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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연출가라는 정체성" - 이영석(동문, 연극연출가)
  • Writer이정연
  • 날짜2017-08-14 16:44:20
  • Pageview3552

 인터뷰 진행 : 이정연(비교문학 협동과정 석사 수료), 최기섭(공연예술학 협동과정 석사 졸업)


 

1. 간단한 소개와 활동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이것저것 많이 한 거 같아요. 연극연출을 했고, 또 최근에 책도 한 권 나왔고, 어쨌든 박사학위도 받았고, TV 드라마에 출연한 적도 있고(육룡이 나르샤 권근 役), 또 연극의 무대 배우로도 작년에 출연했었고…. “도대체 넌 누구냐?”하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되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지. (제 생각에 저의) 가장 중심에 서있는 것은 연극연출가예요.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나 스스로에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관심과 호기심이 확장되는 쪽으로 이것저것 하다 보니 겉으로는 가지 수가 많아졌을 뿐인데, 그 각각이 뭐 대단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고 다만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했을 때, 저는 연극연출가입니다.
 
 

2. 연출가로서의 정체성이 언제 확립되셨는지?

- 저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를 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는데요, 사실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은 점수 맞춰서 갔어요. (그 나이대에) 많이들 그러듯 제가 특별히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었죠. 문학에 영 관심이 없진 않았지만 대단히, 뜨거운 열정으로 국문과에 진학한 것도 아니었어요. 신입생이 되어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내 강한 집중력과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싶었어요. (그 대상이) 학과는 아니었고요. 그래서 동아리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고, 그러다가 연극반을 발견하게 됐죠.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나라는 사람의 집중력이 동아리라는 공간으로 싹 부어지는 것을 느꼈죠. 대학생으로서의 내가 있을 장소는 여기구나. 과에 안 나타나고 동아리방에 ‘죽때리는’ 스타일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그렇게 학부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현장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그런 예술가, 실천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연극 혹은 희곡을 연구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실천가가 되려니 나 자신에게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 연출가나 배우로서의 재능. 그러고 제가 큰 실수를 했죠. 공부를 만만하게 봤다는 거죠. 공부야말로 재능이 필요한 건데 (웃음) 그래서 제가 지식이 일천하니 대학원에 가서 희곡공부를 해보자. 지금은 많이 연구가 진척됐는데 당시엔 한국 근현대희곡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되어 있지 않았어요. 국문과 내에서도 시 소설이 연구의 중심이었고, 지금은 뭐 전공자들도 많이 배출되고 있었는데, 당시엔 희곡 담당 교수님도 없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혼자 공부해야 했던 상황이죠. 주변의 동기들을 돌아봐도 희곡 전공은 나 혼자. 보는 책도 달라요. 그러고 나는 선배도 없어. 물론 희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님이 계세요. 대학원을 같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터울이 워낙 크다 보니 선배님이 아니라 ‘선생님’이 몇 분이 계셨던 거고. 석사를 혼자서, 희곡을 공부하겠다 하고 들어갔죠. 그때가 2000년, 2000학번인데 00년부터 02년까지 다녔어요.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재능이 없고, 솔직히 적성에도 안 맞는다. 난 진짜 현장에 가고 싶다. 이건 아니다. 이게 아니라는 것을 찾아서, 지금도 그렇고 그 당시도 그렇고 제 좌우명이 저게 얼마나 단단한지 부딪혀보자 이런 건데, 뭔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느 한 쪽을 선택해서 분명하게 가보고 이걸 내가 돌아가야 될 길인지, 뛰어넘어야 될 길인지 그때 가면 자명해지리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석사과정을 한 것은 후회하지를 않고, 어쨌든 우리나라의 희곡사, 혹은 연극사의 한 개괄 수준이지만 훑어보고 한 꼭지를 다뤄보고 한 것이 아 나로서는 바로 여기에서 연극하는 사람이지 우리가 아무리 외국 이론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런거 있잖아요. 그런 걸 읽다 보면 그 어떤 명쾌한 그런 인용의 욕구를 느끼게 하는 명문장들이 있잖아요.; 뛰어난 명제들. 그게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연극을 어디서 하냐, 나 거기서 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석사과정이 의미가 있었고. 그리고 현장으로 가고 싶다는 들끓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고요.
 
 

3. 석사 연구주제는 무엇이었나요?

- 논문 제목은 1920년대 희곡의 계몽적 담화구성 방식에 대한 연구인데 그전까지는 20년대 희곡은 참 못 썼다, 참 볼게 없다, 다들 어쩜 작품이 이렇게 허접하냐 이런 평가들이죠. 그리고 일말의 어떤 긍정성을 부여하자면 30년대의 사실주의 연극이 성숙도를 보이는데 그것을 준비하는 형성기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사실주의를 예고했다. 요약하자면 그거에요. 그런데 그때까지의 연극에 대한 제 경험은 연극반 경험이었지만 어떤 창작가가 무언가를 창작할 때 나는 10년후를 예비하기 위해서 나의 작품을, 이런 사람은 듣도보도 못했어요. 작품이 별로인 거 맞는데 ‘예고했다’ 이건 너무 편한 인상적인 이해지 그것을 어떻게 그 현장의 숨결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20년대에 무엇이 뜨거웠는가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거죠. 전 의문스러웠어요. 제가 하고자했던 얘기는 당시는 연극을 통한 계몽운동이 시대를 지배했기 때문에 계몽이란 것은 조금 일방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관객에게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물론 과도하고 좀 생경하게 직접적으로 주제의식을 난발하고 그러지만 그것이 너무나 절실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사실주의를 기준으로 보면 극작품성의 미비함으로 보이지만 뜨겁게 만나는 현장성의 소통을 노렸다 그런 관점으로 희곡을 분석해 보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즈음 영화 <색계>를 봤는데 그걸 보면 여자주인공이 중국에서 연극반 활동을 해요. 연기력을 키워서 나중에 정부요인을 살해하기 위한 연기를 하게 되잖아요. 결국은 사랑하게 되지만. 그런데 그 여배우가 연극반 활동을 할 때 이 연극단이 순회공연을 간단 말이에요. 홍콩인가 어디에 공연을 가요 대학생이. 그게 우리나라 20년대랑 똑같은 상황이에요. 김우진 같은 동경유학생들이 조선 본토에 민중을 계몽시키기 위해 방학 때 연극반을 만들어서 한국을 와서 전국 순회공연을 하거든요. 근본적으로 사실주의 미학 자체를 추구하지 않았어요. 대놓고 계몽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에요. 색계에서도 그 장면이 나와요. 사실주의로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여자주인공이 ‘그래서 우리 중국인민들을 잊지 말아주세요!’하고 외쳐요, 그러면 관객이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쳐요. 그거를 미학상의 미비함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거죠.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들이었기 때문에,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