공부하는 당사자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 네. 제 전공에 대한 질문이네요. 저는 사실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문학을 공부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영문학에도 관심이 있고, 독문학에도 관심이 있고 그리고 그리스 고전 비극에도 관심이 있고 그랬어요. 약간 두서는 없었지만요. 그런데 고등학교 2-3학년 무렵에 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계셨는데요. 여기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를 나오셨고, 굉장히 성실한 분이셨어요. 그 때 국사를 들을 때 조선시대사 이런 것은 외우는 것이 많고 재미가 좀 없었지만….(웃음) 조선말에서 일제 식민지배 시기로 넘어가는 내용에 사람을 각성시키는 요소들이 들어있었어요. 그 때는 ‘한국 최근세사’라고 명칭을 붙이기도 했는데요. 그 시기 역사를 들으면서 어떠한 피 끓는 기운 같은 것 그러니까 어떻게 한 나라가 이렇게도 처절하게 망하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또 그것에 맞서서 싸우기도 하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 하는 물음 같은 것을 품게 됐어요. 그래서 대학에 가서 한국 근대사, 그 때 용어로는 한국 최근세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그러고서 대학에 계열별로 들어와서 동·서양사 및 한국사를 다 공부를 하는데, 강의를 들어보니까 또 서양사가 재미있더라고요. 독일사도 듣고, 러시아사도 듣고 했어요. 제가 75학번인데 그 때가 유신 시대였어요. 학생들이 시위도 정말 많이 하던 때였지요. 그 때 강의를 듣다보니까 인텔리겐치아(intelligentsia)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굉장히 관심이 갔어요. 자기 사회의 문제점을 고치고 해결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온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79년 유신 말기 까지는 학생운동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80년대부터 우리 주변에 있던 학생 운동하고 시위하던 친구들, 동료들이 시위하다가 제적당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또 그 때는 유신 정권에 대한 반발이 전반적으로 있었지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커졌어요. 그래서 대학 3학년 말부터 이제 졸업논문을 써야하는데 그러면 한 번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에 대해서 써봐야겠다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사학을 공부하게 됐고요. 역사를 공부하면서 처음부터 역사는 어떠한 학문이냐 하는 메타 역사적인 질문을 갖고 들어간 것은 아니고, 막연하게 ‘역사가 심판을 하리라’ 이러한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유신 말의 한국 정치에서 보게 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여러 현상들이 반드시 역사에 의해서 바로 잡힐 것이다. 뭐 이런 식의 생각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프리드리히 쉴러 같은 사람은 이런 것을 두고 “세계 역사는 세계 심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반드시 역사에 의해서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에요. 계몽사상 시기의 전형적인 사고라고 볼 수도 있어요. 정의를 세우는 과정으로서의 역사랄까요.
  그런데 그 후에 공부를 하다보니까 역사라고 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이 프랑스 아날학파라고 하는 역사학자들의 학파가 가졌던 생각이에요. 마르크 블로크 같은 사람이 이러한 학파에 해당해요. 마르크 블로크는 정말 자기 목숨을 던져서 나치에 맞서서 싸운, 정말 나치에 의해서 처형당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세계 심판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은 아니었어요. 이 사람은 인간을 이해하는 종합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것이 제게 더욱 와닿는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과거 인간의 삶의 총체가 역사학이지요.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고 또 그 생각과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왔고 하는지의 그 모든 과정이 역사인데, 그 속에서 사람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를 시간의 변화 속에서 파악하는 학문이 역사학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게 철학이든 어떠한 학문이든 다 인간을 이해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을텐데요. 역사학은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종합체로서의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특징이 있어요. 옛날 사람의 사고방식은 지금의 사고방식과 다르잖아요. 인간이라고 하는 유(類)적 공통성은 다 가지고 있지만. 사회 구성도 다르고 그 사회 속에서 인간 간의 관계도 다르지요. 예컨대 젠더 관계 같은 것도 역사 속에서 정말 많이 달라졌잖아요. 남자는 이러하고 여자는 이러하다 하는 것들. 인간 그룹에 대한 이해도 물론 달라지겠지요. 이렇게 달라지는 과정 속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 자체도 달라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그러한 생각들을 합니다. 또 시간적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사회마다 인간의 삶이 다 달라요. 문명권마다요. 유교문명권, 기독교문명권. 기독교 문명 중에서도 정교 쪽이랑 개신교 쪽이 다르고. 문명권들마다 인간에 대한 이해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른데 역사를 공부하면서 각 문명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해하게 되요. 이렇게 세계사를 이해하다보면 서로 다른 사회들끼리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마르크스 사관을 비롯해서 이러한 진보의 과정으로서의 역사, 생산양식의 변화 같은 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그 쪽으로 공부를 주로 했어요. 그러다가 아까 이야기한 아날 학파의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으로서의 역사’라는 쪽으로 조금 더 관심이 많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말씀하셨듯이 한정숙 교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역사 중에서도 러시아사학을 전공으로 삼고 계시며 또한 현재 한국 러시아사학회장을 맡고 계시기도 합니다. 여러 다양한 역사 중에서도 러시아사학이 갖는 특징과 의의가 무엇이며, 러시아사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인가요? 여러 분야를 두고 그 중에서 하나의 전공을 선택하고자 할 때 러시아사학이 갖는 매력은 어떤 것인가요?

- 아까 제가 러시아사를 왜 전공으로 선택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빠트린 내용이 있어요. 제가 막 대학 들어왔을 때는 러시아사학 전임 교수님이 안 계셨어요. 제가 대학원 들어가고 나서야 전임 교수가 들어오셨는데요. 바로 이인호 선생님이셨지요. 그 분이 외부 강사로 출강을 해서 러시아사를 강의하셨는데, 그 때는 뭐 10월 하순부터 휴교가 됐었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강의를 절반만 듣거나 2/3만 듣거나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은 학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사 강의를 들을 때도 혁명까지 진도가 나가지를 못하고 19세기 인텔리겐치아까지만 듣게 되었었어요.(웃음) 그런데 이제 그 19세기 인텔리겐치아의 역사가 재미가 있었던 것이지요. 근데 사실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셨어요. 어머님이 『부활』 같은 작품 이야기도 해주셨고, 아버지는 또 일제 강점기 때 공부를 하셨던 분이셔서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러시아 문학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제 해방 이후에 그것들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니까 아버지가 러시아 문학 전집 같은 것을 집에 사다 놓으셨었어요. 그런 것을 읽다 보면 역시 19세기 인텔리겐치아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 때부터 관심이 정말 많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한국에서 러시아사를 공부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사를 전공해볼까?” 아니면 “독일사를 전공해볼까?” 이러던 중이었는데, 마침 대학에서 러시아사 강의를 듣고 나서 “아! 나는 러시아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한국 사람들이 19세기 말 이래로 러시아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러시아를 또 하나의 모범으로 삼는 경향도 굉장히 강했고요. 또 다른 유토피아로요.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하나는, 일본에서 표트르 1세 이후의 러시아를 부국강병의 모범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근대화를 이룬 러시아가 아시아에 조금 더 적합한 모델이 아닐까 하는 식의 사관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하나의 러시아관이 있었고요. 또 다른 하나는, 이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의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를 수립했을 때의 소련이 식민지 조선의 해방을 원하는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야말로 이념의 지표가 된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영향 아래에서 조선 공산당, 고려 공산당 뭐 이러한 당들도 생겼고요. 이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가 전혀 아닌 지식인들도 러시아 혁명에 굉장히 열광하는 모습들이 있어요. 2.8. 독립 선언이라고, 일본에서 3.1. 운동 이전에 작성된 독립 선언이 있어요. 2.8. 독립 선언에도 보면 ‘러시아가 전제의 사슬을 끊고 해방의 길로 나아갔도다.’와 같이 러시아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구절들이 있어요. 이것이 이광수 같은 사람이 쓴 것이에요. 이광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잖아요? 물론 그 때가 1919년이니까 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1년 반도 안 되기는 했지만, 그 짧은 사이에도 혁명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아시아 지식인들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에요. 또 독립운동 하셨고 임시정부 대통령도 지냈던 박은식 같은 분도 『독립 운동 혈사』에서 보면 러시아에 대해서 ‘러시아의 혁명당이 붉은 깃발을 들고 전제의 폭압을 끊고 해방의 깃발을 높이 들었도다.’라고 적기도 하셨었어요. 박은식이 그 구절을 『독립 운동 혈사』에 한문으로 적었었는데 해방 후에 다시 한글로 출판을 하면서 그 부분을 싹 뺐어요. 그래서 원래는 그런 구절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웃음) 그런데 이 분들은 다 우파잖아요. 그런데 이 분들에게도 러시아 혁명이 불러일으킨 열광이 굉장히 컸던 것이에요. 이처럼 한국의 지식인 전반이 러시아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또 러시아 문학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인들이 외국 문화에 관해서 갖는 심상에 정말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 바로 러시아 문학인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우리가 해방 후에 이렇게 분단이 되고 나서는 유토피아의 모델, 적어도 남한에서는, 영미 내지는 자유주의 쪽에서 찾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러시아를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연구나 언급이 오랫동안 차단되었어요. 다만 대학에서 러시아에 대한 강의는 가능하다고 하는 조금 특이한 양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러시아사 전공하신 분이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79년에 부임하셨는데, 여기에 오면 어쨌든 러시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책도 읽을 수가 있었지요. 그러다가 85년부터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었는데 그 때부터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고조가 됐어요. 그래서 전공자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뭐랄까? 다른 학과에서 접하기 어려운 공부도 할 수 있고 또 다른 유토피아에 대한 전망도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의식의 지평을 굉장히 넓힐 수 있는 그러한 분야가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소련 해체 이후로 굉장히 많이 바뀌기는 했지요. 그래서 제가 러시아사 수업을 시작하는 첫 시간에 ‘러시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 또는 러시아 역사상의 인물 중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자유롭게 써내라고 해요. 그러면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학생들이 메모지에 적어서 내는 것이 주로 ‘추위’, ‘가난’ 뭐 이런 것들이에요. 표변을 한 것이지요. 또는 뭐 ‘보드카’….(웃음) 이처럼 문명의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고 아주 주변적인 작은 현상을 갖고서 러시아와 동일시하게 돼버린 것이에요. 이러한 현상이 또 오래 지속되었지요. 적어도 15년 정도는 말이에요. 그런데 작년이 러시아혁명 100주년이라서 우리 서양사학과 학생들이랑 러시아 여행을 다녀왔어요. 원래 동유럽을 가거나 이탈리아 혹은 독일을 갔을 때에는 참가자가 한 12-3명 정도였어요. 그런데 작년에는 무려 26-7명이 갔어요. 국사학과 교수님이랑 대학원생도 함께 가기는 했지만요. 어쨌든 지원자가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막 돌고 돌아서 가는 비행기를 선택했었지요.(웃음) 그 때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또 러시아의 매력에 굉장히 많이 빠져들더라고요. 붉은 광장이 정말 아름답더라 뭐 이런 것들.(웃음)

 

Q. 한정숙 교수님께서는 러시아사학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여성학 협동과정의 겸무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십니다. 또한 2010-13년에는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장직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여성학(gender studies)이 무엇인지 생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 드는데요. 여성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이러한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어떠한 것인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 여성학이란 기본적으로는 사회 내 젠더 관계에 대해서 성찰하고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젠더 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모순과 관계의 양상들을 살펴보는 학문이에요. 모든 학문들이 그렇잖아요. 핵심적인 개념으로서 예컨대 노동 개념이 있고 이러한 노동에 관한 학문이 있으면, 그 학문에서는 노동이라는 현상을 중심으로 그로부터 비롯되는 사회적인 문제점들 살펴보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도 하는 것이지요. 물론 학문적으로 고찰하는 것 자체가 학문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기는 하지만요. 여성학이라고 하는 것도 젠더라고 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고찰을 하는 것입니다. 젠더로부터 비롯되는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 가지는 어떠한 관점 그리고 정체성.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문화. 사회적으로 발생되는 여러 가지 대립, 갈등, 모순들. 또 그것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정체성. 이 모든 현상들을 대상으로 해서 생산되는 문학작품. 또는 철학자들의 작업 사상. 이러한 모든 인간의 활동을 대상으로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말이에요. 이것이 이제 여성학(gender studies)인데, 여성학이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요. 꼭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도 젠더 관계를 초점에 놓고서 고찰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주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여성이 사회에서 불공정한 대접을 받고 있으며, 이것을 극복해야 된다는 입장이지요. 그래서 여성학은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두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는 해요. 그런데 논자에 따라서는 그것이 아니라 양성 관계를 출발점으로 놓고 보겠다고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성학 자체는 접근하기에 따라서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대학교에서 여성학 협동과정은 1999년에 처음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년이면 20주년이 되지요. 여성연구소는 그로부터 2년 후인 2001년에 생겼습니다. 여성학 협동과정은 소속이 사회대학으로 되어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협동과정이기 때문에 인문대학 소속 교수님들도 많이 참여하고 계시지요. 저 뿐만 아니라 조은수 교수님, 조은정 교수님 그리고 최윤영 교수님도 참여하고 계시지요. 그리고 소장도 인문대 교수님들이 많이 했어요. 제가 인문대 교수로는 먼저 했지만, 그 이후로 조은수 교수님도 하셨고요.
  제 경우에는 대학원에 처음 들어간 것이 1979년인데, 79-80년 이 무렵에 대학원에 다니던 같은 학번의 여학우들이 “우리 여성학 한 번 공부해보자!”라고 했었어요. 그 이전에도 그냥 조그만 학회나 소그룹으로 모여서 이것저것 공부를 많이 했었어요. 경제사를 공부하기도 하고 같이 헤겔을 읽기도 하고 했었지요. 그런데 그 때 여학우들이 “이번에는 한 번 여성학 공부해보자!” 뭐 이렇게 된 것이지요. 그 때 철학과 대학원에 다니던 친구도 둘인가 있었고,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그리고 사회학과, 영문학과 친구들도 있었어요. 인원이 많지는 않았어요. 많이 모이면 10명 가까이 되고 적게는 대여섯 명이었어요. 그렇게 모여서 이효재 선생님 책도 읽고 다른 책들도 많이 읽었어요. 저도 그 그룹에 참여하면서 구경도 조금 하고 그러면서 “이것은 참 새로운 이야기구나!”싶었지요. 나중에 85년 정도에는 동료들 그리고 후배들이 함께 참여해서 「여성」이라고 하는 무크지도 냈어요. 그게 85년에 나오고, 88년에 나오다가 오늘날에는 「페미니즘 연구」라고 하는 정식 학술지로 발전을 했지요.
  제 전공은 사학이지만 그러한 활동을 할 때에는 학제 간 논의의 장에 참여하는 셈이었어요. 다양한 전공의 젊은 여성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였지요. 그 때만 해도 오늘날처럼 전투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여성주의를 그냥 공부를 해 본 것이었지요. 그런데 우리 후배들을 살펴보면 “여성주의를 공부한 다음에 정말 세계관이 바뀌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이러한 친구들이 여성주의에서 출발해서 노동 운동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저로서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중의 하나로서 말하자면 새로운 지적인 작업으로서 접근했었어요. 조금 밍밍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웃음) 그래도 이러한 공부를 하다보니까 조금 더 투쟁적인 동료들도 만나게 됐어요. 후배들이 여성학 공부를 하면서 아주 적극적이고 더 전투적이게 돼서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고요. 그런 현상을 보면서 저도 오히려 배우는 것이지요. “여성도 이렇게 용감해질 수 있구나!”하는 것을 말이에요.
  저는 사실 대학에 일찍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학에 일찍 자리를 잡은 경우에 저희 세대는 이러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 “전두환 군사정권 물러나라!” 이런 투쟁은 열심히 하는데요. 대학에 일찍 자리를 잡은 여성 교수들이 여성주의 쪽으로 대단히 투쟁적이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에 유학을 갔습니다. 그 때는 러시아사에 집중하기로 하고 갔었지요.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서울대학교에 부임해서 러시아사를 가르치다가 여성학협동과정이 생겼어요. 그곳에서 “당신도 참여하세요.”라고 하니까 이제 저도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그 때 저는 “당연히 도와야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참여하면서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또 여성연구소가 생기니까 또 같이 돕는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했지요. 그런데 대학원에서 여성사연구, 페미니즘과 민족주의 또 국가와 여성 뭐 이런 주제들로 강의를 하게 되니까 이제는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 그냥 친구들과 책 읽는 것하고 대학원에서 강의하는 것이 전혀 다르잖아요. 그래서 준비를 열심히 하다보니까 전공을 하나 더 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렇게 해서 공부도 하고 논문 지도도 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 박사논문을 쓴 학생 중에는 르완다에서 온 학생도 있었어요. 2013년에 초에 온 조세핀이라는 학생인데요. 르완다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해서 쓴 논문이에요. 르완다에서 제노사이드가 있었잖아요. 그 때 여성들이 엄청나게 많이 집단 성폭력을 당했어요. 그 이후에 르완다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변화했고, 여전히 어떠한 문제점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다룬 논문이에요. 사회과학적으로 볼 때 그야말로 최신 현상에 관한 논문인데, 이런 논문의 지도교수도 맡게 되고 그랬습니다. 또 여성 연구소에서도 여성 시민들을 상대로 하는 시민 인문 강좌 같은 것도 진행했었습니다. 이런 것도 호응이 참 좋았어요. 정원이 한 150명 정도 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해서 다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Q. 요즘 여성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상당합니다. 여성주의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더 배우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학계에서 여성학을 공부하시는 분들도 이러한 대중적인 현상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요즘은 불편함을 갖는 사람들도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 이전에는 여성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워낙에 미미한 현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아예 무시하고 언급들을 안했어요. 뭐랄까요.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이렇게 여성학을 공부하거나 여성주의자가 된 사람들이 수적으로 적은 문제도 있기는 했지만, 이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범위도 조금 좁았던 것 같습니다. 문제 자체가 말이에요. 사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들이기는 해요. 예컨대 노동 문제들.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문제 같은 것들 말이에요. 사실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문제가 아직도 완전히 성취된 것도 아니에요. 예컨대 서울대학교 노동자분들의 경우도 성별 임금의 차이가 지금까지도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에 최저임금 문제 때문에 서울대학교에서도 청소 노동자분들께서 파업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 때 50대 말의 여성 청소 노동자들이, 물론 그 당시 기준이기는 하지만, 한 달에 39만 원 정도를 받았어요. 그런데 당시 남성 노동자들이 그보다는 높게 받더라고요. 6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렇게 굉장히 차이가 있었어요. 지금도 차이가 있기는 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임금 문제를 비롯해서 법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많은 불평등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하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문화적인 영역 그리고 일상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는 문제제기가 거의 없었어요. 예를 들어 가부장제 속에서 설거지는 누가 하고 양육, 육아는 누가 하고 뭐 이런 문제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80년대까지는 이런 문제들이 거의 제기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법적,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평등의 쟁취. 주로 그러한 것들에 집중했었지요. 이러한 현상이 그 당시에 좀 전반적이었던 것 같아요. 앞서 얘기했듯이 학계 쪽에서는 워낙에 인원이 적었고요. 운동 쪽으로 나가신 분들도 80년대 같은 경우에는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전면에 잘 드러내지 않았어요. 여성이 시위를 주도하는 경우들이 있기는 있지만, 그것도 “여성인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여성 고유의 문제 혹은 남녀평등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노동 쪽에서도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가 정말 많지요. 성적인 희롱, 폭력도 비일비재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이런 것 자체를 의제로 내걸기 보다는 가장 열악한 경제적 현실에 주목했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갖는 종류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90년대에도 부분적으로 문제가 제기가 됐지만 200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문제제기가 됐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뭐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다 많이 제기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생각의 틀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익숙하게 살아온 세계관. 이것을 깬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쉽지가 않아요. 쉽지가 않아서 그런 것이에요. 정치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도 있고, 굉장히 공고한 반공주의자가 있을 수도 있고 또 기존의 사고의 틀을 고수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자기와 의견이 다른 경우 굉장히 심하게 반발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예요. 한국 사회가 정말 빠르게 변해요. 나는 내가 아는 세계 속에서 굉장히 착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자기가 고루한 가부장이 되어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너는 절대로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치셨는데, 오늘날 결혼해서 아내와 살아보니까 고루한 가부장적인 남편이 되어있는 그러한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면 불편하고 답답한 것이지요. 그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에요.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데 내가 알아온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과도기의 느낌도 있는 것이고요. 또 남성들의 경우에 지금까지 구축해온 네트워크나 힘의 기반이라는 것이 훨씬 강하잖아요. 이것을 기반으로 반격을 가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미국 사회에서도 90년대 초반에 반격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왔어요. 한국에서도 최근에 반격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반격이 진행되면서 실제로 여성들이 죽는 경우도 있지요. 반발들이 물리적인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조금 그런 것 같습니다.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공포스럽지요. 이것 외에도 문화적인 차원에서 가해지는 폭력도 있을 수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차이는 분명히 있어요. 옛날에 비하면 말이에요. 어제도 뮤지컬을 하나 보러 갔다 왔어요. 여성학 협동과정이랑 여성학 연구소 사람들과 함께 뮤지컬을 보러갔다왔어요. 「레드북」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순전히 창작한 뮤지컬인 것 같더라고요. 영국의 여성 작가를 주인공으로요. 저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줄 알았는데, 내용을 보니까 그것이 아닌 것 같더군요…. 그 여성 작가가 여성의 성과 사랑과 같은 것을 소재로 글을 쓰다가 탄압받는 것을 소재로 만든 뮤지컬인데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맞게 만들어진 뮤지컬이에요. 그 뮤지컬을 많이들 보러 와서 웃고 하는 모습이 이제는 이러한 문제를 굉장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구나. 젊은 세대는 이런 문제들을 굉장히 잘 이해하는 구나. 그러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 뮤지컬에 보면 남성인데 여성처럼 변장하는 등장인물도 있었는데 커튼콜 할 때 제일 박수를 많이 받더라고요. 재미가 있었나 봐요. 배우들도 남녀가 다 있는데, 내용에 보면 19세기 빅토리아 시기의 고루한 남성 중심성을 비꼬는 대사가 많거든요. 그런데 남성 등장인물들도 굉장히 흥겨워하고 재밌어 하면서 그 문제에 몰두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관객들도 그렇고요. 물론 여성 관객이 더 많기는 했어요. 이것이 굉장히 인기가 많아서 제가 보러 갔던 것이 앵콜 공연이었어요. 그래서 젊은 세대는 적어도 이러한 것들이 문제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러한 토양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요. 

 

Q. 앞선 질문에서 말씀드렸듯이 요즘 여성주의에 대해서 더 배우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몹시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성주의에 이제 막 입문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혹시 있으신지요. 추천하고 싶은 도서를 말씀해주시거나 혹은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는 등 자유롭게 해주시면 됩니다.

- 요즘에는 굉장히 많은 도서들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정말 많이요. 그 중에서 몇 권 말씀드리자면, 한국 여성 연구소에서 나온 『젠더와 사회』라는 책이 있어요. 2014년에 나온 책이에요. 또 아주 젊은 세대는 아니고, 40대인 분들인데 김양지영, 김홍미리라는 분들이 쓴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라는 책도 있습니다. 작년에 나온 책이에요. 입문서로는 이 정도의 책이 있는 것 같고요.
  요즘의 인기요? 여성학 협동과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동안은 아예 학생을 뽑지 못하는 학기도 있었어요. 그것에 비하면 최근에는 그래도 또 다시 약간 지원자가 많아졌어요. 하지만 여성학 협동과정이 막 문전성시를 이루어서 문이 부서지는 그러한 학과는 아니에요.(웃음) 문이 부서진 적은 없지만, 그래도 지원자는 꾸준히 있어요. 그것도 각 영역별로요. 예를 들면 경찰대학을 나와서 경찰로 근무하는 현직 경찰이 여성학 협동과정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어요. 여성인 경우도 있고 남성인 경우도 있어요. 현장에서 근무하다보면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찾아올 수 있잖아요. 그러면 이제 경찰이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 사실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를 해야 공정하게 수사할 수가 있는 것이잖아요. 물론 경찰 대학도 나오고 나름 엘리트이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것을 배운 적이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예 휴직을 하고 오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야말로 삶의 현장에서 여성학 또는 젠더 스터디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는 사례가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찰도 이렇게 오는 경우도 있고요. 변호사 하는 분들도 가끔 오고 그래요. 그래서 문을 아예 닫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문이 부서지지도 않겠지만요.(웃음)
  여성주의를 처음 접하는 여성들에게는 글쎄요. “여성인 당신 자신으로 살라!”고 한다면 그것이 그냥 여성주의의 길인 것 같아요. 여성에게 이제까지 가해왔던 여러 제약들이 있잖아요. 정말 많아요. 사실 여성들은 살면서 늘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어디 여행을 가더라도 늘 제약이 있고, 내가 어디에 가서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들. 정말 너무 너무 많아요.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 기본적인 제약들을 비롯해서 어떠한 활동을 하고자 할 때 “내가 여자인데 이런 분야도 괜찮을까?”하는 고민들.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나서 “여성인 당신 자신으로 사세요.”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 여성주의적인 관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남성들의 경우에는 더 복잡할 수도 있기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오랫동안 내려온 사고방식의 틀이 있는 것이지, 개개인이 선하고 악하고 그런 문제는 아니잖아요. 사회가 조금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이게 되면, 그 사회 안에서 사는 개개인들도 자연스럽게 민주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전두환의 독재 같은 것을 용납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잖아요. 한국은 나름대로 상당히 민주적인 사회인 것 같아요. 적어도 2016년 이후에는 말이에요. 이러한 변화를 겪어오면서 이제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사회가 그런 면에서 나름대로 발전해오고 변화해온 측면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다 똑같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문제가 있으면 같이 대화로서 털어놓고 이야기하다보면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같은 것을 하다 보면 말이에요. 물론 해결이라고 하는 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지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인 것 같아요. 저는 한국 사회가 이런 측면에서 계속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Q. 한정숙 교수님께서는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 통일과 여성』(공저)을 저술하기도 하셨는데요. 이러한 도서를 살펴보면, 교수님의 연구 활동 안에서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교수님의 서양사 연구 경험과 여성학 연구는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관련되었으며 또 서로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서양사학을 전공하면서 그와 함께 여성학도 다루었기 때문에, 여성학 중에서도 서양사에서의 여성사를 많이 다루게 되었습니다. 여성주의의 역사, 사상사와 관련해서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 같은 책을 엮어서 같이 내기도 했었어요. 이 책은 여성주의 초창기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여성주의 고전들을 해설하는 책이고, 여러 연구자가 함께 쓴 것이에요. 초창기의 여성주의 사상이 어떠했는지. 그 이후에 러시아 혁명기의 여성주의 사상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또 냉전 시기의 여성주의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이러한 것들을 보면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차이들이 보여요. 시대마다 당면한 과제들이 다르니까요. 기본적으로는 결정적인 차이가 없다고 할지라도, 세부적으로 차이들이 보이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한 것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가 있더라고요. 확실히 저는 사상사 쪽으로 많이 접근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시대를 더 위로 올라가서 그리스 시대의 여성, 중세 시대의 여성은 어떻게 살았나 하는 것을 살펴보기도 했고요.
  역사 연구와 여성학의 관계를 본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이런 것이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역사라는 것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인간의 삶이 달라지고 변화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잖아요. 근데 보면 여성에 대한 또는 젠더 관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시대에 따라 정말 엄청나게 변화를 겪어요. 이것이 다 역사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젠더 관계에 관해서 갖고 있는 인식들 예컨대 남자는 밖에 나가서 일해서 돈 벌어오는 반면에 여자는 집에서 가사노동하고 애를 기른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확고부동한 진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기보다는 말이에요. 설령 그러한 경향이 지속적으로 있었다고 할지라도, 각 시대 그리고 사회마다 편차를 보이고 다른 양상을 보여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변하는 것이 인간 사회라고 한다면, 여성과 남성의 관계 그리고 젠더 관계라고 하는 것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앞으로 바뀌어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요. 이건 역사적인 관점인 것이지요. 여성학을 하면서 여성사를 살펴보다보면 정말 “옛날에는 여자들이 어떻게 이렇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여성들은 정말 학대를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학대를 많이 받아왔지만 누군가는 얘기를 하고, 그 이후에 정말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변화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 많은 것이 바뀌었지요. 그래도 문제가 남아있지만 말이에요. 역사학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인간 사회가 정치제도나 법률을 포함해서 그야말로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놓여 있어요. 마찬가지로 “젠더 관계도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가 한 번 새롭게 만들어 보자”라고 하는 그러한 생각이 젊은 세대에게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물론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세심하게 고찰을 해야 하겠지만, 역사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어왔다는 점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도 고정된 것이 아니고 바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성학이라고 하는 것은 학제적인 분야예요. 그래서 다양한 경로로 이 분야에 들어올 수가 있어요. 예컨대 간호학 하는 분 혹은 의학하는 분들도 여성학에 관심을 가지세요. 의료를 할 때 보면 여성의 신체와 남성의 신체가 특징이 조금 다르잖아요. 그것들에 맞추어서 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여성들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 경우들을 살펴보면 여성들이 심리적인 억압 때문에 그러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여성 심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때도 있어요. 이처럼 여성학이라는 분야에서 여러 학문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학제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역사적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여성이 이러저러하게 살아왔었는데 이것이 다시금 이러저러하게 바뀌어 왔어. 그러니 앞으로도 또 이러저러하게 바뀔 수 있어.”라는 조금 더 거시적인 전망을 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각 분야마다 개별적으로 답변이 달라질 수는 있을 것 같아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다소 추상적인 질문이기는 하지만 앞선 질문들과 관련해서 이해해볼 때, 요즘과 같은 때에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 답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지만 또 반드시 물어야 하는 질문인 것 같아요.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잖아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성찰적인 학문이니까요. 저는 그러한 인문학의 필요는 아마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은 반드시 있어야 되는 학문이라고요. 그리고 또 인문학은 그 시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들을 새롭게 제기할 수밖에 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철학이라고 하면 플라톤이나 헤겔, 칸트와 같은 고전을 읽으면서 출발할 수도 있고 또는 조금 더 추상적으로 이 사회를 관찰하면서 인간의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를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겠지요. 역사 전공자처럼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중심으로 고찰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이렇게 인문학은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지를 항상 물어요.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인 것이지요. 사실 사회가 엄청나게 바뀌어가고 있다고 해도 이런 질문들에 답하고자 노력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인간이 만들어낸 대상인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하는 물음들 혹은 인공지능에 의해서 우리가 지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들이 있는데요.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질문도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같아요. 자연과의 관계에서 기후 변화 얘기도 나오는데, 인간이 자연을 어떠한 마음으로 다루어야 하는가. 동물과는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인문학이 바로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고자 하는 분야인 것이지요. 물론 반려 동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병원에 가야하는지에 관해서는 수의학 같은 개별적인 학문들이 있어요. 하지만 인간이 다른 종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 하는 지를 고정된 관점에서가 아니라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관찰하고 고찰하고자 할 때 그리고 그 생각들을 주변의 다른 모든 대상들에게까지도 확장해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그런 자세를 가진다고 할 때 가장 그런 출발점이 되는 것이 결국 인문학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인문학은 언제나 가장 새로운 학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첨단적인 변화 속에서 가장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답을 하는 분야가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는 철학, 문학, 역사학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역사학도 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게 되거든요. 여성사라고 하는 것도 사실 엄청나게 새로운 분야예요. 70년대 무렵부터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그 이전에는 역사라고 하면 거의 다 왕의 역사를 다루었으니까요. 더군다나 한국에서 여성사라고 하면 90년대 이후에나 다루어진 것이고요. 이처럼 늘 새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말이에요.


 

인터뷰 진행 : 김재헌(철학과 석사 수료), 이정연(비교문학 협동과정 석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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