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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대학의 풍경화" - 황동규 교수 인터뷰
  • Writer이정연
  • 날짜2017-07-17 10:09:17
  • Pageview102



인터뷰 진행 : 김재헌(철학과 석사 수료), 지광해(불문과 석사 수료)

 

1. 선생님께서 학생이었던 시기의 ‘인문학’과 지금의 ‘인문학’의 차이는 어떤가요?

- 나의 청소년 시절은 참 가난했습니다. 뭐든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아는 것이 힘’이라는 생각이 있었죠. 지금은 (인문학이) 어떻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표를 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더욱 ‘높아진 것’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2. 그럼에도, 인문학을 굳이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 원래는 음대를 가려고 했습니다. 전쟁 통에 부산서 피난을 와보니 서울은 폐허였습니다. 장엄한 폐허가 아닌, 똥, 오줌만이 가득한 폐허였죠. 시각적인 즐거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각적인 즐거움을 찾아 나섰죠. ‘르네상스’나 ‘돌체’ (당시 클래식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작곡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2 때는 따로 음악 선생님이 학교에 없어서 혼자 공부했죠. 그 와중에 발성 음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작곡가가 되는 것과는 큰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죠. (일화로) 친구와 감상실에서 김영욱의 콘체르토를 듣고 나와 휘파람을 불어보니, 친구는 정확하게 불고 나는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내 귀는 정확했던 모양입니다. 음치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이후에 나는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국문과를 들어간다 해도 딱히 읽을 책이 없었습니다. 번역된 책이 너무나 없었지요. 번역된 책이라고는 박목월 선생 같은 분들이 번역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일본어 중역 정도뿐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려면, 결국 6년 동안 배웠던 영어(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독일어 밖에 없어서, 불어는 대학을 들어와서 배웠습니다. 꼭 영문학이 좋아서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1, 2학년 때는 영문학을 전혀 하지 않았죠. 당시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전과를 했을지 모를 정도로, 러시아 문학에 빠져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안톤 체호프 두 작가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그 작가들 책만 읽었습니다. 3학년이 되서 셰익스피어를 읽어보니 그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안톤 체호프나 도스토예프스키 책들도 모두 영어로 읽었죠. 영어가 정말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잘못 읽은 것도 많을 겁니다. 나름대로 젊을 때 상상력을 발휘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3. 선생님께서 ‘대학생’이셨던 시절과 현재 선생님께서 바라보는 ‘대학생’의 모습에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 우리 때는 ‘대학서 공부해서 내가 내 몫을 찾아야겠다.’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당시 서울대 인문대를 나오면 고등학교 선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문학을 하면서 교수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잠시 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도 문학을 하겠노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요새는 자신이 들인 공에 대한 대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 대학생이 넓은 의미에서 인문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문리대를 나오면 어디라도 (취직을) 갔으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시는 고등학교만 들어가도 대우, 존중을 받았었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우리 때가 ‘고전적인 의미’에서 대학을 다녔다고 생각해요. 당시 대학생은 지주나 중산층의 (자녀들)로, 대학을 교양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법학, 의학, 실학 이 세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교양이었어요). 어느 게 더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시대에 따라 다르니까.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요.
 
 

4. 기관이나 체제로써의 지금의 대학과 과거의 대학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학교도 자꾸 직업 중심으로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때 보다 훨씬 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죠. 자꾸 무직자를 만들어낼 수도 없잖아요? 우리나라 대학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 것 같아요. 독일 대학 진학률이 50%가 안 되고, 우리나라는 70~80%에 육박합니다. 자리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입니다. 일본의 대학 진학률보다도 높다고 들었습니다.
 
 

5. 당시에 대학원 진학도 많았나요?

- 처음엔 생각을 못 했지만, ‘대학원 가면 교수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라가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 때는 여행을 가면 쌀이 없어서 밥을 먹을 수 없었을 정도예요. 쌀을 짊어지고 가야 밥을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어려웠어요). 졸업 할 때가 되니, 대학이 커지고 선생도 뽑고 하는 것을 보게 되었죠. 입학 때와 졸업할 때가 많이 달랐어요. 대학원은 아마 그 때부터 활성화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대학원 교육이라는 것이 별 거 없었어요. 자기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었어요. 이를테면 까뮈의 이방인을 한 학기에 40페이지 정도 하고 끝나버립니다. 대학원에서는 그것의 한 두 배쯤 할까요? 결국 자기가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들도 외국어 능력이 부족한 편이었어요. 내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당시에는 한 학기에 11개 정도의 작품을 가르쳤었어요. 내가 교수였을 때와 학생이었을 때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르쳤을 때는,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잘 따라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대학생일 당시에는 (이런 양은) 어림도 없었죠. 우리 때는 (인문대학 내에서는) 자기 것을 취하려는 생각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대학생 때는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안톤 체호프 정도를 읽었어요. 이 정도 읽어서는 아마 요즘 학생들을 못 따라갈 것입니다. 점수도 좋아야 하다보니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때는 크게 학점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학점 가지고 취업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졸업장만 가지고 고등학교에 가면, 어느 고등학교냐가 문제지 취직을 하고 못 하고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것 때문에 학교를 좀 더 자유롭게 다른 책도 읽고 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지고, 대학도 달라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옛날식의 대학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주어진 조건 속에서 해나갈 뿐 인 것이죠. 그 외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집안이 대체로 유복했기 때문에 대학 졸업하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이 ‘loose’한 느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6. 시와 시의 역할에 대해 "시는 삶을 삶답게 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깨달음만 주면 시가 할 일은 다한 것" 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 첫 번째는 인문학적인 관점이고, 두 번째는 예술적인 관점에서 말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철학은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고, 예술은 ‘느낌’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문학은 둘 다 필요하죠. 그런 점에서 ‘순수하지 못 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문학’이란 생각과 느낌이 모두 들어있어야 합니다. 물론 형편없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좋은 문학’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결국 문학은 철학과 예술과 또 다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하지 못 하다’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순수하지 못 하다는 것은 한 가지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생각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하자면, 니체와 같이 ‘느낌’이 들어간 철학이 있고 칸트나 헤겔처럼 ‘생각’이 지배적인 철학도 있습니다. 물론 순수한 ‘생각’이나 ‘느낌’은 없습니다. 예술과 문학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미술에서도 생각이 들어간 미술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러한 ‘생각’은 상당히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것이지요. 실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문학의 실체 속에는 그러한 ‘생각’과 ‘느낌’이 들어가 있어요. 이는 어디서 읽은 것이라기보다, 제 생각이에요. 내가 80 가까이 살았는데, 내 생각이 왜 없겠나요(웃음).
 
 

7. 그리고 선생님이 시 창작에 대해서 "늙게 쓰면 누가 읽겠냐"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시인으로서 "삶"과 "젊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 늙는다는 건 호기심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늙게 되면 힘이 없어지죠. 그것은 호기심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반복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늙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걸 누가 읽겠습니까? 늙은 삶을 그리면서도 ‘늙게 하면’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내 경우에는 예전에 한 시간 들였던 것을 요즘에는 네 시간 들여서 하게 돼요. 글을 쓰기 힘들어진 것이죠. 그래도 해야만 합니다. 아니면 딱 끊어야 합니다. 자신 없다면, 지저분하게 싱거운 소리는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호기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시인이나 작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죠. 나에게 보내주는 여러 책들을 읽어보면, 이를테면 불교 관련 서적들도 있는데, 이해를 못 해도 다 읽어봅니다. 아직은 그래야만 내가 견딜 수 있으니까요. 내 친구들은 나에게 ‘늘 너는 물어보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없어지면 호기심이 없어지면… 그리고 모든 예술과 철학의 기본은 과거와의 결별이기도 합니다. 그 말인 즉,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때는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헤겔 조금 배우고, 칸트 조금 배우고 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과거의 칸트와 조금이라도 결별해야만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칸트가 이만큼 나가면 우리는 저만큼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8. 시 창작에 대해서 "(내 안의) 모든 게 변했겠지만, 늘 새로워야 한다는 각오로 썼다"며 "그 원천엔 변함없는 호기심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새로움',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 삶의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으로 주어진 삶인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에 대한 사랑이 호기심을 가지게 해주고, 그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밤새워 책을 읽는 것도 그런 것이죠. 몸에 좋지 않고, 영향을 미치겠지만 좋은 책이 있으면 이따금씩 밤도 새고 그런 것이 삶의 대한 사랑입니다.
 
 

9. 삶의 대한 사랑이 ‘내가 오래 사는 것’ 것과는 다른 것일까요?

-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모친을 100세까지 모셨습니다만, (스스로는) 그렇게 오래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처와 자녀들에게도 내가 치매가 걸리거든 집에 모실 생각은 말라고 말해놓았습니다. 그냥 치매 환자를 다루는 요양원에 보내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생명 유지 장치도 붙이지 말라고 했고요. 자기가 운신도 못 하고, 생각도 못 하면 이 사회 속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튼,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어요. 단,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가 아니라) 좀 더 하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친구들에게도 전에는 3-4년 정도는 시를 더 쓸 것 같다고 말해 왔는데, 요즘은 ‘1년만 책임지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싱거운 시도, 싱거운 산문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하러 그렇게 하겠습니까? 더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유명해지면 오히려 내 일에 지장이 생길 것 같습니다.
 
 

10. 한 인터뷰에서, "시라는 게 짧은 공간 속에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오늘날 인터넷과 같은 무한한 공간 속에서 넘쳐나는 정보, 활자와 영상들 가운데서, ‘시’ 라는 형태의 문학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 문학이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스마트폰 문화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허황된 꿈 가지지 말고, 길게 본다면 자기 직업을 따로 가지고 (문학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직이 가장 좋겠지만, 문학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교수직은 ‘무덤’이나 다름없습니다. 문학은 가르치면 안 되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계속 싸우지 않으면 좋은 시를 쓸 수 없죠. 내가 아는 많은 사람 가운데 대부분이 교수가 되고 나서 시 혹은 소설이 나빠졌습니다. 그걸 각오하고 문학을 해야 합니다. 나 역시도 은퇴하고 나서 (시가) ‘터졌’습니다. 그 전에도 싸워는 왔지만 힘들었어요. 가르치는 요소가 글 속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런 이중생활을 각오를 하고….
(문학 축소의 일례로) 지하철 타면 책 읽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죠. 거기에 에너지를 뺏기니 (다른 곳에 쓸 에너지가 없는 것이죠). 오히려 이렇게 줄어들기 때문에 문학이 소중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범접할 수 없는 넒은 의미의 ‘시’ 혹은 ‘소설’, 혹은 ‘문학’이라는 ‘조형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SNS 역시 시와 마찬가지로 좁은 공간이지만, SNS가 할 수 없는 일을 시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현대 사회에서 이런 (정보 혹은 기술) AI의 핵심은 효율성이라 할 수 있어요. 인간에게 있어서 이런 효율은 인간의 한 부분이지, 핵심은 아니에요. 그 점에서는 우리가 AI를 쫒아갈 수는 없어요. 그것은 AI에게 맡기고, 그 외의 부분을 개발해나가야 해요. 그런 식으로 (그 중 하나인) 문학을 창작해야한다. 자기희생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컴퓨터가 풀어낼 수는 없겠죠. 알파고는 여러 고수의 수들을 모아놓은 것이지만, 그것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풀어낼 수는 없어요. 그런 것들이 문학의 몫이죠.
 
 

11. 마지막으로, 동숭동 시절에 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시절 가장 ‘청년 같은’ 일화를 회상해본다면 어떤 것인가요?

- 1학년 때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었어요. ‘통하는 게 있구나’ 생각을 해서 커피를 ‘학림다방’서 마시자고 신청했더니 이번에는 ‘NO’라고 답이 왔어요. 당시는 커피만 마셔도 (사귄다는) 소문이 난다고 했던 것이 거절의 이유였지요. 4학년이 되어서야 커피를 한 잔 같이 마시게 되었지만, 막상 만나보니 영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대학로 근처에 술집이 많았고, 그래서 술을 많이 했어요. 외화도 일 년에 한 두 편 들어오다 보니 볼 것이 별로 없었다. 술 마시고, 힘들게 쌀 지고 여행하는 것이 다였어요. 술 마시는 것은 재밌었어요. 술 마신 기억이 제일 많이 나네요. 그 땐 오락이 따로 없었으니, 술과 책이 가장 큰 오락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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