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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 [부임소회] 고고미술사학과 성춘택 교수

2023-05-30l 조회수 789




신임교수 부임소회
고고미술사학과 성춘택 교수 

2023
3월부터 고고미술사학과에 부임한 성춘택입니다. 국어국문학과 최윤지 교수, 철학과 이상엽 교수와 같이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2001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2009년부터는 경희대 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다른 대학에 몸담고 모교로 돌아왔으나 익숙한 것은 없고, 낯섦뿐입니다. ‘처음처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도 하지만, 지금이 처음인지, 20년 전이 처음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앞으로 도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지만, 사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과정의 연장선입니다. 대학 시절 몽촌토성이나 오이도패총 같은 유적 발굴로 고고학의 길에 들어섰고, 순천 주암댐 수몰지구, 그리고 곡성 옥과 유적 조사에 참여하면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어디에 있는지, 뗀석기가 어떤 것인지 접했습니다. 고향에서 유적을 찾고 발굴한 것은 큰 영광이면서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기 그지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유학 가서도 비슷한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고, 지금도 석기분석을 기본 연구주제로 하고 있으니 대학 시절 설레는 경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여기에 수렵채집사회, 그리고 고고학 이론과 방법론, 고고학사 등과 관련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학계에는 고고학사(트리거 원저)란 책을 번역한 것으로 저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2판까지 번역해 출간했고, 명성과 함께 읽기 어려운 책이라 저 역시 여전히 공부 중입니다. 2017년에는 석기고고학(사회평론)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구석기시대 뗀석기의 제작과 관련한 내용부터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여러 유물에 이르기까지 선사시대 석기를 분석하는 방법과 결과를 담은 책입니다. 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열심히 준비했고 그만큼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선사시대 석기의 제작과 사용은 오랫동안 매달려온 주제입니다. 앞으로도 실험실에서 학생들과 석기를 만들어보고, 사용도 해보면서 과거 인간의 행위에 다가가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최근에는 플라이스토세 말 한반도에 왜 토기가 나오지 않는지 하는 문제를 수렵채집민의 이동성과 광역교류네트워크의 시각에서 풀어낸 글을 썼습니다. 당시는 기후변동과 환경변화가 심했고, 이를 맞아 인간은 멀리까지 이동하며 다른 집단과 교류하고 수렵채집의 전통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렇지 못한 집단은 자연스레 도태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먼 선사시대의 자료를 들여다보고 분석도 하면 당대 인간의 다양한 양태와 적응방식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교과서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그저 야만이나 미개한 시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자연의 노예였던 삶을 기록하고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정교한 유물뿐 아니라 아주 먼 곳까지 혼인망을 세우고, 몇백 킬로미터 멀리에서도 흑요석 같은 좋은 재질의 원석을 들여와 매우 정교한 석기를 만들어 썼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고위도지방이나 고산지대, 건조지대, 그리고 아메리카대륙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인류가 퍼진 것도 후기 구석기시대의 일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큰 특징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언어와 상징 같은 특성도 이때의 일이니 구석기시대는 오늘날 인간의 토대와 갖추어진 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땅을 파서 오래전 사람이 깨뜨린 돌을 찾는 것은 여전히 흥미롭고 설레는 일입니다. 이것을 넘어서 인간의 토대에 다가서는 일 역시 연구자로서 할 만한 작업임을 실감합니다.
  모교에 돌아온 낯선 저를 돌아봅니다. 지름길은 아니었기에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동료 연구자와 활발히 교류하고, 학생들과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그리고 고고학 발굴조사 현장에서 만나고 배우고 소통하면서 더 나아가겠습니다. 욕심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좋은 학생을 만나 자극과 도움을 주어 뛰어난 연구자로 성장하는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사랑하는 고고학에 기여하는 방법이자, 몸담은 기관에 봉사하는 길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