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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진호(독어독문학과) 교수 인터뷰

2018-05-02l 조회수 5391

        <거창국제연극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사진 출처:거창인터넷신문)> 
 
 

Q.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매일 정신이 없는데, 지금은 책을 쓰고 있어요. 자연주의하고 세기전환기 쪽을 특정한 관점에서 훑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사실은 전문서이면서 전문서가 아닌 척 하는, 그런 조금은 살짝 어려운 대중서로 기획을 하고 쓰고 있는데, 이게 빨리 마무리가 되어야죠.

 

Q. 전문서이면서도 아닌 척 하는 책이라니 고심이 많으시겠습니다. 이외에 교수님을 정신없게 하는 요즘 일들은 무엇인가요? 

- 공연예술학과 주임을 맡게 되어 매우 분주합니다. 그거 말고는 원래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 보고서 쓰는 것과 관련해서 예전에는 소책자로 나오던 것을 분량을 늘려 책으로 출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통일 관련된 강연회를 지난 두 학기에 걸쳐서 했는데, 강연회 논문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려고 하고 있고, 거기에 들어가는 한 꼭지를 2월 말까지 써야 해요. 한 챕터 쓰는 거라 짧고 초안이니까 간단하게 쓰면 되겠지만요.
글 쓰는 건 제가 참 좋아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쓰는 동안 괴로운 것은 변하지 않아요. 운동하는 것 하고 비슷해요.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이 운동하는 동안에 근육에 가해지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인데, 어쨌든 고통은 고통이니까요. 

 

Q. 저와 같은 비전공자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데, 주된 연구 분야이신 독일 자연주의 문학과 세기 전환기 문학의 특징이나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 이건 수업이잖아요. (웃음)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원래는 자연주의 문학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사실 지금도 별로 관심은 없는데, 왜냐하면 재미있는 작품이 별로 없거든요. 물론, 문화 현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재미있는 지점들이 있지만요. 세기전환기 문학 같은 경우도 원래는 특별히 그 시기를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작가들을 보고 싶었던 거예요. 토마스 만이라든가 카프카와 같은. 석사논문 주제가 토마스 만이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계속 공부하려 했는데, 유학 가서 주제를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놓고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 왔죠. 처음부터 새로 생각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고민을 한참 하는 동안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죽 적어놓고 보니까 그게 프랑스의 작가든 누가 됐든 전부 다 시기가 비슷하더라고요. 전부 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작가들인 거예요. 그래서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그 작가를 중심에 놓되 그 시기를 중점적으로 보는 쪽으로 주제를 바꿨죠.
그때 당시는 그런 생각을 못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지?’ 하는 질문을 추적하는 과정이랄까, 그것과 비슷하게 되었어요. 그 시기가 대충 어떤 시기냐 하면, 19세기 후반 들어서면서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그 영향 아래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다윈이 나오고, 그러면서 종교적인 세계관이 붕괴해 버리고, 그랬던 시기예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히 실증주의적인 세계관이나 유물론적 세계관과 인간관이 등장하던 그런 시기였는데, 다른 말로 하면 그동안 사람들이 삶의 목적 혹은 삶의 의미를 찾았던 종교가 사라져버리고 난 다음에 그 가치가 진공 상태로 남아 있었던 거죠. 그 자리에 자연과학도 집어넣어 봤다가, 삶이라는 것도 집어넣어 봤다가, 이런 맥락이었던 거죠.
제가 문학을 좋아한 시절이 사실은 사춘기 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충 시작이 되었는데, 그 시절의 고민이 바로 그 시대의 고민과 같았던 거예요. 그러니까 내용은 다르지만 형식 자체는 되게 비슷했던 거죠. 그동안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부모님의 가치관을 그대로 이어 받아 살다가,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오는 혼란의 와중에 ‘도대체 사는 게 뭐지?’ 하고 질문을 던졌던, 그 시점에 읽었던 책들이 사실은 시기적으로 종교적인 세계관이 붕괴가 되어 버리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야 되는 시기의 책들이었던 거죠.
똑같은 질문을 놓고 전혀 다른 차원의 답을 제시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그때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제가 던진 질문들이 이 책 안에 동일하게 던져져 있었고, 물론 답은 그때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거였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이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그게 문학을 좋아하게 된 첫 번째 걸음이었거든요. 알고 보니 그 시기가 유럽 전체를 두고 봤을 때 그런 식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려고 하는, 세상의 의미, 인간의 본질 뭐 이런 것들을 찾으려고 했던 시기가 바로 그 시기였던 거죠. 그런데 지금도 되게 비슷해요. 그래서 저는 이 시기를 벗어나기가 되게 힘들어요. 물론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요.

 

Q. 슈니츨러의 희곡 <라이겐>을 번역하시기도 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 그런 맥락으로부터 개인적인 관심을 갖게 되신 것 같습니다. <라이겐>은 어떤 작품이고, 번역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 제가 공부한 훔볼트 대학에서 박사논문 발표를 할 때 박사논문의 학문적인 테제를 발표하고, 이에 대해 공격이 들어오면 방어해야 하는 일종의 구술시험이 있었어요. 이때 발표 내용이 박사학위논문 내용으로 30%, 새로운 내용으로 70%를 구성해야 됐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내용에 대해 제가 생각한 게, 동일한 내용을 논문에서 다루지 않은 다른 작가를 통해 다루자 하는 거였어요. 그때 슈니츨러라고 하는 작가의 <Frau Beate und ihr Sohn>이라는 작품으로 발표를 했어요. 슈니츨러는 그때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였거든요.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요.
그 작가를 논문에서 다루지 못해 아쉬운 것도 좀 있었고요, 슈니츨러와 관련된 논문을 한국에 와서도 발표를 했었어요. 슈니츨러의 <라이겐>은 언제 나왔냐면, 제가 임용되고서 얼마 안 되서 나왔을 텐데, 계약하고 번역하기 시작한 건 강사를 하던 시절이었고요. 그때는 뭐 번역하라니까 했지요. (웃음) 제가 선택한 건 아니었고요. 그때까지 슈니츨러 번역이 몇몇 산문 작품들 말고는 거의 나온 것이 없었어요. 희곡은 그때까지 아마 번역이 안 되었던 것 같고요. 슈니츨러를 번역해 보라고, 그때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하셨던 임종대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셔서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이겐>은 일단 가장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이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야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새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인간에 대한 이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 그런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이거든요. <라이겐>은 슈니츨러가 가장 많이 판매한 작품이기도 하고, 대중적으로도 훨씬 관심이 갈 만한 작품이에요.
혹시 읽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엄청 파격적인 작품이거든요. 10개 에피소드인데, 마지막 하나 빼 놓고는 성관계 전의 대화, 혹은 성관계 이후의 대화예요. 그때 당시에 슈니츨러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당시 반유대주의가 나치 직전 단계였죠, 막 고조되는 시점에서 ‘유대인이 건전한 우리의 문화를 망친다’, 이런 식의 정치화 된 공격들이 <라이겐>을 대표적인 사례로 삼아 문제가 되었죠.
<라이겐>은 공연으로서도 굉장히 성공한 작품이에요. <라이겐>이 실제로 쓰인 것은 20세기 직전인데, 슈니츨러가 공연을 허락 안 해서 1920년대에야 처음으로 공연이 되었어요. 그때도 파격적인 내용이었고, 그리고 그걸 무대에 올린다고 하는 건 더 파격적이었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글로 읽는 것과 무대에서 보는 것이 왜 다른지 너무나도 분명하잖아요. 무대 위의 몸이라고 하는 것, 그 수행성이라고 하는 것, 수행적인 요소들이 드러날 때 어떻게 다른지가. 그때 슈니츨러는 당연히 자기 의도는 그런 게 아닌데 공연을 하면 저속한 것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고 해서 공연을 허락 안 하다가, 20년대에 가서야 공연이 된 거였죠. 그래서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이고, 프랑스에서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져서 꽤 큰 성공을 거두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를 거쳐 그 뮤지컬이 한국에 <라 롱드>라고 하는 제목으로 들어왔지만 큰 흥행을 거두진 못했어요.

 

Q. 드라마투르기로서도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의 현대적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나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연극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드라마트루기’라는 건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인가요? 또 드라마트루기로서 교수님께서 중점을 두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 소설이 전공인 저로서, 연극은 7-8년전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되었어요. 말씀하신 두 작품도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긴 했지만, 첫 작업은 <라이겐>이라는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을 맡은 연출로부터 연락이 와서 같이 드라마트루기로서 첫 작업을 하게 되었죠.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라고 하면 추상명사가 되고, ‘드라마트루크Dramaturg’라고 쓰게 되면 드라마투르기를 하는 사람을 의미해요. 드라마트루기는 독일에서 온 개념인데 사실 의미가 넓게 쓰여 뭐라고 규정하기가 참 어려워요. 독일쪽에서는 현재 공연 매니저의 역할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어요. 매니저라고 하면 큰 극장의 경우 연간 공연 레퍼토리까지 정하는 역할을 의미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드라마트루기의 역할은 제가 목격한 바로는 대체로 조연출급 정도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해하고 있는 드라마트루기는 문학 작품과 같이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에 원작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들, 그 작품에 관한 정보들, 그 작품의 구성에 관한 조언들 등을 작가와 함께 논의하여 연출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이에요. 이러한 역할로 드라마투르기를 한정한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굉장히 필요한 역할이 아닐까 생각을 많이 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공연을 창작하는 데 있어 많은 부분을 연출이 담당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기도 하지만,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에는 연출 혼자서 원작의 의미까지 살피기란 쉽지 않아요. 저 같이 문학에 관심이 있는 관객에게는 가령 독일어 원작의 문학이 무대화 되었다면 원작과 실연의 관계를 주의 깊게 살피게 되죠. 하지만 원작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작의 본래 의미를 살리는 것만이 모든 공연의 취지가 되어서는 곤란하죠.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의 맥락에 맞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할 텐데, 외국 문학 작품에서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온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니까요. <파우스트> 정도가 되면 모를까요,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수는 있겠죠.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적합한 공연으로 만들어야 되겠죠. 이때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먼저 원작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맥락들, 해석의 가능성들이이나 층위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공연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들이 굉장히 많아요. 드라마트루기가 이런 가능성들을 찾아줄 수 있는거죠. 또 다른 역할은 원작을 재구성을 하는 데 있어서의 역할이에요. 물론 작가나 연출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보지 못하는 전체적인 구성과 흐름을 드라마트루기가 잡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출적으로 뛰어난 작품들은 많은데 구성과 흐름이 아쉬운 공연들을 가끔 보게 돼요. 이런 경우에 능력 있는 드라마트루기가 작품에 참여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아쉬워하죠. 요즘 국내 공연 팜플렛을 보면 드라마트루기가 대부분 포함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역할이 굉장히 모호한 측면이 있어서 드라마트루기가 무엇을 하는 역할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한 자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참여한 <라이겐>의 경우를 이야기해보면, 제가 이 원작의 번역자이기도 하고, 연출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저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는 허용이 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역할에 대한 조율이 가능했어요. <변신>이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같이 원작이 소설인 경우에는 각색의 역할도 필요해서 제가 각색과 드라마트루기의 역할을 동시에 맡았었어요. 경험을 해보니 이런 경우에는 드라마트루기가 각색을 맡는 것이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소설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갈등의 흐름이나 사건의 전개에 대해 제가 의견을 따로 피력할 필요가 없고, 이미 각색의 작업을 통해 무대화에 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변신> 경우에는 물론 사건들을 대사로, 무대로 재구성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극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작품이라 편하게 작업한 편이었어요. 대신 <카라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경우 원작 소설의 구조는 굉장히 복잡해요. 시간 구조에 있어서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복잡한 구조라서 연극으로 재구성하는 데 굉장히 어려웠죠. 그래서 완전한 창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려웠지만 무척 재미있었어요. 

 

Q. 드라마트루기로 참여하신 작품이 <라이겐>, <변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인데 거의 매년 작품 발표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 <라이겐>은 한 차례, <변신>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두 차례 공연이 이루어졌어요. 모든 작품은 신동일 연출과 함께 했어요. 이 분의 경우 <라이겐>이 연출 데뷔작이었는데 <변신> 작품으로 거창연극제에서 대상을 타고 춘천연극제에서도 은상을 받으면서 연출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특히 디씨공연갤에서 호평을 받았어요. (웃음) 그러다보니 연출이 여러 곳에서 일을 맡게 되면서 무척 바빠지게 됐죠.
저 역시도 지난 1-2년 동안 너무 바쁘게 지내다보니 새 작업은 준비만 하느라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작품 창작 지원금 공모 시즌이라 준비를 서둘러 해야 할 텐데요. 사실 작년에 브레히트의 <아르트루 우이의 저지할 수 있었던 상승>이라는 작품으로 공연을 준비했었어요. 이 작품은 히틀러를 소재로 한 내용이라 대선 정국에 맞춰 공연으로 기획 했던건데, 촛불집회라는 훨씬 더 좋은 일이 생겨 계획을 접게 되었어요. 이후로 다음 작품을 조금씩 논의하고는 있는데, 생각난 김에 연출과 연락해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네요. (웃음) 

 

Q. 독일 공연예술의 현황에 대해 통계적으로 자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독일 공연예술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현황은 어떤가요?

- 논문은 독일의 공연예술 현황을 다루고 있지만 그 목적은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현황을 알기 위한 것이었어요. 간단히 이야기한다면, 결국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우선 독일은 유럽 대륙 전체에서 공연예술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국가예요. 그런데 독일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공연예술 관객 숫자는 결코 뒤지지 않아요. 연극의 경우에는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죠. 오히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열의와 극단의 숫자를 따져본다면 우리나라가 더 앞선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말할 수 있는 건, 정부의 지원 규모에서 차이가 나요. 독일의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는 극장들의 경우에 관객 1인당 자치단체와 연방정부가 지원해주는 금액이 150유로가 넘어요. 베를린 앙상블은 공공극장이 아니라 사설극장인데도 정부 지원금이 상당하고요. 두 번째로 연극에 대한 개념, 연극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나요. 독일에서 연극은, 물론 고대 그리스부터 연원하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은 바로크시대 이후예요. 이 시기부터 연극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어요. 특히나 종교개혁의 시기에 구교에서는 신도들을 교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연극을 사용했었어요. 그리고 계몽주의 시기도 마찬가지이고 괴테의 이상주의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모델을 삼을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연극이 보여줬던거죠. 연극은 계몽주의적인 관점에서 예술과 교육이 이상적으로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자리였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초중고등학교 교육 커리큘럼에 연극이 포함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브레히트가 교육극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독일에서 연극이란 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화적인 현상이에요. 그래서 연극을 위해 아무리 많은 자본을 투여한다 하더라도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아요. 불만이 있는 사람은 딱 한 부류밖에 없어요. 연극 하는 사람들이죠. 더 주지 않는다고. (웃음)
이런 문화적인 합의, 사회적인 합의가 형성되어 있고, 그에 상응하는 예술인들의 노력이 있어 왔다는 사실이 우리와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어요. 그들에게 공연예술의 전통은 수 백년에 이르기 때문에 우리와 비교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공연예술이 어떤 문화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런 문제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예요.
예술가들은 그들의 예술을 계속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들 자체가 시대의 산물이고, 그들의 노력 자체가 표현이고, 그러한 표현 자체가 시대의 표현이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그들의 예술을 어떻게 해야, 그들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 평론가들 등 문화적인 맥락 안에서 생산적으로 소비가 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이 어떻게 또 다른 생산의 기반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요즘 인문학은 위기이면서 호황인 것 같습니다. 학계에서는 위기에 처한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인터넷이나 TV 매체 등을 통해 대중이 접하는 인문학은 전에 없던 호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교수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또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요즘 인문학이 유행이라고 많이 이야기들 해요. 제 책들도 21세기북스에서 주로 내고 있는데, 이 출판사도 대중적인 인문학 서적을 내는 출판사예요. 그런데 출판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는 ‘인문학’은 인문학이 아니라는 말도 있어요. 그래서 인문학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생각을 하게 됐죠. 저의 경우 좋아하는 문학을 공부하게 됐고, 그 공부를 배운 곳이 인문대학에 속해 있었고, 인문대학은 본래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이었죠. 그리고 저는 계속해서 공부를 했을 뿐인데, 인문학자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게 되었죠. 그래서 질문을 하게 되죠. 나는 그저 독일 문학을 공부할 뿐인데 인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사실 인문학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에요. 인간에 대한 고민, 세상에 대한 고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가치에 대한 고민, 이런 종류의 고민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마도 인문학인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철학자일 것이고, 문학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루는 사람도 있고, 예술의 영역으로 다루는 사람은 미학자일 것이고 등등이겠죠.
이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학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에 대해 대답을 해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인문학은 계속 있어 왔는데 어째서 갑자기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일까요. 인문학이 갑자기 수요가 생긴 이유는 어쩌면 ‘인문학’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돼요. 물론 학문의 영역으로서는 존재해왔어요. 인문학의 역할이라는 것은 사실 왜 사는지, 세계가 무엇인지, 세계가 어떻게 되어야만 하는지, 무엇이 올바른지 아닌지에 대해 정답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예요. 누구나 개인적으로 정답을 가지고 있겠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논의를 할 수 있는, 혹은 생각의 출발점이나 중간점으로 삼을 수 있는 좌표를 찍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인문학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놓고 인문학자들 중 누군가는 이런 의견, 누군가는 저런 의견을 다양하게 제시할 것이고, 그렇게 모눈종이처럼 좌표가 그려질 거예요. 그러고 나면, 일반인들은 그 좌표를 보고 자신이 서 있을 좌표를 설정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좌표를 이런저런 맥락 속에서 찾을 수 있겠죠. 사실 인간과 세계에 관련된 모든 학문과 예술의 기본적인 전제들에 인문학이 깔려 있는데, 그것이 학문으로서만 존재하고 더 이상 아무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이 ‘인문학’의 필요성을 요청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즉 인문학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 인문학이 자신의 역할을 못했던 것이 최근의 일인가 묻는다면 또 그렇지도 않거든요. 글쎄요, 좀 더 분석적으로 접근한다면 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제 생각에는, 인문학이 스스로의 역할을 방기한 측면이 굉장히 크고, 그로 인해 생긴 수요가 오히려 거꾸로 시장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 저는 이런 현상이 부정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저 역시 ‘문화 컨텐츠’라는 용어를 굉장히 싫어해요. 일기예보가 문화/생활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고, 문화체육관광부라는 정부 부서가 있는 것도 우리나라가 유일할 거예요. 문화의 가치 자체가 상품으로서 가치 이외에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을 만큼 천박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인문학의 부재, 혹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빈자리가, 대중들로부터 ‘인문학’에 대한 욕구를 촉발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더 생각해본다면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기본적인 제 생각은 그래요. 물론 논문을 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각 분야의 학문에서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를 깊이 파고 들어가 학문적인 결과물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대중들에게 다양하고 대중적인 차원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혹은 조금 더 공부를 한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수준에서 대화를 전달할 필요도 있겠죠. 물론 전공을 하는 독자를 염두에 둔 대화도 필요해요. 이렇듯 여러 층위에서 대화를 위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책도 사실은 하드커버를 달아 이론서로 출판할 수도 있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책, 예컨대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큰 어려움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에요. 더 쉬운 책으로 만드는 거죠. 친절한 방식으로 설명을 하고, 형식적으로는 각주도 없애고요. (웃음)
인문학자들 뿐만 아니라 언론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해요. 예전에 황우석 박사 사태 때, 그것이 사기라는 것이 밝혀지기 이전, 그러니까 처음 배아세포 복제에 성공을 했을 때 제가 독일에 있었어요. 그 당시 모든 독일 신문의 1면 기사가 이 일을 다루었는데, 독일에서는 이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인가의 문제가 중심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때 우리나라의 경우 1면 기사는 이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부를 가져다 줄 것인가의 문제가 중심이 되었어요. 독일 언론이 제기한 질문은 종교적인 질문이기도 하면서 그 자체가 인문학적인 질문이에요. 그 후 독일 언론들은 인문학자들, 종교학자들, 성직자등, 과학자들 등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칼럼을 실었어요. 누구는 이런 의견을 제시하고 누구는 저런 의견을 제시했죠. 즉 좌표가 만들어져요. 그 언론을 접하는 일반 독자들은 그 정보들을 가지고 자신이 서 있을 좌표를 정하게 돼요.
이것이 인문학이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 인문학자들은 학교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끊임없이 외부를 향해 이야기를 해야겠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대로 쓴 대중적인 인문학 교양서들에 대해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학문적인 작업이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더 잘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이러한 노력은 결코 폄하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사제지간으로 보자면 선생님이시지만, 학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배이기도 하십니다. 선배 학자로서 후배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말씀 중에 나왔던 것들도 다 이 질문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만 덧붙여 해주실 말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웃음) 딱 한 가지만 말한다면, 어차피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석사 끝내고 박사에 진입하기로 결심을 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하길 바라요. 제 경험인데, 저의 경우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기간이 2-3년, 그리고 중간에 아이가 태어나 1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필하는데 2년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논문을 썼는데, 논문이 끝날 때 쯤 되어서는 그 작가를 정말 쳐다보기도 싫어지더라구요. (웃음) 그런데 이게,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예컨대 논문 주제 선택할 때처럼 내 의도는 아니지만 자신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버리고 나면 굉장히 어려워져요. 석사 논문의 경우에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쓰면 되지만, 박사논문처럼 호흡이 긴 글을 쓸 때는 정말 어려워지거든요. 그리고 일단은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순간 특히 인문대의 경우 다른 종류의 취업의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지게 돼죠. 그렇게 되면 결국은 박사과정에 모든 것을 걸게 되는데, 어느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주제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좋은 문장도 쓰려고 노력해야겠죠. 

 

Q. 평소 여가 활동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 컴퓨터 게임을 좋아합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세일 때 사놓은 게임들이 있는데 해보지도 못하고 있어요. 아들을 위해서도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게임도 하고 있고요. 뒤쪽에 있는 RC 헬리콥터도 가끔 날립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저런 장난감이 굉장히 비싸서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 로망으로 남아있는 장난감이 대표적으로 레고와 RC예요. 레고는 너무 갖고 싶었는데 당시에 엄청나게 비싸서 부모님이 사주실 수 없었죠. 한국산 레고 모조품같은 장난감이 있긴 했었는데 블록들이 어떤 것들은 서로 맞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아들에게 아낌없이 레고를 사주고 있습니다. (웃음) RC는 지금은 전기모터로 움직이지만 옛날에는 기름이 동력인 모터였어요. 손을 줄을 잡아 당겨서 시동을 거는 방식이었는데 가져본 적이 없어서 굉장한 로망으로 남아있죠. 이 외에도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아요.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은 정말 많으니까요. 여가 시간이 없어서 아쉬울 뿐이죠. 

 

Q. 올해의 계획과 앞으로의 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가요?

- 하루살이로 살고 있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무척 어려워요. 일단은 계약해 놓은 것들은 다 끝내야겠죠. 아까 얘기했던 책 출판, 통일책 하나, 독일어권 문화의 이해 수업 관련된 책 한 권도 올 해 끝낼 예정이에요. 그리고 한 9년 전에 계약해 놓은 번역서도 올 해 끝내야 해요. (웃음) 공연도 올 해는 꼭 하나 올리고 싶은데 사실은 지금 공모 준비를 해야 가을이나 겨울에 올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연출가에게 연락을 해봐야 하는데, 아직 연락이 없는 걸로 봐서는 이 친구도 올해는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서 고민이 되네요. 사실 각색 작업은 몇 가지 생각해 놓은 작품이 있기도 해서 미리 작업을 해놓고 나중에 무대에 올릴까 싶기도 하네요. 여기까지입니다.
 
인터뷰 진행 : 최기섭(공연예술학 협동과정 박사 과정), 신철우(국어국문학과 석사 수료)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연습 장면(사진출처: 웹진 연극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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