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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고전주의의 매력 속으로" -임홍배 교수 인터뷰
  • Writer이정연
  • 날짜2017-02-14 14:36:13
  • Pageview746

인터뷰 진행 : 이진실(미학과 박사 수료), 조혜진(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1. 선생님께서는 괴테를 전공하시고 『괴테가 탐사한 근대』(2014), 『독일 고전주의』(2016)등 여러 편의 책으로 독일 고전주의 문학과 사상을 소개해주셨는데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연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저는 1996년 서울대에서 괴테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지금 추세는 외국문학을 전공하려면 그 나라에 가서 학위를 해야 대학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생기는데 말입니다.(웃음) 제가 대학원에 다니던 80년대 중반 무렵 문학 전공자들은 대개 루카치를 공부했어요. 거의 붐이라고 할 정도였죠. 저도 한 몇 년간 인문대 선후배랑 루카치 강독도 하곤 했는데 특히 국내 처음으로 루카치와 토마스 만으로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오신 반성완 선생님과 성대 앞에 조그만 사무실을 빌려 매주 모여 공부했던 게 떠오르네요. 제가 박사 과정 때는 좀 밖에서 딴 짓을 해가지고(웃음), 그게 사실 김사인 시인, 조정환 선배 이런 분들과 <노동해방문학>이라는 잡지를 만들었어요. 그 일로 모두 20명쯤 구속되고 제 경우는 2년 8개월 정도 수배생활을 했지요.
그러다 보니 박사과정수료도 지난 지 꽤 되어서 논문제출 기한이 다가온 거죠. 공부를 포기해야 겠다, 출판사나 취직해서 평론을 계속하자 이런 심정이었는데, 지금은 퇴임하신 은사님들이 저를 부르시더니 학위는 마치라고 강권하시는 거예요. 국내에 있으면 자꾸 “사회봉사”에 몸담게 되니까 무조건 독일을 가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창비(창작과 비평)에서 백낙청 선생님이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교정본을 내신다고 교열을 봐달라고 부탁도 하시고, 그밖에 번역 일거리를 받아 딱 1년치 생활비만 가지고 독일을 갔지요.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아침부터 도서관 문 닫을 때까지 열 달 동안 괴테 작품만 집중적으로 읽었어요. 괴테를 택하게 된 동기라면, 루카치가 독일 근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괴테를 꼽기도 했고 그래서 한 번 공부해 볼만한 작가이겠구나 생각했지요. 당시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하나만 택해서 논문을 썼는데, 막상 학위를 받고 나니 괴테 저작이 굉장히 방대해서 계속 들여다보게 되었고요. 그렇게 한 편 두 편 써온 글들과 새로 쓴 글을 모아 낸 책이 『괴테가 탐사한 근대』인거지요. 책 제목은 거창하지만 여전히 내용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독일 고전주의』는 10여 년 전 ‘문학의 기본개념’ 시리즈로 청탁을 받았던 건데, 계속 미루다가 괴테 책을 마치고 나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도 다루고, 입문서로서 좀 더 쉽게 고전주의를 설명하는 취지로 쓴 것입니다.
 
 

2. 독일 고전주의를 근대성의 시작이라고들 하는데요. 괴테나 쉴러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 시대가 시간적 격차가 있지만, 현재의 젊은이들이 주목해보아야 할 괴테의 사상적 면모는 무엇인가요?

- 괴테는 프랑스대혁명을 겪은 사람으로서 『시와 진실』이라는 자서전에서 이런 역사적 전환기를 겪으면서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것이 자신의 문학적 자양분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당시 독일은 다른 근대국가들에 비해 여전히 봉건제나 다름없는 낙후된 사회였는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근대성을 성취할지에 대해 괴테는 많이 고민했지요. 그러나 프랑스 혁명을 지켜보며 괴테와 쉴러는 폭력적인 혁명에는 반대했어요. 어떻게 보면 제3의 길을 모색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특히 괴테는 자연사와 마찬가지로 역사에 단절적인 비약은 없다는 입장이었어요. 그런 입장이 『파우스트』 2부에서도 드러납니다. 파우스트가 반란군을 진압하고 국가 재정난 타계하고 정치 공인으로 공을 세우면서 넓은 영토를 하사 받자, 근대국가 건설 프로젝트로 간척사업을 하는 장면이 나와요. 공사를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밤낮으로 진행된 공사 때문에 많은 인명이 죽지요. 실제로 그 당시 독일에서는 운하를 파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해요.
역설적인 것은 과거의 동독 독문학자들이 어떻게든 사회주의로 가는 정통의 계보로 괴테를 찬탈해오고자 하는데, 그때 이 『파우스트』 2부의 공사 장면을 곧잘 인용하지요. 마지막에 공사가 완공되고 파우스트가 눈이 멀기 직전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살고 싶다”면서 눈을 감지요. 그래서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 백성들을 위한 유토피아가 건설되었다는 환상을 품은 채로 눈이 멀어 죽는데, 그 장면을 두고 학자들은 괴테가 사회주의 건설의 집단노동의 모델을 일찍 꿰뚫어 본거라고 이야기해요.
또 괴테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굉장히 글로벌한 지식인이었어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서 나오는 최근 신문, 잡지, 문학작품을 다 구독해서 봤는데 특히 만년에 쓴 『파우스트』 2부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모색이 나와요. 로버트 오언과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가 실험했던 모델을 소설에서 차용하는데, 괴테는 이 사람들이 세우려고 하는 것은 결국 경찰국가라고 봐요. 24시간 감시하고, 집단노동을 하고 정해진 시간과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억압적인 공동체 모델이라고 비판적으로 인용을 하지요. 그런 면에서는 괴테는 오히려 근대국가에서 장차 나타나게 될 억압성이나 폭력성들을 작가의 직관으로 예감했던 것 같아요. 때문에 괴테는 근대화를 맹목적으로 예찬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비약이란 것은 없기에 새로운 국가/사회라 하더라도 또 다른 모순, 억압적 체계들이 인간에게 질곡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을 꿰뚫어 봤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한편 괴테는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지만, 고전주의라는 것을 괴테 스스로 표방한 것은 아니에요. 18세기 한 세기 동안 서양문학에서 이른바 ‘신구논쟁’이 벌어지지요. 프랑스의 니콜라 부알로의 『시학 L'Art poétique』(1674)을 발단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규범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전범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이었지요. 어떻게 보면 그걸 결정적으로 정리한 게 괴테입니다. 괴테는 진정한 창조성의 원천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아니라 세익스피어라고 말하면서, 세익스피어를 새로운 전범으로 내세웁니다. 2천년 동안 지속된 문학예술의 규범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을 한 것이지요. 그러나 역시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예술이라고도 해요. 어떻게 보면 그런 양면적인 입장을 취해서 다음 세대 낭만주의자들한테 의고전주의자라고 공격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괴테는 이렇게 서양 근대 문학의 분기점을 이루는 이론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거죠.
 
 

3. 괴테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사상적인 부분 외에도 괴테의 매력, 혹은 배울 점이 있다면요.

- 무엇보다도 괴테는 전인(全人)이었다는 점이지요. 문학에서도 모든 장르에 정통했고, 미술, 건축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었어요. 만년에는 유럽의 모든 문학, 건축, 드라마, 오페라를 망라한<예술과 고대문화>라는 종합 비평지를 발간했어요. 물론 괴테가 절반 이상을 직접 쓰고요(웃음). 또 독일어권뿐 아니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든 언어권의 문화예술에 정통했고, 정치인으로서 자원개발, 광산개발과 같은 일에도 관여를 많이 했어요. 20대 후반부터 10년 동안 바이마르에서 거의 정치에 올인한 시기가 있었지요. 바이마르 왕의 신임을 얻어서 추밀고문관이란 요직에까지 오르고,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일년 반 있다 돌아와서 일선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왕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했지요. 학술과 문예, 특히 예나대학을 총감독하기도 했어요. 쉴러를 역사학 교수로 임명하고, 헤겔을 철학교수로 임명한 이도 괴테지요. 또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에도 몰입해서 특히 색채, 광학에 관한 연구를 하기도 했어요.
이런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탐구가 괴테의 매력이자 배울 점이라고 봐요. 괴테는 공부벌레이자 기록광이었어요. 만년에는 손에 힘이 딸려서 2-3명씩 전담 비서를두고 구술을 시켰어요. 작품에 관해서도 끊임없이 퇴고를 했고, 『수업시대』 집필 때는 미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던 쉴러에게 한 챕터씩 초고를 써보내면서 서한을 주고받았지요. 괴테와 쉴러의 서한집이 세 권으로 나와 있죠. 이렇게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탐구의 자세가 우리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참조점이 아닐까 싶어요.
 
 

4. 선생님께서는 독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근간 한국문학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주목하시는 작품이나 경향이 있으신지요?

- 사실 마지막으로 평론을 쓴 게 2014년에 김남주 시인 전집을 새로 정본으로 낼 때였던 것 같아요. 2004년이 김남주 시인 10주기였는데, 당시 썼던 원고를 고치기도 하고 새로 청탁도 해서 염무웅 선생님과 함께 작업했었지요. 1988-89년에는 김남주 시인을 개인적으로 자주 뵙기도 했고, 임종 전 문안을 가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 작업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 참여했는데, 실은 요즘 젊은 세대 작가들을 잘 모릅니다.(하하)
 
 

5. 왜 요즘은 평론 활동을 안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고백하자면 일이 너무 많아요. 교수가 수업하고 논문 쓰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민교협이라든지 여러 가지 위원회 회의들이 수업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근래에는 작년 맨부커 상을 받아서 주목받았던 한강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있어요. 단편 중 <내 여자의 열매> 에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변주한 게 재미있었지요. 변신이라는 모티프는 폭력이나 신의 전횡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아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호메로스에서 나오는 프로테우스도 인간이 어떤 술수를 부려도 잡을 수 없는 나무, 식물, 동물로 변하잖아요. 또 이건 괴테의 자연관하고도 굉장히 통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괴테는 근대과학이 자연을 양적인 외연으로만 보고, 지식의 도구로 만들면서 삶의 터전 자체를 황폐화시킨다고 지적했어요. 자연이란 것은 결코 인간의 간지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삶의 원천이라는 거죠. 변신이란 모티프가 그렇게 연결돼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도 (주인공이) 식물, 나무로 막 변하는 이미지가 나오잖아요. 그건 폭력, 정체성의 위기, 젠더의 혼란 이런 것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보여주는 한편,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어느 독일 학자가 그걸 보고 오비디우스의 신화를 탈신화화시키면서 현대성을 확보한 훌륭한 변주다고 평을 하더군요. 또 개인적으로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은 주인공이 거식증에 걸리게 된 원체험 이야기였어요. 어릴 때 아버지가 동네에서 개잡는 이야기죠. 복날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아서 동네를 몇 바퀴 돌아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 걸 봤어요. 오토바이가 아니라 몽둥이로 잔혹하게 죽이는 걸 봤는데, 제가 그때는 어려서 선악의 관념이 없었는지 끔찍하단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돌이켜 보면 아 굉장히 잔혹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 모티프는 사실 작은 디테일이긴 한데 다른 차원도 상기시키지요. 벤허 같은 영화를 보면 반역자들을 처벌할 때 수레에다 끌고 다니면서 잔혹하게 처형하잖아요. 역사적으로 그런 선례들이 많이 있죠. 비슷한 사례가 20세기에서 1차 대전 후 독일에서 로자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체포되는데, 결국 도망치다가 잡혀서 베를린에서 지프차에 매달려 잔혹하게 죽고 슈프레 강에 던져졌어요. 이렇게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폭력이 한강의 소설에는 훨씬 더 일상화된 형태로 나오는 거지요. 더 순치되고 합법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의 문제, 젠더, 가족, 정체성의 위기… 이런 일상적이고도 보편적인 주제들이 서양 독자들에게도 상당히 호소력 있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외 근래 읽은 작품들 중엔 김애란, 박민규의 소설들이 있는데, 읽으면 아 나하고는 이제 다른 세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하하). 김애란 소설 『달려라 아비』 같은 경우 소재나 이야기의 기본 틀은 전통적인 서사에서 가져오는데, 대개 젊은 작가들이 구사하는 판타지를 보면 한 작가 안에 두 세대가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저는 아무래도 20대 초반 읽었던 작품들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황석영의 『객지』, 『한씨연대기』, 김승옥의 『무진기행』, 또 현기영 선생의 소설들이 젊은 시절 굉장히 와 닿았지요.
 
 

6. 좀 시간이 지난 이야기지만,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2>를 번역하셨습니다. 2권이 15년 만에 번역 출간되었다고 했는데, 가다머 해석학 연구자들의 오랜 숙제를 선생님께서 마쳐주신 셈 아닌가요. 번역하시게 된 계기와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 원래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습니다. 1권이 번역된 것이 2000년 이전인데, 철학을 전공하는 분들이 강독을 하면서 몇 년에 걸쳐 번역한 것이라 하더군요. 저도 독자로서 2권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2000년 무렵 문학동네 주간 정홍수씨가 전화해서 1권을 번역하신 분들이 번역을 더 이상 못하신다고 저보고 해달라고 했어요. 갑자기 욕심이 생겨서 맡긴 맡았는데 어렵기도 하고 중간에 자꾸 다른 일들이 생기기도 해서 늦어졌어요. 그땐 1999년에 막 발령을 받고 난 후라 민교협 총무며 다른 학교 일들로 경황이 없을 때였지요. 어떨 때는 한 학기동안 손도 못 댄 적도 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한 10년 걸렸죠. 다행이 번역을 마무리했는데 1권을 번역하신 분들이 용어통일을 다 해놓으셨기 때문에 그 도움도 컸고, 하이데거 전공하신 박찬국 선생님 등 전공하신 분들 도움을 받아 다행히 마칠 수 있었네요. 가다머는 하이데거 제자로서 완결된 저서로는 이 책 한 권뿐이지요. 그가 1900년에 태어나 2002년까지 한 세기를 살다 갔는데, 철학에 관해서는 1960년에 낸 이 책 하나뿐이고, 그 이후로는 시에 관한 글들이 많아요. 하이데거하고 비슷하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보람이 큰 책이었습니다. 책이 과연 팔릴까 싶었는데 벌써 몇 쇄가 나온 거 같아요.
 
 

7.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떻게 보면 상품성을 띠기도 하면서 오히려 대중들과 접하게 되는 접면은 넓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관점도 있는데요.

- 제도로서의 인문학은 분명 위기라고는 할 수 있지요.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점점 줄어들고, 그와 연동되어 인문학 교수들이 퇴직해도 새로 채용을 안 하는 추세니까요.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면 오히려 기업인이나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커졌고, 인문학을 본인들한테 가장 결핍되어있는 중요한 교양으로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인문대 안에서 하는 최고위과정도 매 학기 꾸준히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이 있고 말이지요. 인문대중서들은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좋은 테마와 책들을 선정해서 보여주는데, 어떻게 보면 꼭 필요한 틈새를 채워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저는 사실 제도로서의 위기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인문학이 대중화되는 추세는 무척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물론 학문후속세대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점점 위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근본적인 위기는 사회 분화처럼 대학도 사회의 특정한 기능인을 배출하는 기관으로 축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겠지요, 넓게 보면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이니만큼 큰 방향과 틀 속에서 인문학이 우리사회의 화두로 어떤 고민을 던져야 하는가 하는 즉답을 내진 못합니다. 다만 산업화부터 4차 산업이라고 이야기하는 지금 시기까지 전반적인 패턴은 일정한데, 그건 넓은 의미에서 정보의 양화 가능한 시스템이 사회를 균질화시키는 방향이겠지요. 사회의 균질화, 가치의 획일화 말이지요. 그런 추세에 말려들면 감수성도 수동적이 됩니다. 사고도 기계가 기본적인 데이터를 입력해 답을 얻는 과정을 통해 대신 해주니까 말이지요. 정작 그 데이터가 어떤 의미를 갖고 권력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고, 자본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고 이런 것들은 묻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보면 인문학이 원래 해야 할 일, 즉 비판적 거리를 두고 사고하고 상상하는 것을 못하게 된다고 봅니다. 때문에 항상 시대의 주류적 흐름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를 두는 태도가 여전히 괴테시대부터 지금까지 통용되는 인문학의 유효성이라고 봅니다. 또 사회가 분화되고 균질화되기 때문에 항상 자기 전공 이외의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젊을 때는 무조건 마르크스 읽어야 하고 사회과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거는 너무 패턴화 되었다고 보고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요. 인문학도가 경제학, 심리학, 역사도 알아야 하는 거지요.
 
 

8. 그런데 요즘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대세이다 보니 외골수로 하나의 분야만 파는 인문학 연구자로서는 오히려 소외된 기분, 뒤쳐지는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 그게 어렵지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좇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분야에서도 축적된 학문의 깊이가 있으니까 그걸 열심히 따라가면서 동시에 폭넓게 현실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러 해 전에 최갑수 선생님하고 민교협 선생님들하고 한 학기동안 강신준 선생님 완역하신 『자본』을 스터디 한 적이 있어요. 돌아가면서 발제도 하고. 아 한 20년 만에 발제를 하려니까 참 어렵더라고요.(웃음) 난감하기도 하고, 머리가 많이 굳었구나. 하여튼 자본의 운동과 자유주의, 루카치가 말했던 상품 물신주의 이데올로기 이런 게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으로는 유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9. ‘인문학의 미래’ 혹은 ‘비전’이란 말이 좀 거창하기는 하지만, 인문학도들이 인문학을 계속 해나가야 할 가치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 저는 문학으로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데요. 제가 이번에 『독일 고전주의』를 쓰면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다시 읽어보면서 새롭게 보이는 점들이 있더군요. 루카치가 왜 고대 그리스 고전주의를 최고의 이상으로 꼽았는지 예전에는 굉장히 관념적으로 다가왔거든요. 몇년 전에도 대학원에서 하이데거 문학예술론 수업을 하면서 하이데거의 중기 이후 철학이 기술문명 비판하는 여러 지점에서 괴테하고 굉장히 유사하구나 하고 느꼈는데, 특히 괴테가 호메로스를 계속 이야기했던 이유하고도 연결되더군요. 괴테와 쉴러의 경우도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 인간이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는 사태를 느꼈던 작가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인간의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상을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던 것 같습니다. 뭐 사실 고대 그리스라고 해서 자유로웠겠어요? 그것도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한, 하지만 감각적으로 직관했던 이상이지요. 그러나 이 점에서 보면 여전히 우리가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 인간적인 사회, 소외와 억압을 넘어선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문학의 면면한 흐름이었구나 싶어요. 세계문학에서 고전의 반열에 드는 작품에는 모두 이러한 생각이 녹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또 한 편 그렇게 보면 지금 새로운 게 있을까 싶지만, 우리나라 문학이나 외국에서도 새로운 감수성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시대가 변하고 바뀌는 만큼 그걸 새롭게 성찰하고 상상력을 통해서 작품으로 써내고 있지요. 그런 마르지 않는 샘이 인문학 안에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에 적응하는 타성화된 삶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갈증의 해소를 문학연구자 스스로가 느껴야 할 것 같아요. 마냥 논문을 쓰기 위해서 참고문헌으로 찾지만 말고.(하하) 그래서 삶 자체가 이 시대 현실에 매몰되지는 않는 긴장을 유지하는 게 공부의 에토스고, 그런 게 있으면 공부하는 데 힘도 되고 신도 나고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10. 선생님의 연구와 집필 활동에서 앞으로의 목표(혹은 올 한해의 목표)가 있으신지요. 있다면 무엇입니까.

- 『로테 인 바이마르(Lotte in Weimar)』라는 번역이 안 된 작품이 있습니다. 로테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나온 여주인공이죠. 실제로 소설 속 시간으로 보자면 괴테가 22살, 로테가 17~18살 무렵이었는데, 소설에 나오는 대로 로테는 약혼자이자 괴테의 친구(소설 속 알베르트)와 결혼해서 하노버에 가서 잘 살아요. 애들도 9명이나 낳고요. 그러다 1816년, 44년 만에 로테가 62세의 할머니로 바이마르로 와요. 와서 한 보름 정도 머무는데, 명분은 로테의 여동생이 바이마르 궁정 관리로 있는 사람한테 시집을 와서 거기 살고 있어서 여동생을 만나러 온 거지요. 그래서 이제 67세 된 괴테를 만나죠. 괴테가 자기 집에 점심초대를 해서 식사도 하고, 괴테가 세운 바이마르 궁정극장에 같이 가서 연극도 보고 그랬는데, 기록상으로 괴테는 딱 두 줄밖에 안 남겼어요. “로테를 점심에 초대해서 식사를 했다.” 정도죠. 그런데 로테는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아들에게 토로하는 편지를 한통 남겼어요. 그걸 토마스 만이 포착해서 400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썼죠. 우리나라에 다른 토마스 만 소설은 다 번역이 되어있는데, 이건 아직 번역이 안 되어있죠. 지난 해 대학원에서 다루면서 번역을 마쳐서 이제 창비 세계문학으로 3월쯤 출간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독일어로 된 문학이론 입문서를 하나 번역하려고 해요. 옛날에 우리 대학 다닐 때는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서를 많이 봤는데 최근에 나온 여러 분야를 다룬 좋은 책이 있더군요. 독일의 젊은 신진학자로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어 있는 사람이 쓴 겁니다. 이걸 올 해 안에 마치려 하고요, 또 번역할 게 몇 가지 밀려있긴 해요. 장기적으로 보자면 퇴임할 때까지 내고자 하는 책은 독일비평사예요. 괴테, 쉴러부터 독일 낭만주의, 가다머, 한스 블루멘베르크까지 다루며 미학과 문학이론을 아우르려고 합니다. 한 스무 편 정도의 비평서가 될터인데, 아직 독문학계에는 그런 책이 없어서 그 책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입니다.
 
 

11. 마지막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 및 후학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는 학생들이나 대학원을 진학하는 학생들 모두 선배들을 보면 답이 안 나오고, 어느 분야에서 뭘 하든 참 청년들한테 고통이 심한 시절이지요. 저는 근본적으로 이건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기성세대는 누릴 건 다 누린 셈인데 그렇게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세대·계층별로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공유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실패한 거라고 봅니다. 이게 결국 지금 야당의 한계이자 87년 민주화가 도달한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득권이 독식하고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가 벌어진 것도 그들만 썩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체가 순리대로 돌아가는 체계를 못 만든 거다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런데 기성세대가 그걸 바꾸긴 어려울 거 같아요. 이미 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죠.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반작용으로 터무니없는 것들은 어느 정도 고쳐지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세대 간의 신뢰가 생기고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데까지 가자면 지금 대학에 다니는 20-30대 청년들의 역할이 관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 세대로서 비록 지금 힘들더라도 사명감, 긍지와 자부심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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