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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훈(동양사학과) 교수 인터뷰

2018-03-04l 조회수 5993

인터뷰 진행 : 신철우(국어국문학과 석사 수료), 이정연(비교문학 협동과정 석사 수료)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 한 한기 안식년이 3월부터 시작돼서요. 조금 쉬어야 되는데 다음 주에 일본 학회에서 발표가 있어서요, 지금은 그걸 준비하고 있어요. 그것만 끝나면 좀 쉬려구요. 동아시아의 경험으로 민주주의와 공론(公論)을 다시 본다는 주제예요. 조선시대 공론 정치 이런 거 있잖아요. 작년에 공론화위원회 이런 것도 있었고요. 그때 그 공론이 사실은 동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라든가, 퍼블릭 스피어(public sphere)라든가, 여론이라든가, 이런 것과 연관시켰을 때 가장 생각해볼 만한 현상이거든요. 그래서 그게 일본에서 연구가 많이 되고 있고, 저도 박사 논문을 그쪽과 비슷한 걸로 쓴 적이 있거든요. 이번에 그쪽 공론연구회라는 데에서 초청 강연을 할 예정이에요. 

 

Q. 일본사, 특히 메이지유신 연구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일본사는 워낙 편견의 대상이라 제대로 된 이성적인 정보나 판단을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잘 못하고 있잖아요. 감정에 치우치고…. 그래서 했던 거고요. 특히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우리 동양사학과가 너무 중국에만 치우쳐져 있어서 일본사도 좀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메이지유신은 한국 사람들이 다 관심을 갖듯이 일본이 이른바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하는 대표적인 역사 사건이기 때문에 맨 처음에는 일본이 왜 가능했는가 하는 것들이 알고 싶었고, 얼마 전에 쓴 책(『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민음사, 2014)도 그 긴 고민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이랄까, 그런 거죠.

 

Q. 선생님께서 유학을 하시던 2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 혹은 편견이 지금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거기에 따른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 유학을 할 때는 뭐 일본에만 있었으니까 잘 몰랐는데요. 일단 부모님들이 의아하게 생각했고요. 일본에 대해서 뭐 배울게 있느냐 하는 전형적인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그런 태도? 그런 면에서 흔쾌히 이해를 못해주신 것 같고요. 간혹 귀국하거나 한국인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하게 되면 기존의 한국의 공정 담론에서 벗어나는 사실 제시라든가, 어떤 수정주의적인 견해를 제시하면 반발하는, 또는 비판하는 친구들이 있었죠. 그런 걸 제외하고는 뭐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여기는 지금 다 아카데믹한 곳이니까요. 오히려 재미있어 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특히 동양사학과는 그런 면에서는 아주 리버럴한 학과라서 그런 선생님들이나 선배, 동료, 이런 사람들에게서 큰 힘을 얻었다고 볼 수 있죠.

 

Q.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칼럼들을 정리해 읽다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일본사를 서술함에 있어, 다른 나라의 역사도 같이 비교해 서술한다는 것인데요. 그러면서 든 생각이, ‘일본사도 일본사지만, 세계사에 대해서도 너무 무지했구나.’하는 생각이 첫째, 그리고 둘째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나라의 역사를 같이 공부하지 않고는 어렵겠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일본사, 나아가 세계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최근 TV 매체를 통해 급증한 한국사에 대한 관심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데요. 자칫 우리 사회가 왜곡된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 그렇죠. 진짜 민족주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은 민족주의가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담론이잖아요. 기성 담론이고, 기성 체제를 다 옹호하는 담론이잖아요. 그러니까 공부하는 사람은 항상 기존의 담론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고, 또 부딪히는 지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얘기를 되풀이 한다면 사실 전문가도 필요 없고 공부하는 사람도 필요 없는 거죠.
  그랬을 때는 민족주의라고 하는 담론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동안 우리 학계가 너무 관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일본사를 전공하다 보니 이런 발언이 더욱더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인데요. 그래도 민족주의라는 어떤 거대 담론, 지배 담론이 우리 사회를 억압하고 있는, 또는 우리사회를 은폐하고 있는, 또는 자아도취? 특히 그런 측면은 없는가 하는 것들을 학자들은 더 자각적으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독재나 정치적인 억압에 대해 자각적이었던 것만큼은 적어도 민족주의에 대해 자각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약소국이고 피해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하기가 더 어려운 건 맞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환경이나, 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여건들? 이러한 것들을 지적인 힘으로 극복하고 간파해 내는 것에 더 힘써야 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세계사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되겠죠. 요즘은 거꾸로 가니까 문제이긴 한데, 한국사라는 것은 다른 나라의 역사를 많이 알면 알수록 더 잘 보이고, 더 잘 이해가 되는 법이거든요. 저는 원래 한국사라는 분야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일본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한국사가 더 재미있고, 안 보이던 점도 많이 보이고요. 물론 한국사를 공부하는 자세, 태도, 방법론도 요새 조금 많이 바뀌고 있죠. 하지만 좀더 과감하게 바꿀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한일관계가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정부 차원이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한일 관계라는 것이 지금은 워낙에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라서, 말하자면 의사가 중환자를 다루듯이 섬세하게, 고수의 의사가 다뤄야하는 문제인데요. 지금은 정치화 되고 대중화 돼버렸어요. 표를 구하는 정치가와 시청률을 구하는 언론이 이걸 마음대로 다루는 바람에 다 망가졌죠. 그래서 우리 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거의 없다, 없어졌다, 왜냐하면 학자가 아무리 전문적인 얘기를 해도 여럿 중에 한 사람으로, 여론 중에 한 표로 보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예를 들면 한일 양국 전문가들의 전문가 회의? 유식자 회의라고 해도 좋고, 현인 회의라고 해도 좋은데요. 거기에서 장기간에 걸쳐 냉정하게 해법을 찾고, 뜻있는 정치가들이 그 대안을 실현하는 경로로 가야 되는데, 지금은 여론싸움, 감정싸움, 폭로전이 되어 버려서, 이런 식으로 나가는 한 해결될 방안이 없겠죠. 우리 같은 학생이나 선생, 공부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우원한 얘기지만 일본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 이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죠.

 

Q. 인문학 위기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또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 사회가 점점 전문화 되고 산업이 고도화 되니까 인문학이라는 것이 이제 당장에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방법은 2가지죠. 첫째는 인문학자들이 제대로 공부하는 것. 그래서 국제 학계의 수준에 버금가는 논문과 학적인 성과물을 내는 것이고요. 둘째는, 전자도 아직 우리 학계에 엄청나게 부족하지만, 후자도 그에 못지 않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에 그 성과물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노력과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학적인 결과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책들이 우리 시민들을 현혹시키고 장악하고 있는 상태거든요.
  이걸 개탄만할 것이 아니라, 그런 능력이 있는 분들이, 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또 다른 재능이니까, 그런 재능이 있는 분들이 좀 더 진지하게 아카데미즘이 담보되는, 이를 테면, 역사 이야기 같은 것? 역사 서술 같은 것을 광범위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시민들의 주류는 적어도 그런 분들이 쓰는 책들을 읽고, 그런 시각을 유지해야지, 지금 아시겠지만 멀쩡한 지식인들이 또는 정치가들이 유사역사학이나 이런 것에 현혹되기도 하잖아요? 전 세계 선진국에는 없는 현상이거든요. 그건 그분들한테 일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그걸 방조하거나 방치한 아카데미즘 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일본은 우리보다 학문적인 수준이 훨씬 높지만, 특히 역사학계의 경우에는, 거기 있는 대가들, 평생 탁월한 연구업적을 쌓으신 분들도, 예를 들면 이와나미 신서(岩波新書)라고 해서, 그런 식의 수준 높은 교양서들을 잘 쓰시거든요? 또 열심히 쓰시고요. 그런 글은 못 쓰겠다 하는 분들은 안 하면 되고요, 논문만 열심히 쓰시면 되는 거고요. 그게 된다고 하면 그런 쪽으로 양쪽을 다 겸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말씀하신 내용들과 다소 중복되는 질문일수도 있겠는데요. 선배 학자로서 후배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 하나는 스페셜리스트로서 자기의 전문영역이 있잖아요. 거기에 대해서는 누가 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장악력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또 하나는 특히 인문학은 더더욱 그러한데, 전체적인 판을 놓치면 안돼요. 제가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과 계통은 부분적인 스폐셜 리스트로서도 훌륭한 자기 임무를 다 완수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인문학은, 사실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도 거기에서 출발했다고 저는 보는데요. 스폐셜리스트들이 그냥 거기에서 그치고 마는…. 물론 제대로 된 스폐셜 리스트들도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아직도 그쪽에 더 힘을 쏟아야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인문학이 추구하는 종국의 목표는 아주 전문적인 작업을 통해서, 그것을 축적해서 남이 볼 수 없는 통찰을 해내는 것, 그거잖아요? 그래서 그 커다란 상을 인류에게 제시하는 것, 그게 인문학이죠.
  그런데 또 디테일한 작업이 없으면 그게 다 신기루 같은 것일 테고, 그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요즘 우리 인문학, 특히 역사학 하는 사람들, 우리 학생들을 보면 오타쿠 스타일의 연구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게 전문적으로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만, 저 친구들이 자기 굴들을 열심히 파고 있는데, 나중에 거기서 나와서 전체를 다 볼 수 있을까 하고 우려스러울 때가 많아요. 국문학이나 철학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항상 전체적인 내러티브? 전체적인 자기의 세계상? 세계관? 이런 것들과 자기 전문적인 작업이 끊임없이 삼투하면서 상호작용을 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고, 그렇게 학문을 해야 리더십이 생기거든요. 아카데미 세계에서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결국은 그거거든요. 큰 이론, 담론, 내러티브, 이러한 것들을 생산해 내는 학계, 물론 거기에는 단단한, 디테일한 작업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가 생기는 거고요. 그러한 것이 우리는 양쪽 다 부족하지만, 우리 선생님들이 전자를 많이 강조하셨는데, 물론 그것은 아직도 달성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후자도 많이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Q. 올해의 계획과 앞으로의 장기적인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올해는 그동안 썼던 논문을 묶어서 메이지유신에 관한 학술서를 내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민음사에서 냈던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의 후속편으로, 메이지유신부터 러일전쟁까지, 그러니까 일본이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로 치닫던 시기를 써야 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고요. 또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고 서울대 인문교양강의 코너가 있는데요. 서울대 인문대 선생님 대 여섯 분과 시리즈를 만들 계획으로 있습니다. 제가 강의하고 있는 <일본의 인물과 역사>라고 하는 교양강좌의 내용을 쓰려고 합니다. 아무튼 앞으로 글을 더 많이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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