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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너스 프로그램 수기] 국어국문학과 문성효

2023-05-30l 조회수 532

[아너스 프로그램 수기] 시적 긴장의 해석학적 의미 : 그레이엄 하먼의 은유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 국어국문학과 문성효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현대시를 전공한다고 제 자신을 소개하자 현대소설 전공 교수님께서 시는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심 놀랐습니다. 오래도록 문학을 공부해 온 교수님께서도 시가 어렵다 하시는데,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독자가 시에서 느끼는 곤혹스러움은 얼마나 아득하겠습니까.
  그런데 솔직히 저도 시가 어렵습니다. 당장 서점에 가서 요즘에 나온 시집을 아무 것이나 들추어 읽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시가 태반입니다. 그래도 어딘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어 집으로 데려온 친구는 침대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읽어봅니다. 그렇게 부대끼는 과정에서야 작품에 담긴 무언가를 하나씩 이해하게 됩니다. 책을 덮기 전까지 시를 절반 가까이 이해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해서 시집을 다시 펼친 기억만 가득합니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남이 쓴 시를 읽는 것은 남을 이해하는 일이고, 남을 이해하는 일은 원래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일은 시를 어렵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글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한 글은 다른 무언가를 믿는다면 를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대어 있을 뿐이지, 원점으로 돌아와서 그 다른 무언가를 우리가 왜 믿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시 읽기가 독자와 타자 사이에서 서로를 되비추는 과정이라면, (타자)에 대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세계()에 대한 해석을 함축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자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에게 그러한 슬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슬픔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슷한 슬픔의 존재가 비로소 나의 마음에서도 발견됩니다. 저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문학이 허구라는 회의에 사로잡혀 오랜 세월 고뇌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란 이미 타자로 가득 채워져 있는 그릇이 아니라, 타자를 채우기 위해 한껏 비워져 있는 그릇입니다. 허구와 현실 사이의 긴장을 가로지르는 해석이야말로 문학이 지닌 상상적 능력의 발현이며, 오직 그것이 비평의 실천적 과제입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라면 뗏목을 타든 모터보트를 타든 상관 없습니다. 여기까지 제 수기를 읽어주셨다면, 사실상 제가 운전하는 모터보트를 타고 어떤 학생의 피로한 졸업논문을 시원하게 건너온 셈입니다. 아너스 프로그램은 머릿속에서만 공전하던 몽상이 세상에 나올 용기를 주었습니다. 열정만 앞선 논문을 세심하게 읽고 조언해주신 학우들과 교수님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특히 논문을 읽느라 밤새 머리가 지끈거렸다고 하셨던 불어불문학과 강초롱 교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시적 긴장의 해석학적 의미는 문학을 문학에 가두려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자, 예술의 한계 앞에 좌절하던 어느 날의 슬픔에게 전하는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쓴 것을 믿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것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더 많은 것을 쓰기 위하여 더 많은 것을 믿겠습니다. 더 많은 것을 믿기 위하여 더 많은 것들에게 흔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