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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 [교수논단] 인문학과 데이터사이언스 - 신효필 교수

2020-11-27l 조회수 3471

인문학과 데이터사이언스

이터사이언스 대학원 부원장인문대학 언어학과 교수 신효필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한반도의 생태변화로 지리산과 한라산 등의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던 침엽수들이 급속히 고사하고 있고,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기후변화로,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우리의 생활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또한 2020년 올 한 해는 중세 시대에나 있을 법한 전염병의 세계적인 창궐로 우리 생활 방식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적, 환경적 변화 외에 데이터기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도 우리의 생활을 한층 더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개는 학문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비판적 성찰, 창의적 상상력을 근간으로 하는 인문학은 우리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할 근원적 소명을 지니는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용이라는 도전에도 직면하게 되었다. 사실 인문대학은 새로운 학문 분야와의 접목을 다른 대학에 비해 선제적으로 시도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의 마음 또는 인지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인지과학협동과정이 1995년에 대학원 과정으로 시작되었으며,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코어)의 일환으로 학부에 인문데이터과학 및 정치경제철학 연계전공이 2016년도에 개설되었다. 본인은 2014년에 인문대학 교무부학장을, 2016년에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 단장을 맡으면서 이 사업의 일환으로 4개의 연합, 연계전공을 설립하였고, 그 중 하나인 인문데이터과학 전공주임을 맡고 있다. 지금은 올해 신설된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의 교무부원장으로 1월부터 신설대학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과 인문대학 교수로서 인문대학이 앞으로 데이터사이언스 및 인공지능 기반 사회에서 어떻게 그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이 논단을 통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인문대학 내에는 인문학 여러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다른 분야로의 진출을 위해 이에 필요한 전공을 복수전공하는 학생들도 많다. 특히 요즘같이 취업문이 더 좁아진 상황에서 경영학, 경제학, 컴퓨터공학 등의 복수전공, 부전공 선택은 거의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분야의 스펙 보충만으로 취업 경쟁력이 더 높아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현재 많은 분야에서는 각 분야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분석, 처리하고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해당 분야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어, 이를 위한 데이터사이언스 지식과 인공지능 방법론이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능력으로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 신설된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이런 면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원 첫 해인 2020학년도에는 석사 40, 박사 15명을 모집하는 데에 석사의 경우 250명 이상이 지원을 했다. 합격자 분포를 살펴보면, 대학을 막 졸업하고 입학한 경우 외에도, 국내의 대기업 종사자, 변리사, 컨설턴트, 스타트업 창업가 등 실무능력을 겸비한 경력자들도 많이 있으며, 외국대학 학사 및 석사 출신들도 상당 수 있다. 이는 데이터사이언스 지식이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이 요구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학부전공 상관없이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입학생 분포를 살펴보면, 인문, 사회, 상경 계열 출신 학생들과 물리, 수학, 통계, 전자, 기계 등의 분야의 학생들의 비율은 거의 비슷하며, 이 외에도 생명과학, 농학, 공학, 자유전공학부 등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다. 이런 출신 배경을 고려하여, 통계, 컴퓨팅의 기초 과목에서부터 데이터사이언스 핵심 및 응용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목들이 개설되고 있고, 새로운 과목들도 계속 신설되고 있다. 두 번째 학기를 맞고 있는 지금, 학생들의 동기부여와 성취도는 기대 이상이다.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의 입학을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통계, 수학 등의 기초 지식도 필요하지만 뚜렷한 목표의식과 이를 위한 준비 과정도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인문대학 출신은 큰 장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데이터사이언스는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에서 탐색, 예측, 추론을 통해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해 내는 학문이다. 문학, 언어, 역사, 철학, 종교, 예술 등을 아우르는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 양질의 데이터를 창출해 낼 뿐만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현상을 해석하고 추론해 낼 수 있는 분야이다. 그동안 인문학이 인간과 관련된 데이터를 창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축적된 인문 데이터를 분석 활용하는데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학부의 인문데이터과학은 이러한 목표를 위해 설립된 연계전공이다. 인문데이터과학 연계전공에서는 데이터 분석과 추론에 필수적이나 수학과 통계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개설한 통계과목과 프로그래밍 과목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 응용을 위해 다양한 학과의 과목들을 연계해 놓았다. 앞으로는 소위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몇 특정 분야를 전공하느라 소중한 젊음을 낭비하는 것 보다는, 인문학 전공 공부를 철저히 하고 여기에 덧붙여 데이터사이언스 관련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데이터사이언스 및 인공지능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면,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으로의 진학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제로 2021학년도 데이터사이언스 신입생 모집에는 인문데이터과학을 전공한 학생들과 인문대학 출신의 지원자들의 수가 작년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데이터사이언스를 위한 기본적인 자질로는 python 프로그래밍, 구조화된 데이터를 다루는 라이브러리인 pandas, 그리고 데이터의 특성을 보여주는 시각화 방법과 이 모두를 종합해서 구현할 수 있게 하는 jupyter notebook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런 방법론은 데이터사이언스를 위한 기본 지식이기도 하지만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에게도 교육과 연구를 위한 중요한 분석 도구가 될 수 있다. 인문대학 차원에서도 데이터의 보고인 인문학 연구의 발전과 학생들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위해서라도, 데이터사이언스와 관련된 교육을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 “삶과 인문학이 인문대 학부생을 위한 공통과목인 것처럼, 학부생 및 대학원생들을 위한 데이터사이언스 공통교육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된 데이터사이언스 필수 자질 교육을 위해서는 3학점 한 과목으로도 충분하다. 일정 학점 이상의 외국어 이수가 인문대학 졸업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듯이, 데이터처리 과목 이수의 필수화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현재 인문데이터과학 연계전공에서 대학혁신사업의 지원으로 연구교수를 두고 있는 것처럼, 연구 교수 몇 명을 임용할 수 있는 재원이 확보된다면 이는 충분히 실행될 수 있어 보인다.

최근 서울대학교 교원인사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부만 있는 자유전공학부와 대학원만 있는 뇌인지과학과가 50 50 비율로 융합교수를 채용하고 있다. 어느 한 학과에만 소속되지 않는 양쪽 학과에 절반씩 기여할 수 있는 교원을 채용하고 있다. 물론 학과 운영, 승진, 교과목 운영 등에 여러 어려움은 있겠지만 인문대학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소위 융합 교수 범주로 해서 반은 학과로 나머지 반은 인문대학 소속으로 하여 인문대학 전체에 필요한 데이터 교육을 담당할 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은 한 손에는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또 다른 손에는 이 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쥐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양손잡이 인재가 필요한 시대이다. 현재 이런 인재 양성을 위한 기반은 잘 마련되어 가고 있다이제 인문대학 내에서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인문대학이라는 숲에서 키운 나무들이 이제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할 때이다. 환경변화로 말라가는 나무도 있을 것이고 새로이 자라는 나무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키우고 있는 인재들이 인문학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환경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풍성한 숲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탄력을 잃어 색이 바래어 가고 있는지, 이제는 숲 밖에서 한 번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 제51호 인문대 소식지 '교수논단'에 게재될 글을 위와 같이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