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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소식 2017. 02. 21.
  • Writer지광해
  • 날짜2017-03-10 10:56:45
  • Pageview362

인문대 주간소식 2017년 2월 21

 

1. 지난 2월 6일부터 2월 8일까지 2박 3일 동안 인문대학 교수학사협의회로 일본 규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다케오시도서관일본26성인기념관엔도슈사쿠문학관국립규슈박물관 등을 둘러보았는데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교수님들의 헌신과 협조로 즐거운 여행이 되었습니다.

 참석하신 분 중에 영문학과 장경렬 교수님께서 엔도슈사쿠문학관을 다녀오신 소감을 적어 <그린에세이> 2017년도 3/4월호에 기고하셨다면서 글을 보내오셨는데엔도슈사쿠문학관의 감흥이 새삼 느껴지는 명문이어서 아래에 그리고 파일로 첨부했습니다훌륭한 글 보내주신 장경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2. 지난주는 조교 제도 폐지 문제로 본부와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일단 학생조교는 당분간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습니다만남은 문제가 영 없지는 않습니다급한 불은 끄고 서서히 제도 개선 문제를 논의해야 하지 않나 합니다.

 

3. 인문대학 홈페이지를 새로 열었습니다지난 홈페이지가 아주 예쁘게 잘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만우리 인문대학을 자랑하고 홍보하기에는 홈페이지 형식이 잘 맞지 않아서 바꾸었습니다새로운 홈페이지에 관심과 아울러 질책과 충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4. 이번 주 22일 직원 월례특강 시간에 우수직원 시상식이 있는데우리 인문대학 교무행정실 조형진 팀장이 상시제안상을서무직원 김태훈 씨가 친절으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축하하고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 인문대학 기획실(snu.ch_planning@snu.ac.kr)

기획부학장 정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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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토록 슬픈데주여바다는 너무도 푸릅니다

 

장경렬(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

 

  동료 교수들 틈에 끼어 일본의 나가사키에 있는 엔도 슈사쿠(遠藤 周作, 1923-1996)의 문학관을 찾은 것은 지난 2월 초순 어느 날 오후의 일이다전후 일본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엔도 슈사쿠는 가톨릭 신자로일본인에게 기독교 신앙이 갖는 의미 및 신의 존재 이유를나아가 인간이 종교적으로 또는 실존적으로 겪어야 하는 아픔과 갈등을 줄기차게 탐구한 작가다그런 그의 작품 세계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중반 방문학자 자격으로 하버드 대학에 머물 때로학교 앞의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의 소설 『화산(火山)』의 영역본을 구입하고 나서였다그때 나는 그 작품을 읽고 인간의 내면 심리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관찰과 묘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그 이후 엔도 슈사쿠의 작품 세계는 나의 문학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그런 나에게 그의 문학관을 찾는 일이 어찌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기독교인들이 극심한 박해를 받던 시절 그들이 숨어 살던 곳으로 알려진 소토메(外海)라는 지역의 바닷가 언덕 위에 위치한 문학관에 이르러건물의 통로를 지나 문학관 입구 쪽 앞마당에 들어서니 저 아래로 펼쳐진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하지만 바다 위로 비치는 햇살 때문에 정면을 응시하기란 쉽지 않았다햇살이 비치지 않는 쪽으로 눈을 돌려 푸른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학관의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니엔도 슈사쿠의 유품친필 원고사진 등이 정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하지만 내가 그의 문학에 관심을 갖는 데 계기가 되었던 『화산』에 관한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전시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대표작이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 의해 최근 새롭게 영화화된 소설 『침묵』에 관한 각종 자료였다.

   『침묵』은 앞서 말한 기독교인들이 탄압을 받던 시절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포르투갈의 신부 로드리고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일종의 역사 소설이다로드리고는 기독교인들이 피를 흘리며 고통 속에 죽어가는 참상을 목격하고어찌하여 이런 상황에서도 신이 침묵하는가에 의구심을 갖는다소설의 제목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박해자들은 기독교도로 의심되는 이들에게 성화(聖畫)를 밟을 것을 요구하고이를 거부하는 이들을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내몬다박해자들에게 붙잡힌 로드리고에게도 동일한 배교 행위가 요구되는데그들은 로드리고에게 성화를 밟으면 고통 속의 신도들을 살려주겠다고 회유한다이에 갈등하는 그에게 예수의 목소리가 들린다성화를 밟으라고자신은 인간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인간들의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고이에 로드리고는 성화를 밟는다과연 그가 들은 것이 진정 예수의 목소리인가아니면 환청에 불과한 것인가로드리고의 배교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그것은 말 그대로 배교 행위일까아니면역설적으로 이야말로 진정 의미 있는 신앙 행위일까.

  문학관을 둘러본 다음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비()”를 찾았다상당한 크기의 넓적한 자연석 한 쪽 면에는 다음과 같은 비명(碑銘)이 새겨져 있었다. “인간은 이토록 슬픈데주여바다는 너무도 푸릅니다”(人間がこんなにしいのに よ があまりにいのです). 떠듬떠듬 의미를 헤아리며 읽은 다음나는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바다에 눈길을 주었다그리고 엔도 슈사쿠의 말대로 너무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인간의 슬픔과 바다의 푸름을 이처럼 한 문장에 담았을 때그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실 이는 소설 『침묵』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하지만 소설에는 지금 내가 눈길을 주고 있는 저 바다가 그러했듯 하느님이 침묵하고 있음에 로드리고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있다그런 의미에서 볼 때더할 수 없이 푸른 바다는 인간의 고통에 무심해 보이는 하느님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슬픈데바다는 푸르다는 말은 하느님의 무심함에 통원(痛冤)의 기도를 올리는 인간의 마음을 담은 것일 수 있다아니신앙심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고뇌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종교적인 의미에서만 이 말을 이해할 것은 아니다어찌 보면푸른 바다는 인간사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절대적 자연을인간사에 무심한 대자연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통스럽고 슬픈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지만인간의 고통과 슬픔이 무엇이든 이에 무심한 것이 대자연인지도 모른다대자연은 제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은 채 영원의 시간 속에 초연하게 존재할 뿐이다이러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덧없고 미약한 존재인가이런 의미에서 엔도 슈사쿠의 비명은 우리에게 인간 존재의 한계와 무상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말일 수도 있으리라.

  숙소를 향해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내내 침묵의 비에 담긴 말이 의미하는 바를 놓고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생각을 거듭하는 도중문득 20여 년 전에 읽은 『화산』의 내용이 떠올랐다침묵』에서 바다가 말이 없듯, 『화산』에서도 화산은 말이 없다은퇴한 지진 연구가인 쓰다 진페이(須田 仁平)는 아카다케 화산이 이미 생명을 다했다고 확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고파계한 프랑스인 사제 듀란은 화산이 곧 폭발하여 주변 인간들의 신성 모독에 대한 신의 징벌이 있으리라고 확신한다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화산 폭발이 없으리라는 기대 섞인 믿음 속에 삶을 이어간다문제는 주인공인 쓰다와 듀란뿐만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을 결여한 삶을 살아간다는 데 있다그런 의미에서 볼 때그들은 슬퍼할 능력조차 결여한 또 다른 차원에서의 슬픈 인간이다아카다케 화산은 그 모든 슬픈 인간을 저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을 뿐 말이 없다소설 속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 약간의 화산재를 분출하는 미약한 움직임을 보이긴 하나가느다란 연기 한 가닥만을 피워 올릴 뿐 아카다케 화산은 시종일관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이다어떤 의미에서 보면화산은 인간의 선과 악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절대자 또는 대자연에 대한 우의(寓意)일 수 있으리라.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 서가를 뒤져 『화산』을 찾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인간은 이토록 슬픈데바다는 너무도 푸릅니다라는 엔도 슈사쿠의 비명에 이끌려약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는 소설이 주는 울림과 느낌은 나이 탓인지는 몰라도 더할 수 없이 새롭다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시계를 보니초저녁 무렵으로 생각했는데 밤 11시가 가깝다연구실 창문의 커튼을 들치고 잠시 깊은 어둠에 눈길을 준다절대자도 대자연도 너무도 깊은 어둠에 감싸인 채 아무런 말이 없다다만 시간의 늦음에 나의 마음은 이리도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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