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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 [연구동정] 손주은 창의인재 인문학 펠로우 김준영

2022-11-08l 조회수 1905


[연구동정] 
라이프니츠의 공가능성 개념 연구

                                                                                                    손주은 창의인재 인문학 펠로우 김준영 

  저는 철학을 연구합니다. 좀 더 자세히는 서양 철학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소위 '서양근대시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18세기 유럽 철학에서 특
히 형이상학적 문제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과 당대의 종교, 신학, 과학 등의 인접분야와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저에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철학, 그리고 이와 ‘과거’의 종교와 과학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을 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첫째, 서양의 근대 시기는 현대 서양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시기이며, 철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철학의 많은 논의들이 그 뿌리를 근대 철학에 두고 있으며, 저는 이들을 탐구하는 것이 현대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서양 근대는 전통적인 세계관과 ‘새로운’ 근대 학문이 충돌했던 때로, 당대의 많은 학자들은 이 ‘충돌’하는 세계관들과 학문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혹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의심할 나위 없이, 현대는 더욱더 다양한 세계관들과 학문들이 충돌하는 시기이며, 조화로운 세계관과 학문을 위한 근대인들의 고민과 노력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라이프니츠(G. W. Leibniz)의 철학을 줄곧 연구해오고 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당대의 많은 학자들과는 달리 새로운 근대 학문과 전통적인 스콜라 철학적 세계관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그 본인이 근대적 세계관의 선구자임과 동시에 이러한 근대 학문과 전통적인 학문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그는 철학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학문에서도 많은 업적을 이루었으며, 무엇보다 이 다양한 학문들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체계 안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철학, 특히 그의 형이상학은 이러한 노력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박사과정 동안 이러한 그의 형이상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가능성(compossibility) 개념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고, 이에 대해 박사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공가능성이란 공존 가능성을 뜻합니다. 만약 두 구분되는 개체가 공존 가능하다면 두 대상은 공가능하고, 그렇지 않다면 두 대상은 공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의 설명을 들으면 이렇게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 왜, 그리고 어떻게 라이프니츠 학문 체계 전체에서 중요한지 의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한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라이프니츠의 가장 유명한 논제 중 하나는 최선의 세계 선택 논제입니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다양한 가능 세계들이 있지만, 우리의 세계가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세계이기 때문에 신이 우리 세계를 창조하게 됩니다. 이는 곧 신이 우리 세계보다 더 좋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것이 불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은 우리 세계의 몇몇 악인들을 창조하지 않음으로써, 혹은 그들 대신 더 좋은 개체들을 창조함으로써 매우 간단하게 더 좋은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신이 히틀러 대신 셜록 홈즈를 창조했다면 이 세계는 우리 세계보다 직관적으로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반론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대답이 바로 공가능성 개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신이 히틀러 대신 셜록 홈즈를 창조할 수 없는 이유는, 히틀러는 우리 세계의 다른 대상들과 공가능한 반면, 셜록 홈즈는 공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라이프니츠는 공가능성 개념에 의존하여 신학적으로 신을 변론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 자연철학 등 거의 모든 철학적 기획의 여러 부분에서 그는 공가능성 개념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즉, 공가능성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라이프니츠 철학 체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박사논문에서 이러한 공가능성 개념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을 정리하고 그들의 결정적 문제들을 지적한 후, 저의 대안적 해석을 제시하였으며, 이 해석은 기존의 해석들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존의 해석들의 큰 결함 중 하나는 공가능성을 이행적(transitive) 관계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해석들을 따를 경우, 만약 버클리와 흄이 공가능하고 흄과 셜록 홈즈가 공가능하다면, 버클리와 셜록 홈즈도 공가능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문헌적 증거를 바탕으로 라이프니츠가 공가능성을 이행적이지 않은 관계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의 첫 단계로서 저는 최근 「라이프니츠와 공가능성의 퍼즐」( 『철학』 150호, 2022)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만약 이러한 저의 시도가 모두 성공적이라면, 저의 연구는 라이프니츠 철학 전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공가능성 개념이 라이프니츠 철학 체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공가능성 해석이 라이프니츠 철학의 여러 측면들, 예를 들어 그의 본질주의, 존재론적 독립성 개념, 술어 함축 진리론, 최선의 세계 선택 논제 등에 대한 중요하고 새로운 함축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를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인문학 펠로우 기간 동안 이러한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라이프니츠 철학 전반에 대한 체계적이고 독창적인 재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