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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너스 프로그램 수기 - 서양사학과 이원규

2022-06-23l 조회수 61
<연구제목> 황인종 帝國은 문명 가족이 될 수 있는가? : 1924년 미국이민법의 민족차등제와 일본 아시아주의의 촉진

서양사학과 이원규

인문학, 휴머니티즈, 인간에 대한 학문. 이제는 일상으로 감각되는 이 단어의 본뜻을 되새기고 있으면 새내기 시절 전공과 소속을 자랑스러워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사람의 사람됨이라는 문제를 끝없이 묻고 고민한다니, 이만큼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탐구가 또 있을까요. 중앙도서관에서 철학, 문학, 사학 서가를 둘러보면 이 설렘은 구체적인 형태들, 그러니까 양장본의 두툼한 표지, 색바랜 종이, 명조체 활자에 힘입어 더욱 부풀어 올랐습니다. ‘여기서 수천 년 축적된 세계를 접한다, 가장 멀리 갔던 이들의 세계를 낱낱이 읽어낼 수 있 다...’ 물론, 저의 이런 마음은 주변 사람들의 생각에 종종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것들은 대개 실용성과 목적성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통과 의례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쓸모없기에 자유로울 수 있고, 하여 아름다울 수 있다’, 갓 칸트와 헤겔을 접했던 스무 살 때의 저는 그렇게 인문학을 옹호했습니다.

이윽고 몇 년이고 시간이 지나 이제 아너스 프로그램 수기를 내놓습니다. 제출한 졸업논문에서 저는 1924년 미국 이민법의 입법 과정과 그것이 미·일 관계에 일으킨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근대 구미 기독교 문명에서 생산되었던 아시아 타자화 담론을 중심 주제 삼는 글입니다. 새내기 적의 막연한 설렘과는 사뭇 멀어진 듯 보입니다만, 그 문제의식에는 사학의 자장 속에서 숙성되어온 인문학도로서의 관심이 빼곡합니다. 예컨대 어떻게 사료를 해석해 역사 논문이라는 하나의 테제로 풀어낼 수 있는가, 다른 시공간의 상이한 사고방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가, 아시아의 서양사 전공자로서 어떤 역사 서술을 추구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궁금증은 ‘20세기 초 태평양 둘레에서 동서양 근대국가들이 사람의 사람됨을 어떻게 따졌던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간 약간의 꼴을 갖추게 되었을 뿐 관심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의 삶을 지시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아너스 프로그램은 이러한 탐구에 불가결한 지원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졸문에 불과했던 연구계획서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덕에 영어권과 일본 원서를 몇 권이고 구매해 자유로이 탐독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아너스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제 논문은 지금의 완성도조차 갖추지 못한 부끄러운 글이 되었을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발표회에서의 교수님들의 세심한 비평 그리고 학우들과 나눴던 토론 역시 초보 연구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추후 제 연구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있어 잊지 못할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내기 시절 펼쳤던 인문학을 위한 옹호를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문학이 쓸모와 무관하다는 세평과 달리 저는 무척 유익한 가르침 한 가지를 인문대학에서 구했습니다. 인간, 나아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필연적 결과물, 즉 ‘원래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고대 희랍부터 현대 세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했던 다양한 집단과 개인들은 고정되는 일 없이 늘 어딘가로 꾸물꾸물 들끓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변화한다, 고로 아무리 막힌 듯 보이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변화할 수 있다’ 인문학, 이 자유로운 앎의 형식이 제게 남긴 자유의 귀중한 내용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